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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咸李先祖

작성자梧山&咸李사랑|작성시간26.06.16|조회수29 목록 댓글 0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咸李先祖

 

 

1- 이우춘(李遇春:지평공파) 字春吉 咸豊人佐理功臣氲後察訪欽子丁酉應陳景文柳持敬檄同倡義旅從昭義將林公曳橋之戰有軍功後爲直長 [咸平]-호국사 봉안

(국역) 자는 춘길이니 함풍인 좌리공신 온()의 후예로 찰방 흠()의 아들이다. 정유(1592)에 진경문, 유지경의 격문에 응하여 함께 창의(국난을 당해 의군을 일으킴) 하고 소의장군 임공을 따라 예교 전쟁에서 軍功(전공)이 있어 뒤에 직장이 되었다. [함평]-호국사 봉안

 

2- 이곤(李琨:죽곡공파) 字德粹號南嶽咸豊人持平穎波亭岸玄孫大司竹谷長榮子性純謹以孝友稱 兄弟廬墓一菅屨終三年壬辰與同志前參奉李宏中等十八人倡義發文 收聚兵粮軍器送于光州義兵所又聚義穀于法聖浦漕納行在又餉左義兵將任啓英軍又與生員李應鍾 等五十四人同守郡城 [子 弘謙 甲子募義 靈光]

(국역) 자는 덕수이며 호는 남악이니 함풍인이다. 일지평 영파정 안()의 현손으로 대사간 죽곡 장영의 아들이다. 성품이 순수하고 근엄하여 효우로 칭하였다. 형제는 여묘살이에 하나의 관구(한벌의 옷과 신)3년상을 마쳤다. 임진(1592)에 동지들과 더불어 전참봉 이굉중 등 18인과 창의(의병을 일으킴) 발문(문서를 발송)하고 군량과 군기(병기)를 수취(거두어 모아)하여 광주 의병소에 보내고 또 법성포에서 의곡을 모아 행재소에 조납(뱃길로 보냄)하고 또 의병장 임계영의 군사를 보좌하여 먹였으며 또 생원 이응종 등 54과 함께 군성(영광)을 지켰다. [아들 홍겸은 갑자에 의군을 모집하였다. 영광]

 

3- 이분(李芬:현령공파) 字元馥號西溟 咸平人縣監稠玄孫引儀大龜子早登司馬與姜睡隱沆同學以文章節行名世壬辰與前參奉李宏中等十八人倡義發檄募聚兵馬軍粮器械送于高霽峰任啓英義兵所又貿販魚鹽聚米百石送于繼義兵將崔慶長戰所本郡倅遭喪去官與生員李應鍾等五十四員誓死守城公與姜睡隱同掌文書又以義穀別有司從義穀將奇孝曾聚義穀於法聖浦漕納行在未及還鄕遇害於露梁錄宣武原從勳 [兄蓉遇賊不屈而死子英烈 丙子赴義從侄敏謙甲子丙子擧義   靈光 ] -호국사 봉안

(국역) 자는 원복으로 호는 서명이니 함풍인 현감 주의 현손이며 인의 대귀의 아들이다. 일찍이 사마시에 올라 수은 강항과 더불어 함께 배웠으니 문장과 절행으로 세상에 이름이 들어났다. 임진에 전참봉 이굉중 등 18인과 더불어 창의하고 발격(격문을 발송)하여 병마와 군량 기계(병기)를 모아 고재봉(고경명) 임계영의 의병소에 보내고 또 고기와 소금을 팔아 쌀 백석을 모아 계속 의병장 최경장의 전소(진영)에 보냈다. 본군 (영광군의 군수가)이 갑자기 상을 만나 관직을 버려 생원 이응종 등 54인이 함께 죽기를 맹세하고 성(靈光 郡城)을 지키니 수은 강황과 더불어 함께 장문서(의군의 행정직으로 문서를 관장한 직책)로 또 의곡(의군의 양식을 모으는)으로 별유사 의곡장 기효증을 따라 일찍이 법성포에서 의곡을 모아 행재소에 조납(뱃길로 납품)하고 미쳐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때 노량에서 적을 만나 해를 당하여 선무원종공신 훈공으로 기록되었다.

