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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및 문화행사

[전시소식]제주신화미술제

작성자ⓣⓞⓦⓞⓞ|작성시간05.07.01|조회수103 목록 댓글 0

제1회 JEJU MYTH ART FESTIVAL

제주신화미술제

홍진숙, 신화-자청비, 60.5*80.5(cm), Woodcut, 2005

 

"저 달이 곱기도 하다마는 자청비 아기씨 만큼 고울소냐"

 

2005년  7월 1일(금) ▶ 7월 14일(목)

1부: 제주작가 본전시 (7월 1일 ~ 7일)

2부: 전국작가 특별전 (7월 8일 ~ 14일)

갤러리제주아트 [약도보기]

690-031 제주도 제주시 삼도1동 300-78 T. 064-757-7493

초대일시: 2005. 7. 1 오후6시

개막전 행사: 시왕맞이(강대원 심방) 오후5시~8시

문창배, 현대인-신을 향한 우리의 모습(설치)

[참여작가]

1부(본전시): 강술생, 강창언/허은숙(공동작업), 고석칠, 고영만, 김남형, 김만수, 김미화, 김재경, 문창배, 문홍규, 문행섭, 양용방, 양경식, 오승익, 임소영, 임수병, 정윤광, 최형양, 홍성석, 홍진숙

2부(특별전): 곽영화, 김상화, 김서경, 김영임, 김운성, 김호원, 박영동, 박종갑, 박진화, 신하순, 오순환, 오영애, 우형순, 이삼영, 이의재, 이재진, 임남진, 정세학, 최수동, 한윤기, 한정원

[부대행사]

1) 제주의 굿 시연(2005. 7. 1 오후5시~8시)

* 굿 제차: 시왕맞이

* 굿 집전: 큰 심방 강대원(동복리 본향당, 매인심방)외 소미(小巫) 4인

2) 한반도의 풍요와 평화의 기원을 위한 한라산 산신제와 퍼포먼스

* 일시: 2005. 7. 3(일) 12:00

* 장소: 한라산 백록담 정상

- 행사1: 한라산 산신제(집전/한라산 지킴이 회장 진창기)

- 행사2: 한라산 산신을 위한 퍼포먼스(퍼포머/한정원/인천)

* 후원: 한라산 지킴이

3) 제주의 기매(旗魅)전 (갤러리 제주아트 야외)

4) 신화 부적 나누기 행사

* 관객에게 집안의 무사 안녕을 위한 부적 나누기

* 장소: 갤러리 제주아트

주관: 제주신화미술제 운영위원회

후원: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한라산 지킴이, 제주문화연구소, (주)나우엔터

협찬: 한국마사회제주본부

김재경, 삼승할망과 올리소, 제주석, 설치

신화미술, 생생히 살아있는 상상력의 세계를 가로지른다

김유정(미술평론가, 제1회 신화미술제운영위원장)

신화, 민중 염원의 상징적 이야기

신이란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로 인격을 가진 초자연적인 존재이다. 신화(Mythos)란 바로 이런 신들의 이야기로서 '삶의 경험담이며, 인간에게 내면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준다'(Joseph Campbel;1996). 또한 신화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구비 전승되거나, 기록된 작자미상의 이야기로써 태고시대의 세계상을 그리며, 인간의 속성을 가진 신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결국 신화는 인간들이 지어낸 상상력의 산물로써 인간의 염원, 욕망, 시랑 등의 정서적이거나 상징적으로 승화된 가장 인간적인 담론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화는 우리의 땅의 이야기이며 우리 땅의 이야기여야만 한다. 신화가 민족마다, 종족마다 다양하게 전승되는 것도 신화의 속성에는 모두들 자신의 삶과 자신의 대지가 자기식으로 사회화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김만수, 서귀포 평화도, 72.7*60.6(츠), 캔바스 위에 아크릴

Joseph Campbel은 신화에는 4가지 기능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가 신비주위적인 기능으로서 우주라는 것이 얼마나 신비스러운지를 아는 순간,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신비스러운 존재인지를 아는 순간, 신화는 신비의 차원으로 인도하며 만물의 신비를 깨닫는 세계의 문을 열어준다고 한다. 두 번째로 우주적 차원을 여는 기능으로서 과학은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신화는 신비의 샘으로서의 우주를 보여주며, 사회적 기능으로는 산화야말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공동체의 이데올로기로서 그 질서를 유효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 마지막으로 교육적 기능으로서의 신화는 삶을 어떻게 영위할 수 있을까하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신화 속에는 인간이 살아가야할 법도와 교육적 가치가 들어 있다고 강조한다.

