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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2026년 6월 15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제1독서

작성자작은데레사|작성시간26.06.15|조회수14 목록 댓글 5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21,1ㄴ-16


그때에 1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이즈르엘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밭은 사마리아 임금 아합의 궁 곁에 있었다.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포도밭을 나에게 넘겨주게.
그 포도밭이 나의 궁전 곁에 있으니, 그것을 내 정원으로 삼았으면 하네.
그 대신 그대에게는 더 좋은 포도밭을 주지.
그대가 원한다면 그 값을 돈으로 셈하여 줄 수도 있네.”
3 그러자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제가 제 조상들에게서 받은 상속 재산을
임금님께 넘겨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4 아합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자기에게,
“제 조상님들의 상속 재산을 넘겨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한 말에
속이 상하고 화가 나서 궁전으로 돌아갔다.
아합은 자리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음식을 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5 그의 아내 이제벨이 들어와서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속이 상하시어 음식조차 들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6 임금이 아내에게 말하였다. “실은 내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에게
‘그대의 포도밭을 돈을 받고 주게.
원한다면 그 포도밭 대신 다른 포도밭을 줄 수도 있네.’ 하였소.
그런데 그자가
‘저는 포도밭을 임금님께 넘겨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는 것이오.”
7 그러자 그의 아내 이제벨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에 왕권을 행사하시는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일어나 음식을 드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제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당신께 넘겨드리겠습니다.”
8 그 여자는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그의 인장으로 봉인하고,
그 편지를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에게 보냈다.
9 이제벨은 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시오.
10 그런 다음, 불량배 두 사람을 그 맞은쪽에 앉히고 나봇에게,
‘너는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다.’ 하며 그를 고발하게 하시오.
그러고 나서 그를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이시오.”
11 그 성읍 사람들, 곧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은
이제벨이 보낸 전갈 그대로, 그 여자가 편지에 써 보낸 그대로 하였다.
12 그들이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자,
13 불량배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맞은쪽에 앉았다.
불량배들은 나봇을 두고 백성에게,
“나봇은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습니다.” 하고 말하며 그를 고발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봇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인 다음,
14 이제벨에게 사람을 보내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고 전하였다.
15 이제벨은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합 임금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셔서,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돈을 받고 넘겨주기를 거절하던
그 포도밭을 차지하십시오. 나봇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죽었습니다.”
16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아합은 일어나,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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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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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5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으로 내려갔다.>

    <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제1부 16
    왜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지 못하는가?(2) 무엇보다 자기 삶의 가치 기준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길 때’,
    잃었던 ‘인간성이 회복’되어 하느님과의 관계가 ‘정상화’되며,
    그때 비로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기어이 다 내어 주신다.

    하느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시고,
    ‘하느님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되게 해 주신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진실이다, 진리이다, 참으로 진리이다.
    머리 굴리지 마시라. 짧은 머리 돌리고 굴리지 마시라!
    자칭 머리 좋다는 나도 짧은 머리 돌리고 굴리다 피 봤다!

    예전부터 머리 똑똑하다는 사람들도 많이 봐 왔다.
    그들의 기가 막힌 결말도 말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이사 55,9)

    이 세상의 것들을 더 사랑하면 이 세상을 따라가게 되어 있고,
    하느님을 더 사랑하면 하느님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는 사실은
  • 답댓글 작성자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5
    이미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그대도 ‘유유상종의 법칙’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대는 인류 발전의 근간인 ‘호기심’도 없는가?

    참다운 욕심이 있는 자들이여!
    거룩한 욕심이 있는 자들이여!
    한 번 하느님께 내맡김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얻어 보지 않겠는가?
    한번 직접 경험해 보시라. ‘내맡김’이 무엇인지!
    그리하면 분명히, 당신 마음껏 당신의 것을 취하리라.

    이 세상의 것들에는 ‘마음껏’이라는 것이 없다.
    있다면 그것은 진짜 ‘거짓’이다.