[용은 적을 만났으나 굴하지 아니하고 사망하였으며 아들 영열은 병자에 의군으로 나갔고 종질 민겸은 갑자 병자에 거의(의병을 일으킴) 하였다. 영광]

 

4- 이지득(李止得:참판공파) 字德甫 咸平人 兵判咸平君克明後北兵使宗仁曾孫志節俊邁以別薦 除司僕內乘壬辰方家居聞大駕播遷馳赴行在時兵粮竭乏公自請南下募穀餉師自政府行關兩湖略曰內乘李止得見國家急急之勢懷斷斷急病之心願下本道 募穀餉士其誠可嘉各官使船隻蠲稅載來而亦勿阻遏公遂南還盡傾私儲以白米一百四十三石赤豆一石納于餽餉廳旋聞賊船犯長興募義旅與張景弘等數百人奮擊大破追及興陽斬倭酋石綻等數級忽中丸臨死謂張景弘曰國恥未雪此恨何極言訖而死 [羅州]

-호국사 봉안

(국역) 자는 덕포이니 함평인으로 병조판서 함평군에 증직된 극명의 후예이며 북병사 종인의 증손이니 지절(지조와 절개)이 준매(재주와 직혜가 뛰어남)하여 특별히 천거하여 사복내승에 제수되었다. 임진에 바야흐로 벼슬을 않고 집에서 지내다가 대가(임금의 수레)가 파천(임금이 도성을 떠나 피신)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나가 행재소에 있을 때 병량(군량)이 갈핍하여 공이 스스로 南下를 청해

곡식을 모아 군사를 먹이니 정부로부터 관서와 호남 두 고을을 다스리며 말하기를 내승 이지득은 국가의 급급한 형세를 당하여 단단히 급한 병의 마음을 품고 원해 본도(호남)로 내려가 곡식을 모아 군사를 먹이니 그 정성이 가히 아름답다 각 관리들은 하여금 군량선에 맑은 군량미를 싣고 오는것을 저지하거나 막지말라 공은 마침내 남으로 돌아와서 모두 기울여서 사사로이 저장한 백미 143석과 적두() 1석을 궤양청에 납품하였다. 적선이 장흥을 침범하였다는 것을 두루 듣고서는 장경홍등 수백인과 더불어 분격하여 의려를 모집 흥양에서 추급(뒤쫓아 감)하여 적의 추장 석탄 등 여러사람을 죽였는데 홀연히 탄환에 맞아 죽음에 임하니 장경홍이 말하기를 나라의 부끄럼움을 아지 설욕하지 못했는데 이 한을 어찌 극언에 이르시고 돌아가십니까라고 하였다. [나주]

 

5- 이대익(李大益:운봉공파) 字君遇咸豊人咸豊君彦後壬辰以珍島守城將募聚義旅竭力屢戰遂死於賊錄宣武原從勳 [長城] -호국사 봉안

(국역) 자는 군우이니 함풍인으로 함풍군 언의 후예이다. 임진에 진도 수성장으로 의려를 모취(모집) 갈력(힘을 다하여)하여 거듭 싸우다가 마침내 적에게 죽음을 당하니 선무원종공신의 훈공을 기록하였다. [장성]

 

6- 이옥(李玉:죽음공파) 字德潤 咸平人持平影波亭岸玄孫司書竹陰萬榮子器宇弘偉別薦爲 部將壬辰與本郡同志參奉李宏中發文倡義收募兵粮軍器送于光州義兵所又聚義穀輸納行在又與生員李應鍾等五十四人同守郡城 [孫從仕郞晅進士暉甲子倡義 靈光]