모든 민족 문화에는 신화가 있다. 이 신화는 지역적이고, 풍토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며, 민족문화의 원형적 색채를 다양하게 반영한다. 더욱이 신화는 근래의 이론에서 '민족의 집단적인 가치, 공공(公共)의 본능적인 가치에 대한 상징적인 투영(Projektion)이고, 실재(實在)에 대한 언어라 부른다'(안진태;2001). 따라서 '신화 속의 사고는 인간 집단의 원초적 사상 또는 사상의 원형'이기 때문에 한국 신화는 한국인에게 원초적으로 잠재한 '사상의 원형'인 것이다.(윤사순;2001)

김남형, 2005 영등제, Color printing+설치

이런 의미에서 보면, 제주의 신화는 제주도라는 섬의 지리적, 경제적, 문화적 풍토를 아우르는 제주사람들의 역사시대 이전의 삶의 모습이며, 그것의 상징적 변형이자 글들의 심리적 상태라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제주를 일컬어 '신들의 고향'이라 부른다. 이는 1만8천의 신들, 현존 300여개를 웃도는 신당, 풍부하게 전해오는 일반본풀이인 열두본풀이와 마을마다 다른 당본풀이 신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본풀이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사람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멀어져 화석화되어 버린 채 단지 재미있는 신들의 이야기로만 전해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네 가슴에 펄펄 살아있는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로 남아 있어서 더욱 소중하다. 따라서 제주의 신화는 여느 국가나 지역의 신화와도 같이 상투어로 이루어지고 내용의 중복적 유사성이 곳곳에 보이기도 하지만 신화가 현재 민중들의 삶 속에서 지금도 신앙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치로운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제주의 신화는 그 수효에 비해 시각적인 형상으로 보여지는 것은 너무나 부족하다. 텍스트로 남겨진 방대한 본풀이들이 있지만 그것의 생생한 이미지를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우리 식의 형상을 가지지 못한 이유야 어디 한 두 가지 뿐이겠는가. 그래도 희귀하지만 제주 신의 형상을 추정할 수 있는 내왓당 무신도가 현존하고 있는 것은 매우 대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원전 700년을 출발로 그리스 신화미술은 자신들의 신화를 매개로 조각, 도기화 등의 조형미술의 발전을 이룩했고 그 후로도 신화 소재의 많은 회화들이 제작된 것에 비해, 우리의 신화는 미술적인 형상화를 위한 여유를 한 번도 가지지 못한 것은 이와 대비가 되는 일이다. 불교미술이나 유교의 문인화와 진경산수화, 초상화의 발달에 비해 너무나 차이를 보이는 신화 미술은 그 존재자체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면 할말은 다 한 셈이다. 그나마 민화풍의 무신도가 조선후기에 치우쳐 제작된 사실은 한국 역사 속의 무교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고영만, 설문대할망, 82*120(cm), 천 위에 유채

제주의 신들은 회화적 형상으로도 타 지역과 다르다. 최근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내왓당 무신도 '10신위'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제주의 무신(巫神)들은 여러 면에서 독창적인 면이 매우 뛰어나다. 오방색의 화려한 의상과 날카로운 눈매, 풍운조화를 일으키는 듯한 수인(手印), 온몸에 감겨진 뱀의 형상들, 체제 지향적인 봉건 왕조의 의상들에서 신들의 역사성과 시대성, 민중성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아직도 남유(男儒), 여무(女巫)의 종교적 습속이 진하게 남아 있는 제주는 신들의 화려한 삶의 무대로써 세계 어느 민족에 부럽지 않는 신들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제주 신화의 독창적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본풀이는 크게 일반본풀이, 당본풀이, 조상본풀이로 나누어 부를 수 있다.

본풀이는 '본(本)을 푸는 것이다. '본'은 뿌리, 근본, 원리란 뜻이고, '신의 뿌리', '굿의 원리'를 뜻하는 '본'이다. 그리고 '풀이'는 '푼다'는 해석, 설명, 진술이라는 사전적 의미(문무병;1998)가 있고, 동시에 '노여움을 푼다'거나 '문제를 푼다' '몸을 푼다' 등과 같이 화열, 해결, 용해 등의 의미도 있기 때문에 본풀이는 '신의 내력을 설명하는 동시에 신을 화열케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장주근;2001).

강창언/허은숙(공동작업),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제주토, 제주전통가마소성

정리하면, 본풀이는 신의 내력담이고 생애 이야기로서 신화이며, 굿의 원리를 풀어나가는 '굿의 대본'이라는 점에서, 문학이자 예술로서 미적인 가치체계가 있다(문무병;1998).

