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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위한 교육

어둠 속에서도 길이 되어 주시는 주님과 함께

작성자빠삐용|작성시간26.06.08|조회수23 목록 댓글 0

26/06/08 부르심

 

어둠 속에서도 길이 되어 주시는

주님과 함께

 

 

하느님께서 이끄신 어린 시절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내 삶은 이미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느님께서 이끌어 오신 길 위에 놓여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농사를 지으시던 조부모님 아래에서, 서울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며 살아가던 한 청년이 결혼을 계기로 시골로 내려와 우체국에 취직하며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다소 원치 않았던 선택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삶을 묵묵히 살아내 내신 분이 바로 나의 아버지셨다. 엄격하셨던 아버지와 현실적이셨던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과 함게 나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삶의 방향이 바뀌던 시간

성장해 가면서 삶은 조금씩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담양으로 발령받으신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그 사이 두 명의 남동생이 더 태어났고, 아버지의 병환으로 가정의 어려움은 점점 깊어졌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이 되기도 전에,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그날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연로하신 할머니, 아직 마흔도 되지 않으셨던 어머니 그리고 어린 동생들과 나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야 했다.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작은 집을 마련했지만, 남은 돈을 친척에게 맡겼다가 거의 돌려받지 못하는 일도 겪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삶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고, 그 자리에서 다시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길을 찾다

고향에서 나의 삶은 내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나의 미래를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었고, 결국 친구를 따라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서울에서 나의 삶은 쉽지 않았다. 공장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고, 그렇게 약 4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사라지지 않는 갈망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그 질문은 나를 다시 공부로 이끌었고, 나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그 무렵, 한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고, 사장님은 내 사정을 들으시고 2층 다락방을 내어주셨다. 그 작은 다락방에 기대어 나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느님을 향한 질문

이후 한 회사 사장님의 권유로 사무 일을 도우며 공부를 이어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내 삶을 바꾸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직속 상사였던 여규영 토마스 모어 형제님이었다. 그분은 나에게 기도서와 신약성경을 선물해 주셨다. 그리고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받은 것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모습은 내 마음 깊이 새겨졌다. 그때부터 내 안에서 하나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질문은 나를 성당으로 이끌었고, 자연스럽게 예비신자 교리를 통해 신앙을 배우는 시간은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내 삶 전체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여정이었다.

 

예비신자 교리를 받는 1년 동안 나는 수도 생활에 대한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그것은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서 자라나고 있던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갈망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세례를 받은 후, 바로 입회할 수 없었기에 3년 동안 기다리며 여러 수도회를 방문하고 식별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그 시간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가족과 친구들, 친지들의 반대와 비난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아프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나를 붙들어 준 것은 단 하나의 확신이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

 

그 확신 안에서 나는 이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입회를 준비하던 3년 동안 나는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채 그 과정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입회에는 가족의 동의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깊은 갈등과 상처를 겪게 되었다. 나의 선택은 가족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내 결정이 배신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 성소가 내 선택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부르신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었다.

 

 

살레시오 성소와 첫걸음

여러 수도회를 방문하던 중 살레시오 공동체는 나에게 특별한 평화를 주는 곳이었다. 돈 보스코의 젊은이들을 향한 사랑, 전 세계에 열려 있는 선교 수도회의 삶 그리고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수녀들의 모습은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청원기와 수련기를 지나며 나는 함께 살아가는 삶을 배웠다. 기도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복음을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 갔다. 특히 순명과 가난, 정결의 삶이 자유로 가는 길임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1993년 첫 서원 이후 여러 공동체에서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만나며 사도직을 살아갔다. 현관 소임(현관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전화받으며 안내하는 일)을 통해 환대를 배우고, 유치원 아이들의 순수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또한 가출 청소년들을 만나 상담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은 내 사도직의 방향을 더욱 분명하게 해주었다. 나는 그들 곁에 머무르며, 단순히 돕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어 주는 사랑을 배웠다.

 

 

선교지에서 살아가는 복음

종신서원 이후, 간호 분야를 공부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에 품어 온 아픈 사람을 돕고 싶다는 소망이 사도직 안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이어진 것이다. 받은 것을 나무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게 나를 선교 성소로 이끌었고,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자라났다. 이러한 여정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나와 함께해 주셨다.

 

첫 선교지는 시리아 다마스쿠스였다. 전쟁의 상처가 깊게 남아 있는 그곳에서 병원을 찾는 이들은 단순한 환자가 아니라 삶의 무게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돌보는 일은 단순한 의료 행위를 넘어, 고통 속에 함께 머무는 일이었다.

 

시리아를 떠난 지금, 12년째 예루살렘에 머물며 시리아와 레바논, 요르단의 난민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물질적 지원과 자립을 돕는 사목을 이어 가고 있다.

 

본래 3월에 본국 휴가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전쟁으로 인해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지금은 무엇도 예측할 수 없는 불안 속에서, 때로는 두려움과 절망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레바논을 비롯한 중동 여러 지역에서는 공습으로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고, 예루살렘 또한 미사일이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위험 속에 있다.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나 자신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조용히 물어본다. 우리 각자가 주님을 향해 걸어가는 서로 다른 여정 속에서, “행복하십니까?”

 

선교사로서 중동의 삶은 늘 테러와 전쟁이라는 긴장 속에 놓여 있다. 여러 차례 전쟁의 중심에서 피해를 수습하며, 가족과 터전을 잃고 떠나야 하는 이들을 만났다. 베두인들의 삶처럼, 이들에게서도 유목민의 삶을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들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은 채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삶을 이어 간다. 각자의 처지를 추스르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곳을 뒤돌아 나올 때마다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우리의 보금자리가 때로는 미안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이 마음이 과연 사치가 아닌지 스스로 묻게 된다.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길

그러나 이런 현실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기도하는 우리와 함께 계시며, 끝까지 사랑하고 용서하기로 선택한 이들 안에 살아 계심을 믿는다.

 

또한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은 모든 것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맡겨진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살아 있음에 감사드리며, 그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길은 내가 만든 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신 길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불확실한 시간 안에서도 주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걸어가고 계신다. 보이지 않아도 함께하시는 그분을 믿으며, 희망을 놓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깊은 응답임을 고백한다.

 

 

- 이미숙 수녀, SALESIO 가족(20265월호), 14-17면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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