(국역) 자는 덕윤이니 함평인으로 남 지평 영파정 안()의 현손 사서 죽음 만영의 아들이다. 기우가 홍위하여 특별히 추천 부장이 되었다. 임진에 본군 동지 참군 이굉중등과 발문하고 창의하며 군사와 양곡 병기를 거두어 모아 광주의 의병소에 보내고 또 의곡을 모아 행재소에 수납하였으며 또 생원 이응종등 54인과 함께 군성을 지켰다. [손자 종사랑 훤과 진사 휘는 갑자에 국난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영광]

 

7- 이원개(李元愷:효우공파) 字景諧號遠齋咸平人孝友公慴後通經學尙志節癸巳朝家因筵臣丁汝美疏命選一道有地望採察豪富家勸諭募粟而公應是任發文告諭公所薦者八十九人時道臣 李洸貪淫讌遊公以詩譏之洸遂啣之竟沮錄功陶庵李縡撰狀 [咸平]-호국사 봉안

(국역) 자는 경해요 호는 원재이니 함평인 효우공 습의 후손으로 경학에 도통하고 지절이 범상하여 계사에 조정의 연신 정여미의 소로 인하여 도내의 지위와 명망이 있는 사람으로 채찰에 선발되는 명을 받았다. 호부가로 모속(의곡을 모으는)을 권유하여서 공은 이에 응하여 발문과 고유를 위임(담당)하니 공이 추천한 사람이 89인이었다. 당시 도내의 신하 이광이 탐음(지나치게 여색을 탐함)하여 잔치하며 놀아 공은 시로서 그를 기롱하였으니 이광이 드디어 그것을 멈추었다. 마침내 녹공을 저지하니 도암 이재가 가장을 지었다. [함평]

 

8- 이충립(李忠立:운봉공파) 失傳 咸平人兵使從遇玄孫  吏判億春子膂力絶倫登武科歷都摠經歷壬辰與同志李浣根李世環等赴都元帥權公幕效死力戰斬獲甚多 除明川府使錄宣武原從勳 [光州] -호국사 봉안

(국역) 자는 실전 함평인 병사 종우의 현손으로 증직 이조판서 억춘의 아들이다. 근육의 힘이 절륜하여 무과에 합격하고 도총경력을 역임하였다. 임진에 동지 이완근 이세환 등과 함께 도원수 권공(권율)의 막하에 들어가 사력을 본받아 싸움에서 참획한 것이 매우 많아 명천부사에 제수되고 선무원종공신의 훈공을 기록. [광주]

 

9- 이충실(李忠實:효우공파) 誠甫 咸平人孝友堂慴後進士輻子壬辰以武

(국역) 자는 성보로 함평인 효우당 습의 후예이며 진사 복의 아들이다.

科赴李忠武公幕露梁之戰力戰而死 [咸平] 임진 무과로 이충무공 막하에 나가 노량의 전쟁에서 힘써 싸우다 사망하였다. [함평]-호국사 봉안

 

10- 이덕경(李德敬:기성군파-나주) 字敬肅 咸平人咸豊君彦後司僕正遵業孫壬辰從李忠武公露梁力戰中丸死錄宣武原從勳 [咸平] -호국사 봉안

(국역) 자는 경숙이며 함평인으로 함풍군 언()의 후예이며 사복정 존업의 손자이다. 임진에 이충무공을 따라 노량에서 힘써 싸우다 탄환에 맞아 사망하여 선무원종 훈공을 기록하였다. [함평]

 

11- 이덕일(李德一:교수공파) 敬而 號漆室 咸平人參奉依楨孫僉樞訔子自幼性孝文學夙著與姜睡隱沆交遊壬辰慷慨投筆習弓馬讀兵家甲午武科丁酉賊大掠湖嶺公募鄕兵據孤山豎白旗大書精忠二字賊至公以一箭射倒二賊因飛騰往來于樹杪賊驚曰飛將軍賊追至東幕屛風巖 公擊斬數酋遣二子揚弘揚休于忠武公陣 悉陳弊瘼多 募兵穀領赴忠武陣 李公素聞其英聲延問水陸 [咸平]