제주도 일반신본풀이는 일반신의 내력을 푸는 서사무가(敍事巫歌)로서 열두본풀이라고도 한다. 열두본풀이는 천지창조의 원리를 풀어낸 <천지왕본풀이>, 아기의 점지와 생육을 도와주는 <삼승할망본풀이>, 무조신(巫祖神)의 내력담을 풀어낸 <초공본풀이>, 서천꽃밭을 지키는 꽃감관 이야기인 <이공본풀이>, 길흉화복을 가져다 주는 직업의 신의 이야기인 <삼공본풀이>, 농경·목축의 신의 이야기인 <세경본풀이>, 저승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차사본풀이>, 수복신(壽福神)의 내력담인 <명감본풀이>, 지장신의 내력담인 <지장본풀이>, 문신(門神)과 조왕신의 내력담 <문전본풀이>, 부와 곡식을 수호하는 뱀신의 이야기 <칠성본풀이>, 마마신의 내력담인 <마누라본풀이>로 나눌 수 있다.

당본풀이는 제주 지역 각 마을 신당(神堂)에 좌정한 신들의 이야기이다. 이를 분류하면, 마을의 수호신이 좌정한 본향당, 질벙과 관련이 있는 일뢰당, 뱀신을 모시는 여드렛당, 해상의 안녕을 비는 해신당이 있다. 그러나 제주도에 300여 개의 당이 있다고 하나 전해오는 당본풀이는 형식이 갖춰진 것으로 볼 때 70~80편 내외로 추정(장주근;2001)하고 있지만, 마을마다 당마다 그 신의 본풀이가 서로 다른 것을 감안하면, 전승되지 않은 본풀이가 매우 많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조상본풀이는 집안의 수호신을 조상신이라 일컫는데 그 조상신의 내력담을 가창하는 것을 말하며, 특정 직업이나 가업과 관련된 이야기로서 어업과 관련된 <영감본풀이>가 이에 해당한다. 결국 신화는 지역성과 민족성을 아우르는 한 덩이 실타래와 같다. 그 실타래의 올들은 우리 민족의 한과 정서, 희망과 분노의 감정들이며, 영웅의 이야기, 권선징악의 원리들을 인간사에 풀어헤치는 교훈적인 계시이기도 하다. 신화야말로 역사시대가 갖지 못했던 민족의 원형적 심성들, 인간의 원초적 심리, 나아가 종교적 상징성까지를 포괄하는 인류의 벌거벗은 모습을 담고 있다.

강술생, 꽃으로 보는 제주신화, 영상설치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신화미술(神話美術)

지역성과 한국성을 대표하는 것들 가운데 가장 민족적인 원형을 갖고 있는 것이 신화라고 결론 지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신화를 문헌으로 전해오는 것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신화를 보는 관점은 매우 달라질 것이다. 사실, 단군신화나 고주몽 신화, 박혁거세 신화, 석탈해 신화, 삼성신화 등으로 대표되는 문헌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의 폭이 의외로 적고, 그 범위가 자연친화적이거나 시조 신화로 한정돼 있어 극적 서사성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비 전승되는 신화는 우주의 생성 근원을 밝힌 창세 신화를 비롯하여, 신들의 사랑과 증오, 질투, 이혼, 버림받음, 환생 등 그리스 로마신화에 버금가는 서사시적 요소가 매우 강하여, 우리 민족의 문학적 가능성과 미술적 형상화의 길을 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반도를 끼고 사는 한민족은 역사 이전 때부터 숱한 수난의 길을 걸어 왔고, 신분적으로도 설움을 받았던 계급들의 상상력과 염원이 뭉쳐 보다 사실적인 이야기가 되어 입으로 전해 왔을 것이다. 특히 무가본풀이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우주와 세계를 아우르는 수많은 신들의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입심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화미술은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할까? 우리는 '신화미술'을 자연스럽게 정의한다면 '신화를 형상화한 미술작품'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 풍부하게 구비 전승되는 신화는 늘 있었지만, 그 신화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일은 거의 없었다. 시각미술에서 신화의 묘사는 문학적인 언어와 완전히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데 형식과 주제 사이의 관계 또한 이 언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미술적 표현은 형상적 인식에 의한 묘사이기 때문에 색채, 형태, 공간감, 구도 등 조형적 언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림의 일차 질료인 신화 모티브가 생생하게 살아 있어도 우리는 그 신화를 듣거나 읽을 수밖에 없었기에 -우리 신화가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신화미술의 빈곤함 때문에-신화하면, 먼저 그리스·로마신화의 비너스나 프로메테우스, 헤라, 제주스 등의 서양신을 떠올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스 로마신화는 문학 텍스트에 의해 서사적 발전 양상을 보이기도 했지만, 신화미술의 형상으로 신화의 변모 양상을 유추하기도 하였기에 신화와 신화미술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예술적 형상화를 이루는데 공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신들의 고향인 제주에 신이 많아도 신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비극인가 희극인가. 아직 신화미술이 초보적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는 우리의 현상을 감안하면 누구를 탓할 구실도 여유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라도 '신화미술' 토양을 가꾸기 위해 새로운 각도로 신화를 바라보아야 한다. 특히 형상적 인식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라도 우리 신화의 본질을 이해해야만 한다. 벌써 민속학이나 인류학에서는 신화의 채록은 물론 체계적으로 다양한 연구를 벌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야말로 미술이 신화와 만날 때이다. 시각예술의 장점으로 신들의 모습을 '눈으로 보여준다'는 약속을 미술가들이 꼭 지켜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머리에만 존재하는 신의 형상을 이제는 우리들 눈앞에 펼쳐 보일 때이다. 신화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당연히 신화미술의 중요성 또한 따라오기 때문이다.

