이마를 짚는 손

만약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껏 한 번도 감기에 걸려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과연 그를 부러워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가장 불행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단 한 줄의 시를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와 악수쯤은 할 것이다.
한 번도 사랑이란 것을 모르고 이 세상을 살아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와 차 한 잔쯤은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거짓말도 후회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람
시계 바늘처럼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그런 사람이
신부 차림의 검은 옷을 입고 내 집 문을 두드린다면 최소한 대문의 그 빗장
쯤은 벗겨 줄 용의가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감기 한 번 걸려 본 일이 없는 사람과는 악수
도, 차 한 잔도 그리고 대문의 빗장을 열어 주는 일까지도 사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옹졸한 편견을 비웃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하나의 방으로, 감기에
걸려 누워 있는 그 병실의 세계로 안내해 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은폐되어 있던 소리들, 생활의 먼지와 육체의 두꺼운 비계 속에 감춰져 있
던 소리들이 마치 의사가 청진기를 대었을 때처럼 우리들의 귓속으로 생생하
게 들려올 것이다.
감기에 걸리면, 그리고 방 안에 홀로 누워 있으면 갑작스레 청각이 예민해진
다. 거리를 지날 때,직장에서 때묻은 서류를 넘기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하기도 하고 눈을 흘기기도 하고 의미 없는 손짓으로 무엇인가 말을
주고받을 때, 그런 때에는 결코 들을 수 없었던 소리들이 그 방 속으로 스며
들어온다.
새들이, 참새들이 나뭇가지 위로 옮겨 다니는 그 부드러운 날개깃 소리와비
밀처럼 내리고 있는 눈발 소리와 두꺼운 얼음장 밑을 흘러가는 강물 소리 같
은 것을 들을 수가 있다.
창문 틈으로 새어들어오는 그 바람들이 북극의 많은 도시들을눈 속에 파묻
힌 삭막한 대지들을 낯선 산 이름과 그 많은 강 이름들을 거쳐 온
길고긴 여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니다.
그런 소리들이 아니다.
옛날에 아주 옛날에 잊어버렸던 음성들
사라져 버린 시간과 함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옛 사람들의 여러 가지 소
멸한 음성들을 다시 듣는다.
슬픈 음성도, 분노의 음성도 섭섭하고 부드럽고 안타깝고 야속하고 그렇게
우리들의 생활 속을 흘러갔던 그 음성들이 후회의 한숨처럼 다시 올려온다.
이미 죽은 자의 음성도 있고 헤어져 버린 사람, 의절의 편지와 함께 가 버
린 사람, 우연한 오해로 이제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낯선 사람처럼 스쳐 지
나가는 친구들, 그리고 또 이미 아기 어머니가 되어 버린 연인들의 목소리
가 있다.
아니다.
그러한 소리들도 아니다.
감기 때문에 최초로 체험하였던 그 자유의 목소리를 듣는다.
38도의 하얀 수은주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자유가 얼마나 두렵고 불안한 것
인가를, 그러면서도 또 그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를 배웠다.
출석부의 내 이름자에 하나의 사선이 그어질 것이다. 결석한 자리, 나의 의
자와 나의 책상은 비어 있을 것이었다. 감기는 이등변 삼각형보다도 더 엄격
한 교실 속의 질서에서시간표의 질서에서 식장에서 입는 그 닳고 닳은 교장
선생님의 검은 모닝코트와 흰 장갑의 그 질서에서 나를 해방시켜 준 자유의
목소리였다.
떨리는 부름 소리였다.
범죄자의 소리와도 같고 붉은 혓바닥을 가지고 이브를 꾀어낸 그 뱀의 소리
와도 같은 결석의 꿈,내가 앉아 있지 않은 교실 속의 빈 의자와도 같은 인생
의 한 빈 터로감기는 우리의 손목을 끌고 간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감기에 걸리면 결석을 하고 그 결석의 체험을 통해서,
질서에서 벗어난 불안스러운 인생의 자유를 처음으로 체험하게 되기 때문이
다.
이렇게 감기를 통해서 우리는 자유의 목소리와 최초의 인사를 나눈다.
감기의 신열은, 체온기의 숫자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생의 흔들림을, 빈 의자
의 공허를 번호가 등록된 출석부의 사선, 고무 같은 것으로는 결코 지울 수
없는 그 사선의 의미를 가르쳐 준다.