(국역) 자는 경이요 호는 칠실이니 함평인 참봉 의정의 손자로 첨추 은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성품과 효성 문학이 조숙하여(일찍이 들어나) 수은 강황과 더불어 교유하였다. 임진에 강개하여 붓을 버리고 활쏘기와 말타기를 익히고 병가(병학)를 읽어 갑오에 무과에 오르고 정유에 적이 영,호남을 크게 침략하자 공은 향병(의병)을 모집하여 고산에 근거하였다. 백기를 세워 크게 정충 두 글자를 써 놓았다. 적이 오자 공은 화살 하나로 두명의 적을 쓰러 뜨리고 인하여 공중으로 날아 오르며 나뭇가지 사이를 왕래하니 적이 놀라 날아다니는 장군이다라고 하였다. 적이 추격하여 동막 병풍암에 이르자 공이 여러 두목을 부딪혀 베웠다. 두 아들 양홍과 양휴를 충무공 진영에 보냈다. 다 늘어 놓으니 해지고 병든 것이 많았으며 병곡(군사와 식량)을 모아 충무공 진영에 보냈더니 이공소가 그 아름다눈 행실을 듣고 [함평]

 

12- 이급(李岌:교수공파) 昴伯 號三悔 咸平人敎授文幹孫進士依樹子文學著世親喪廬墓丁酉泣曰主上蒙塵爲臣民 當死國募兵粟往從李忠武公遇賊奮擊 得脫赴忠武陣公曰子雖儒生眞湖南義士也與同事有唐浦庫島捷官訓導 [:咸平 ]

(국역) 자는 묘백이며 호는 삼회이니 함평인 교수 문간의 손자로 진사 의수의 아들이다. 문학이 세상에 들어 났으며 어버이 상에는 여묘살이를 했다. 정유에 읍하며 말하기를 주상께서 몽진하여 신민이 되셨으니 마땅히 나라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군사와 조(식량)를 모아 가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충무공을 따라 적을만나 분격하여~ 충무공이 말하기를 그대 비록 유생이나 진실로 호남의 의사로다더불어 함께 당포와 고도에서 싸움에 이긴 일이 있었다. 벼슬은 훈도이다. [함평]

 

13- 이덕행(李德行:교수공파) 字得誠 號聾菴進士依樹孫訓導岌子氣節慷慨智勇超倫萬曆甲午武科以訓鍊奉事從都元帥權公慄斬獲甚多除宣傳官昏朝杜門屛迹甲子與進士辛惟一 募兵聚穀將赴難聞亂平以所聚穀納于官門 [咸平 ]

(국역) 자는 득성이요 호는 농암으로 진사 의수의 손자 급의 아들이다. 기절이 강개하고 지용이 초윤하니 만력 갑오에 무과에 올라 훈련봉사로 도원수 권공 율을 따라 참획함이 매우 많아 선전관에 제수되었다. 혼조에 두문병적(문을 닫고 자취를 숨김)하고 갑자에 진사 신유일과 함께 모병과 곡식을 모아 나가려 하였으나 어렵다는 것을 듣고 난이 평정되어 모은 곡식(兵糧)을 관아에 바쳤다. [함평]

 

14- 이극성(李克誠:훈도공파) 仲寶 號丈軒 咸平人直長樹封孫參奉春叟子文學著世氣節超倫丁酉率家僮募鄕兵赴李忠武公陣協贊方略唐浦戰斬獲甚多庫島戰多勞績陞僉樞三女俱未䈂遇賊抗節奮罵爭死賊鋒事聞旌閭 [咸平 ] 文昌- 호국사 봉안