    만일,
    내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는 ‘내어 드림’ 없이
    당신의 욕심만을 따라 이 세상의 것들을 취하려 한다면,
    당신의 뜻만을 따라 이 세상의 것들을 얻으려 한다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이 세상의 것들을 즐기려 한다면,
    당신의 생각대로 이 세상의 것들을 누리려 한다면,
    당신의 욕망 때문에 당신의 삶이 곧 당신을 심판하게 되리라.
    호되게 심판하리라!>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 6-1

    하느님이 영혼을 인도하실 때
    영혼 스스로가 느끼는 감지력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만큼 더 큰 확신으로 영혼이 올바른 길에 서 있음을 확신시켜 주시는데,
    이 확신은 정신의 모든 두려움과 추론을 정복하게끔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5
    지성이 보다 나은 길을 발견하기 위해
    항변하고 투쟁하는 일은 무익합니다.

    신부가 신랑을 붙잡으려 하면 신랑은 사려져버리므로,
    신부는 감각에 개의치 않고 신랑의 현존을 감지합니다.

    "그이의 오른팔은 나를 껴안는 답니다"(아가 2,6).
    신부(영혼)는 다져온 덕행의 길을 따라 분투노력해 감으로써

    재차 스스로 확신하기 보다는,
    비록 리듬이나 이성이 없는 듯이 보일지라도
    오히려 그녀는 신랑의 안내에 자신을 내맡기는 걸 더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은 어서 빨리 스스로를 내맡김으로써
    하느님께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거룩해질 수 없음을 깨닫고
    그분께 온전한 신뢰심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이 당신 품으로 우리를 데려가려 하시지 않았다면,
    그분은 우리에게서 걸을 수 있는 힘을 빼앗아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무엇을 하느냐 보다 어떤 지향을 갖고 하느냐가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무엇을 하든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로
    지향은 한 군데로 모아지고 있고,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을 향해서 말입니다.
    저를 위로부터 태어나게 해준 거룩한 내맡김으로요!
  • 답댓글 작성자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5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길이고 비워지고 내려가야만
    아버지 뜻으로 드높이 아버지 길로 올라가는 길임을요!

    작아지는 것이 곧 커지는 길인데도 말입니다.
    부족한 저와 타인들이 발끈할 때를 바라봅니다.

    욕망과 소유로 가득한 아합와 부부의 독서말씀을 통하여
    타인과 외부로부터 받는, 모든 일에 대해 순간 발끈할 때,
    외부로부터 공격받는 것에 대해 ‘자아’가 격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제뜻, 에고로 싸우겠다고 으르렁거리는 제꼴, 참 비참한 수준이지요.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이 금새 드러나곤합니다.

    자신을 버리고 주님께 신뢰를 두는 사람은
    세상 것들에 두려워 반응하거나 발끈하지 않을 테지만요!

    그 사랑이 되시기 위해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는 인간들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들이셨고 그 못들에 의지하여 하늘로 높이 들리우셨습니다.

    자기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아는 반응하지 않는다고 깊은 침묵으로 전해주십니다.
    예수님과 마리아엄마는 곰담묵으로 거룩하신 아버지 뜻대로 그렇게. . .

    자아를 얼마나 죽이느냐에 달린 영성!
    발끈하며 따져드는 순간 저의 영성은 거기까지인 것을요!
    하느님 뜻대로, 내맡기는 길밖에요.
  • 답댓글 작성자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5
    일어나는 모든 일에
    항변하지 않고 겸손되이 순명하며 사는 길임을요!

    명분은 그럴싸하지만 내뜻과 내생각대로 차지하고 휘두르려
    강력한 숨은 의지를 매순간 모든 것에서 예수님처럼 못 박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 아니시면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저입니다.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온 세상을 재로 만들어버리실 수도 있으시니요!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더더욱 뜨겁게 내맡겨드리는 길밖에 없지요.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저와 모든 피조물을 아버지께 내맡깁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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