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성심성월
교육은 지식 전달보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마음의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업을 중단했다가 다시 돌아온 학생들, 가정 형편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 자신감이 없어 늘 뒤로 숨는 학생들을 보면서, 저는 자주 느꼈습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소중하다.”, “다시 시작해도 된다.”라는 희망을 심어주는 마음의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최경옥 수녀.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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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06/08
뇌를 괴롭히는 불청객, 잉여 정보
행복은, 지금 여기에!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자 예수성심성월이에요. 누군가를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내어주려면 마음에 여유와 힘이 있어야 하는데, 여러분은 어떤가요? 마음에 여유가 있나요, 아니면 늘 피곤하고 뭔가에 쫓기는 듯 살고 있나요? 오늘은 우리의 뇌를 괴롭히는 불청객, 곧 잉여 정보에 대해 살펴봐요.
<우리는 요즘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스마트폰 화면을 켜는 순간, 하루가 유튜브 추천 영상이나 쇼핑몰 광고 등으로 가득 차 버려요.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읽고, 듣고, 넘기며 살아가요. 원하든 원치 않든 이 끝없는 정보의 파도 속에서 우리의 머릿속은 늘 가득 차 있어요.
이런 정보들은 대부분 당장에 쓸모없는 ‘잉여 정보’에요. 오늘 본 짧은 영상, 누군가의 댓글, 광고 문구 하나까지도 우리 뇌는 일단 다 받아들여요. 그런데 문제는 이 ‘잉여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데 있어요.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것 같지만, 뇌 속에 작은 흔적으로 남아 주의력을 빼앗고, 집중해야 할 순간에도 느닷없이 불쑥 떠오르곤 하죠.
잉여 정보의 진짜 문제는 ‘정보가 많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 어떤 것에도 깊이 머무르지 못하게 한다는 데 있어요. 인지과학자 대니얼 J. 레비틴은 책 「정리하는 뇌」(2015년)에서 ‘주의력은 유한한 자원’이라고 했어요. 우리 뇌가 실제로 에너지와 주의력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너무 많은 정보가 밀려들면 뇌는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붙잡지 못한 채 표면만 훑게 되어요. 그 결과 집중이 흐트러지고 깊이 있게 아는 능력이 조금씩 흐려지죠. 이것이 잉여 정보가 불러오는 첫 번째 문제에요.
그런데 이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스쳐 지나간 정보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유튜브 영상의 한 장면, 스쳐 지나간 낯선 사람의 댓글 한 줄이 아주 약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마음속 어딘가에 머물러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 이 작은 잔향들(인지 잔향)이 쌓여 우리의 판단, 감정, 편견, 기대를 미묘하게 비틀고 흔들어요. 그래서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어.’ ‘별 생각 없이 넘어갔던 건데, 막연하게 그렇게 느껴져.’라고 말하게 되는 거예요.
이 막연함의 배후에는 수없이 스쳐 지나간 잉여 정보의 잔향이 있어요. 이 잔향들은 처리되지 못한 채 뇌의 작업 공간 한 켠을 계속 차지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이유 없이 피곤해지고, 쉽게 짜증이 나고, 판단력이 흐려져요. 그 상태에서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하는 내용보다 짧고 자극적인 것에 손이 가게 되죠. 이처럼 잉여 정보는 다양한 정보를 깊이 있게 접할 기회를 빼앗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생각할 힘을 갉아먹고, 우리의 감정과 판단을 잠식해 가요.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스마트폰만 봤는데 쉬었다는 느낌보다 피곤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정보 금식’을 해 봐요. 정보 금식은 단순히 스마트폰을 멀리 두거나 SNS를 잠시 끊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내게 의미 있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자극은 애초에 흘려보내겠다는 능동적인 선택이에요. 알림이 울리지 않는 조용한 시간을 불안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텅 빈 순간을 피하지 않고 그 공백 속에 그냥 머물러보는 것, 굳이 검색하지 않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죠. 이런 연습을 많이 해야 마음에 여유와 힘이 생겨요.>(원은정, 「스마트폰을 멈추면 일어나는 일」, 62-69쪽 편집)
♣. 묵상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적 무지’에요. 선택적 무지란,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은 그냥 모르는 채로 놔둘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짓는 거예요. 모든 걸 다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어떤 것은 굳이 찾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해 주는 것이죠. 모르는 채로 놔두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에요. 오히려 그 빈자리에서 뜻밖의 발견이 찾아오기도 하고, 내 안의 호기심이 살아나기도 하니까요.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스쳐 보낸 정보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요. 그것은 내 안 어딘가에 얇은 층처럼 조용히 쌓여요. 그리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무언가를 판단하는 기준, 심지어 내 감정까지 슬며시 바꿔 놓죠. 일명, 내가 본 것이 곧 내가 되어 가는 거예요. 이런 것을 철학적인 용어로 ‘일별’(一瞥. 한 번 흘낏 봄)이라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