(국역) 자는 중보요 호은 장헌이니 함평인 직장 수봉의 손자로 참봉 춘수의 아들이다. 문학이 세상에 들어났다. 기개와 절조가 인륜을 뛰어 넘어 정유년에 가동과 향병들을 이끌고 이충무공 진영에 나갔다. 협찬과 방략으로 당포전에서 참획함이 매우 많았으며 고도전에서는 많은 수고가 쌓여 첨추에 승진되었다. 세 딸도 함께 결혼전에 적을 만나 분매하며 항절로 다투다가 적의 칼 날에 사망하여 일을 듣고 정려를 하였다. [함평] 문창의 손이다.

 

15- 이광선(李光先:함성군파-나주) 汝孝 號文村 咸平人咸豐君彦後參奉夢禎子萬曆辛卯武科壬辰以 縣監扈駕龍灣除判官錄宣武原從勳 [羅州] -호국사 봉안

(국역) 자는 여효로 호는 문촌이니 함평인 함풍군 언()의 후예 참봉 몽정의 아들이다. 만력 신묘에 무과에 오르고 임진에 현감으로 용만에 호가하여 판관에 제수되고 선무원종의 훈공을 기록했다. [나주]

 

16- 이홍겸(李弘謙:죽곡공파) 字季益 咸平人大司諫長榮孫壬辰倡義琨子天姿剛正居家孝友親喪廬墓甲子與本郡進士 辛惟一 等三十一人設義穀都廳於本郡發文道內收聚義穀將以勤王聞賊平以所聚穀納于官 [靈光]

(국역) 자는 계익이니 함평인 대사간 장영의 손자로 임진에 창의한 곤()의 아들이다. 천자(성품)가 강정하여 거가 효우하고 친상에 여묘하였다. 갑자에 본군 진사 신유일 등 31인과 더불어 본군에 의곡도청을 설치하고 발문하며 도내에서 의곡을 모아 임금을 위해 충성을 다하려 하였으나 적이 평정되었다는 것을 듣고 모은 의곡을 관아에 바쳤다. [영광]

 

17- 이홍기(李弘記:죽음공파-1567년추정) 字伯强 咸平人持平岸後大司諫竹谷長榮孫 放曠不拘襟期軒昻 甲子與本郡進士辛惟一參奉辛應純等倡義設廳募聚兵粟賊平而罷 [靈光]

(국역) 자는 백강으로 함평인이니 남지평 안()의 후손 대사간 죽곡 장영의 손자로 이하부지(방광불구하고 금기헌앙하니) 갑자에 본군 진사 신유일 참봉 신응순등과 창의 설청하고 병속을 모취하였으나 적이 평정되어 그만두었다. [영광]

 

18- 이민겸(李敏謙:현령공파) 字子益號竹峰咸平人參奉卜龜孫壬辰戰亡夔子天姿剛毅忠義自勵甲子與本郡進士辛惟一同聲倡義募兵穀將欲勤王聞難平以所聚穀納于官丙 子與本郡前縣監李喜熊及道內義士發檄募聚兵粮赴雲巖李興浡義兵所到淸州聞講和慟哭而還 [靈光]

(국역) 자는 자익이요 호는 죽봉이니 함평인 참봉 복구의 손자로 임진전에서 사망한 기의 아들이다. 천자(자태,맵씨)가 강직하고 충의가 의연하여 스스로 힘을 썼으니 갑자에 본군 진사 신유일과 같은 소리로 창의하고 병곡(軍糧)을 모아 임금을 위해 충성을 다하려 하였으나 어려움이 평정되었다는 것을 듣고 모은 의곡을 관아에 바쳤다. 병자에 본군 전 현감 이희웅 및 도내 의사들과 더불어 격문을 발송하고 兵糧(軍糧)을 모아 달려가 운암 이흥발의 의병소 청주에 도착하여 강화 소식을 듣고는 통곡하며 돌아왔다. [영광]