그러한 흔들림이 있기에 우리는 아직도 공장이나 서류나 통계표나 규격이 똑
같은 아이비엠의 카드나 제복이나 절망적일 정도로 정확한 법조목의 문자들
로부터 나 자신을 도피시킬 수 있는 생의 부름 소리를,그 유혹을 들을 수 있
는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그 목소리가 아니다.
그 소리는 자신의 몸 깊숙이 숨겨져 있는 소리 없는 고요한 내부의 음성이
다. 자유라고 이름 지을 수조차 없는 생명의 소리,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은
평소에는 예지할 수 없었던 심장의 파동 소리이며, 손목의 맥박 소리이며,
관자놀이가 뛰노는 신경의 소리이다.
그리고 기침 소리이다.
폐부를 울리는 기침 소리이다.
아무리 정교한 엑스레이 사진도 기침 소리만큼 그렇게 선명하게 우리들 자신
의 폐부를 겉으로 그려내지는 못할 것이다.
기침 소리를 통해서, 두근거리는 자신의 맥박 소리를 통해서 우리는 붉은 피
가 묻어 있는 자기 스스로의 폐부와 심장의 존재를 확인한다.
거울을 향해서 자기의 얼굴을 마주 보듯이 기침 소리를 통해서 나는 나의 생
명과 대면한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기침 소리가, 핏방울과도 같은
기침 소리가여기 하나의 생명이 있다고, 숨쉬고 꿈틀거리고 저항하고 있다고
생명을 가로막는 온갖 장벽을 뚫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다.
그러한 모든 소리는 하나의 손이 되어 우리의 이마를 짚는다, 이마를 짚는
손,우리는 그 손을 기억한다.
어렸을 때에도, 어른이 된 후에도 모든 감각이 창문을 닫듯 유폐되어 버린
노인이 된 그날에도우리는 이마를 짚는 손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감기에 걸려 방 안에 누워 있었던 경험이 있다면 이마를 짚는
그 손의 의미도 이미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손일 수도 있고
연인의 손일 수도 있고
아내의 손일 수도 있고
친구들이나 혹은 조그마한 자기 아들의 손일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의 신열을 느낄 수가 없다.
가장 분명한 병까지도 자기의 힘만으로는 그 인식만으로는 잡아낼 수가 없
는 것이다. 타인들의 손이 나의 이마를 짚어 줄 때, 그 촉감을 통해서만, 선
뜻한 타인의 체온을 통해서만 자기 자신의 열을 비로소 확인한다.
아, 이마를 짚는 손
장갑을 벗은 맨손
그것은 타인의 손이면서도 이미 타인의 것은 아니다.
대체 머리맡에 앉아 이마를 짚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이마에 와 닿는 그 손
은, 어머니와 아내의 그 손은, 아니 그 건강한 손들은 나의 감기를 대신 앓
아 줄 수는 없는 멀고먼 이방인과 다름 없는 손들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몸에서는 차가운 바깥 공기가 풍겨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은 내 곁에 있지 않고 건강한 생활의 이야기들
을 주고받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손이 이마에 닿을 때 거기에서는 나는
내 스스로의 열을 느낀다.
어렴풋한 황혼의 빛 속에서 어둠과 밝음을 나눌 줄 알고 5월의 바람 속에서
사라져가는 봄과 다가오는 여름의 의미를 분간할 줄 아는 사람이라 하더라
도 이마를 짚는 그 손과 나 자신의 한계를 뚜렷하게 가를 수는 없을 것이
다. 이 손들이 줄곧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다.
환자들처럼, 감기에 걸린 환자들처럼 자신의 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마
를 짚는 손을 그리워한다. 타인의 손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는 자신
의 열기를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생의 머리맡에 남들이 조용히 참석해 주
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싸늘한 손이 이마와 눈과 입술과 그 가슴속에 와 닿
기를 기대한다. 그 손의 차가움은 곧 내 이마의 뜨거움이다.
내 입술의 뜨거움은 곧 설목(雪木)의 가지와도 같은 차가운 그 손가락들이
다.
그 접촉의 자리에 너와 내가 착석하는 존재의 빈 터가 있다.
너의 건강과 나의 병
너의 냉기와 나의 열기
너의 바깥과 나의 방
그 모순하는 반대어들이 하나의 동의어를 끌어안는 기적의 회랑이 있다.
감기는 이마를 짚는 손이다.
그 존재의 빈 터이다.
그 환상의 회랑이다.
