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
작성자 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7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위선자들처럼 >
<연중 제31주일(2011.10.30.) 강론
"위선" 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이 없기에,
없는 것을 겉으로 억지로 만들어 남에게 나타내 보이려는 것이 위선이고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이 '위선자'인 것이다.
위선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모든 악의 근원이 교만이듯 위선도 '교만' 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교만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며, 우리 신앙인이 가장 크게 경계해야 할 惡이다.
우리 인간의 역사를 보면 모든 나라의 멸망과 패망은 교만에서 비롯되었다.
교만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교만해지면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는지도 모르게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생각이 제일 올바르고 잘된 생각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것은 교만의 주인인 '사탄'이 그렇게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깜쪽같이 속아 넘어가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의 교만은 어디에서 오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인간의 "욕심" 에서 오게 되는 것이다.
정말, 하느님을 자신을 만드신 주인으로 인정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려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참 아버지로 다가오시며,
참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
답댓글 작성자 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7
스승 중의 최고 참 스승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개인교수로 붙여 주셔서
이 세상에서의 삶을 정말 "욕심없이 겸손하게"
살도록 보살펴 주시고 이끌어 주신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고 보살펴 주시고 이끌어 주시기 때문에
마음이 점점 하느님으로 가득차게 되어 욕심을 부릴 필요도 없게 되고,
그러하기에 더욱 위선을 부릴 필요도 없게 되며,
오직 하느님만 바라며 하루하루를 기쁘고 겸손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
< 벌거벗은 지금, 리차드 로어
어째서 그토록 현상유지를 고집하는가?
에고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변화'임을 알면, 왜 대부분의 사람이 단지
생존하기만을 고수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폭행을 당했거나
억압을 당했거나 어떤 이유로든 일단 자기를 지켜야 했던 사람은 변화만 아니면
무엇이든지, 심지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일까지 감수하려고 들 것이다.
중독자 또는 이런저런 견고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눈여겨보라.
에고는 맹목을 뜻하는 다른 말이다.
나는 에고를 ‘눈에 띄지 않은 자아’라고 부른다.
일단 에고는 그 정체가 발각되면 게임이 끝나고 말기 때문이다.
에고는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자신을 지키려면
-
답댓글 작성자 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7
위장을 잘해야 한다. 악은 언제나 거절과 위장에 의존한다.
그래서 항상 그럴듯한 천사로 위장한다.(2코린 11,14) 에고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도 모르게 우리를 악으로 이끌 수 있다.(바오로는 '에고' 를 육'이란
말로 표현한다.) 성공하기 위하여 악은 어떻게든지 근사한 덕목처럼 보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스스로 완벽하게 보고 있다고 확신하게 만든다.
바로 여기에 회심과 영적 변화를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가 있다.
대부분 회개했다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다른 마음이 아니라 다른 행위,
다른 신조, 다른 체제들이다. 그런데 우리를 성장시키는 건 그것들이 아니다.
우리를 바꿔놓는 건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우리가 이미 있는 곳에서 우리를 변함없이 안전하게 하고 힘있게 한다.
그것은 흔히 '인생 전반부의 임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동의한다.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으로서 주어지는 일정한 행동거지와 신조들은
좋은 것이고 출발점에서는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너무 떠받들면 머잖아, 유사시에 숨는 곳이 되고 만다.
바오로의 말에 따르면
-
답댓글 작성자 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7
그것들은 우리에게 길을 떠나게 하는 '감시자(후견인)'에
지나지 않는다.(갈라 3,24) 나는 그것을 '훈련용 자전거'라고 부른다.
그것들을 너무 오래, 너무 가까이 붙잡고 있다 보면
내적인 가치와 힘을 기르지 못해 더 크게 '자랄' 수가 없다.
당신이 아는 많은 사람이 이런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당신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
사랑하는 아버지,
나약하고 부족한 저는 오랜 세월 감추고 가리며
거짓자아로 아니 위선자로 살아온 죄인입니다.
위선이 또 다른 위선을 쌓아가며 쳇바퀴의 삶을 살았습니다.
거룩한 내맡김 영성은 나를 살려준 최고의 영성입니다.
가릴수록 더 비참함은 커지고 아버지 뜻에서 멀어지는 것을
벌거벗고 내면 깊숙한 곳에 살아계신 아버지 안에서 사는 길 밖에요.
거룩한 내맡김 삶을 통해
잘못 살았던 모든 것이 바르게 자리 잡았습니다.
그것이 순리이고 진리이며 삶의 질서인 것을요!
‘눈에 띄지 않은 자아’ 곧 에고가 죽어야만
아버지 안에서 참평화, 참안식을 누리는 것을요!
발칵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살았던 세월, 내맡김으로
종지부를 찍고 아버지만으로 만족한 영혼, 내맡긴 영혼으로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