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5,12-15
형제 여러분,
12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13 사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지만,
율법이 없어서 죄가 죄로 헤아려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입니다.
15 그렇지만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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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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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1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 < 신앙의해
연중 제19주일 2013.08.11 강론
믿음이란 하느님에 대한 <순종과 봉헌>이 합쳐진 행위이다.
순종(順從)이라는 단어에서 먼저 <順> 字는,
"내 川(천)" 字에 "머리 頁(혈)" 字가 합쳐진 한자로
"따를 順, 차례 順, 순할 順" 등으로 사용되며,
그 뜻은 "물이 흐르듯 순리에 따른다" 는 뜻을 지닌 글자이고,
그다음으로 <從> 字는,
원래의 從이라는 한자는 "사람 人" 字를 나란히 이어서 쓴
"人人" 이라는 글자였고 여기에 한자부수로 쓰이는 "책받침"
"쉬엄쉬엄 갈 착(辵)" 字가 합쳐진 한자였다 한다.
"사람의 뒤를 쉬엄쉬엄 따라간다"는 뜻의
"따를 從, 좇을 從" 字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쉬엄쉬엄 갈 착(辵)"이라는 한자의 부수인데
착(辵) 字의 머리는 "가다"라는 뜻의 "다닐 行"자에 쓰이는 "두인변(彳)"에
발은 "서다, 멎다"라는 뜻의 "止(지)" 자가 합쳐진 글자로서
"가다가는 쉬고, 쉬다가는 간다" 는 뜻의 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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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1
제가 왜 이렇게 한자를 하나하나 풀이해서 말씀해드리냐 하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대>라는 사회의 구조 자체가
이 순종이라는 말과 잘 어울릴 수 없는 그런 구조이기 때문이다.
아는 것 많고 힘세고 가진 것 많은 사람이 우선시 되는 현대사회 속에서는
<하느님의 가르침이나 인간의 기본 도리>조차 맥을 출 수가 없다.
順序(순서)가, 順理(순리)가 뒤 바뀐 사회를 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의 뜻을 따름이 그 올바른 순서요, 순리이거늘,
그 순서, 순리를 따르면 아무리 힘들고 고달픈 세상도 물흐르듯이
흐르다가 멈추고 멈추다가는 흐르면서 쉬엄쉬엄 살아갈 수 있거늘,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아브라함이, 성모님이, 예수님이 보여줬거늘,
그분들이 보여주신 <순종의 삶>이 인생의 행복의 정답이거늘,
쉬엄쉬엄 살아가는 자신의 꼴을 도저히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 순종이라는 단어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앙인들에게서조차 맥을 못추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분명히 <믿음은 順從>이다!
하느님의 가르침, <하느님의 뜻에 대한 충실한 따름(從)>이다.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면,
자연히(順) 진실한 자기 <봉헌>이 따르게(從) 되어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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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1
사랑하는 아버지!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의 절대적 순명과 겸손의 덕분으로
지금 제가 살고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인 저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히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도록
예수님의 따라쟁이로 살아가렵니다.
은총의 선물을 얻어누리니
하루하루 기쁨과 성령 안에서 대화를 나누어야겠지요?
오직 아버지께 순명하는 내맡김이
죽어갈 영혼을 다시 살게 하셨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만인 만물에게 내려주시는
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과 은총을 어찌 감히 잴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아버지
죽도록 죽기까지 아버지만을 뜨겁게 사랑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