감기의 바이러스는 용서의 언어, 화해의 언어, 침잠의 언어, 후회의 언어,
자유의 언어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시의 언어도 또 아무리 깊이 있는 사색
(철학)의 언어도, 우리들의 혈관이나 뼈 속으로 스며드는 감기의 바이러스처
럼 온몸 속에서 꿈틀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감기의 그 미세한 세균들은 온 육체와 그 신경 속에 침잠하여 잃어버린 나
를, 사라져 버린 시간들을, 헤어진 이웃들을 다시 불러들인다.
어떤 의학자도, 어떤 약품도 인간의 감기를 완전히 치료할 수는 없다.
인생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한 감기도 또한 우리의 곁에 있다.
때때로 우리는 이 감기의 함정에 빠질 것이다.
누구는 글을 쓰다가, 누구는 사랑을 하다가, 누구는 지폐장을 세다가, 누구
는 정치를 하고, 기계를 만지고, 총기를 소제하다가 이 감기의 함정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땀을 흘리고, 기침을 하고, 이마를 짚는 그 손과 만나게 될 것이
다. 거기에서 잊었던 벌판들을, 생존의 고향들을 다시 찾게 되리라.
낡은 앨범을 넘기며 사라져간 인간들의 얼굴을 기억해 내듯이 기침 소리 속
에서 잊었던 자신의 폐부와 심장의 존재를 확인할 것이다.
타인들과 내가 만나는 자리를 확인할 것이다.
결석한 빈 자리의 공허한 여백을 확인할 것이다.
새들이, 잔가지 위로 옮겨 앉는 날개깃 소리를
많은 도시의 굴뚝을 스쳐 지나온 겨울의 바람 소리를몰래 내려앉는 눈 소리
를……
「그것은 당신의 오래였습니다.」
「정말 이것으로 마지막인가요?」
「언젠가 또 만나게 되겠지요.」
이러한 마지막 말들의 목소리를, 그 의미를 듣게 될 것이다.
근육 깊숙이 숨겨져 있던
비계 속에 숨겨져 있던
그 맥박의 울림 속에서 상실한 많은 소리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감기란 병이 없었더라면 이 세상은 훨씬 더 황량해졌을 것이다.
감기의 바이러스는 존재의 고향에서 멀어지려는, 타인들의 손에서 떨어지려
는, 온갖 소리에서 도피하려는
우리들 역사의 냉랭한 병을 치료하는 역설의 아스피린이다.
내가 또 감기에 걸리면 가장 부드러운 융으로 만든 내의를 입을 것이다.
캐시미론과 같은 이불이라도 좋으니 그런 가벼운 이불을 덮을 것이다.
머리맡에는 빨간 서너 알의 사과가 아니면
못 먹는 유자나 석류 같은 것을 놓아 두리라.
그리고 이마를 짚는 손이 누구의 것이라 하더라도 탓하지는 않겠다.
아무리 밉고 덤덤하고 귀찮은 사람이라 해도 그 손이 열에 들뜬 내 이마를
짚는 선뜻한 촉감에 감사하리라.
눈을 감고 내 심장의 두근대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아직도 이 눈에 뒤덮인
벌판의 한 지역에 살아 있음을 나사로가 부활한 그 기쁨으로 맞이할 것이
다.
해열제를 준비하듯이 내 이웃들과의 새로운 아침 인사를 준비해야 될 것이
다. 그때, 아무리 선생님이 위엄 섞인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다 해도 교
실 속의 빈 의자, 내가 결석한 그 책상에서는 대답이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지루한 겨울철이 지나고 감기의 기침 소리가 멈추는 새로운 계절
이 되면 나는 다시 건강한 몸으로 외출을 해야 된다.
이번만은 좀더 따뜻하게 좀더 부드럽게 남과 악수를 할 것이고, 어느 케이
크 집이나 다방에 들러 슈크림의 생과자가 아니면 따끈한 커피 한잔을 마셔
야 할 것이다. 한약 냄새 같은 온돌방에서 빠져 나와 페이브먼트를 걷겠
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 끼여 그 도시의 우울 속을 휘파람 같은 것으로 까불리
며 걷겠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만약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껏 한 번도 감기에 걸려 본 적이 없는 사람
이 있다면 악수도, 차 한잔도, 대문의 빗장 같은 것까지도 열어 주지 않으리
라」고……그리고 말할 것이다.
「당신의 손은 내 이마를 짚는 손. 당신의 손이 장독처럼 펄펄 끓는 괴로운
내 이마를 짚어 줄 때 비로소 나는 당신의 눈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노
라」고……
이어령 저 《憂愁의 사냥꾼 (1969)》 中에서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