홍성석, 신화의 정원-꽃의 정령, 90*56(cm), 종이 위에 아크릴

제주에는 세계화를 시킬 수 있는 요소가 3가지가 있다. 이 3가지 세계화 주제는 지질적으로 화산섬의 돌문화가 그 하나요. 세계사로써 아픈 역사인 4·3이 그 하나요. 인문학적으로 신화가 그 마지막 하나다. 이 3가지 세계화 요소는 제주지역만이 갖는 크나큰 장점인데 과거 고립되고, 수탈받고, 천시돼 온 제주섬이 지금에 와서 크게 전화위복된 셈이다.

특히 신화는 예술적으로 확장 가능하리만치 지역성, 민족성, 섬문화의 독창성을 명확히 드러내 주기 때문에 서둘러 신화미술 창작 붐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이 신화미술은 운동적인 차원으로 승화시켜, 학교 교육에서부터 창작에 이르기까지, 생활에서 문화컨텐츠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신화미술은 특정 장르를 넘어서서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를 포괄하면서 보다 다양한 그릇으로 우리의 신화를 형상화 해야 한다.

끝으로 이번, 제주신화미술제를 계기로 신화미술이 갖추어야 할 몇가지 요인들을 결론적으로 검토해보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신화미술은 먼저, 풍토적인 상상력의 접근이 필요하다. 풍토가 단순히 자연 지리적이거나 지질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지리적 차이와 생산력을 염두에 두면서 이에 발생하는 심성들의 가치 개념을 가지고 신화시대의 사회구성체적인 전체상(全體像)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 이는 시대적 재현과 현장성이라는 리얼리티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인도의 신화미술, 중국의 신화미술, 그리스의 신화미술, 일본의 신화미술이 구별되는 것도 이 이유에서이다.

두 번째로 창조적인 전형성이 필요하다. 신들의 개성적인 초상성(肖像性)을 위해 신화 속의 신들의 직능, 나이, 아우라(Aura), 시대성, 생활상을 바로 포착하여 신들의 전형적인 품격을 창출해야 한다. 바리데기공주, 자청비, 설문대할망, 삼승할망, 영등할망 등 신들의 신화 속의 삶의 전형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이의 형상화 또한 차별화를 두어야 한다.

세 번째로 자유로운 작가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작가의 상상력이란 작가의 계급성, 그 철학적인 면, 삶의 조건, 시대정신 등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이성적 직관과 함께 필요한 감성적인 면, 정서적 측면, 형상적 인식을 위한 지적이고 체계적 인식 프로그램을 통해 신화미술의 육화적(肉化的) 밑바탕을 마련해야 한다.

네 번째로 예술 방법의 실험성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 사실 예술을 하나의 그릇으로 본다면 그 그릇은 '일상용기'가 아니라 '의미가 담긴 그릇'이어야 한다. 일상용기는 특정한 의미를 담지 않았으므로 항상 분주히 생활에 이용되어 도움이 되지만 중요한 제사에는 '제기(祭器)'로 쓰이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은 일상의 그릇으로서가 아니라 '제기'의 요소가 있다고 본다. 예술의 실험성이야말로 일상의 그릇으로 남고자 하는 행위가 아니라, 무언가 '의미가 있는 그릇'으로 남고자 하는 전위적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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