 

19- 이홍계(李弘誡:죽음공파) 字士儆 咸平人持平穎波亭岸後司書竹陰萬榮孫居喪盡禮甲子與道內同志倡義發論收募義穀爲赴難計公得穀最多聞難平以所聚穀納于官 [靈光]

(국역) 자는 사경이니 함평인으로 남지평 영파정 안()의 후예로 사서 죽음 만영의 손자이다. 상중에는 예를 다하였으며 갑자에 도내 동지들과 창의 발론하고 의곡을 모아 나가게 되었으나 공이 가장 많은 의곡을 얻었음에도 어려움을 듣고 어려움이 평정되자 모은 의곡은 관아에 바쳤다. [영광]

 

20- 이훤(李晅:죽음공파) 字泰舒 咸平人持平潁波亭崖後司書竹陰萬榮曾孫少睡隱姜沆門文行夙著甲子與道內同志募義穀爲赴難計難平以其穀納于[靈光]

(국역) 자는 태서요 함평인으로 남지평 영파정 애의 후손이며 사서 죽음 만영의 증손이다. 어려서 수은 강황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문행이 일찍이 들어나 갑자에 도내 동지들과 의곡을 모아 나가려 하였으나 계획이 어려워 어려움이 평정되었다는 것을 듣고 모은 의곡을 관아에 바쳤다. [영광]

 

21- 이휘(李暉:죽음공파)字國舒咸平人持平潁波亭崖後司書竹陰萬榮曾孫姿稟宏偉文雅夙成與兄晅受學睡隱姜公門甲子與道內同志募聚義穀將赴難難平以其穀納于官 [靈光]

(국역) 자는 국서요 함평인이라 남지평 영파정 애의 후손 죽음 만영의 증손이다. 자품이 크고 훌륭하여 숙성하였다 형 훤과 함께 수은 강공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갑자에 도내 동지들과 의곡을 모아 나가려 하였으나 어려워 어려움이 평정되자 그 의곡을 관아에 바쳤다. [영광]

 

22- 이시우(李時佑:효우공파) 字公振咸平人號龍巖孝友堂慴後通經學有大節光海朝從伯氏時挺討李楷凶論丁卯與別提鄭稷生員李馠擧義至泰仁聞媾成與同事林堜慟哭而還有詩曰抱守麟經無地讀誰將椎擊博浪沙終身不出戶庭享年九耋而醜爲僞號辭壽資著遺訓令勿請狀誌使子孫之生見丙丁者永絶科宦母孤皇朝厚恩遂至三世廢擧 [咸平]

(국역) 자는 공진이니 함평인으로 호는 용암이며 효우당 습의 후예이다. 경학에 통하고 대절이 있어 광해조에 종백씨 시정을 따라 이해의 흉론을 토벌했다. 정묘에 별제 정직 생원 이함과 거의(의병을 일으킴)하여 태인에 이르러 화친과 같은 일을 듣고 임연과 통곡하고 돌아왔다. 시가 있어 말하기를 포수린경무지독 수장퇴격박랑사(七言인 듯 하나 의미는 해석이 곤란하여 알수 없슴)라 하고 종신토록 집 밖을 나서지 아니하니 향년 90으로서 추하여(이하 번역 실력이 부족하여 번역하여 읽을 수 없으나 90이 넘도록 생존한 수명이 거짖 호사(好事 吏讀로 사용한 듯)호사가 되고 자산이 아니니 후손들은 본인의 가장이나 묘지를 청하여 남기지 말고 또한 병()자나 정()자가 들어간 해에 태어난 사람(본 사람)은 영원히 벼슬길에 나가지 말라고 하여 외로운 황조(조선)의 조정 두터운 은혜가 마침내 3대에 이르기까지 과거 시험에 응하지 않았다는 내용인 듯하나 추측일 뿐입니다) [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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