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필드 M1917 라이플
개런드는 1930년에 독창적인 노리쇠 회전식 폐쇄기구(Rotating Bolt) 를 이용하는 가스압 작동식 반자동 라이플 특허를 신청하고 2년뒤에 미국 특허를 따는데 성공한다. 당시 개런드는 조병창의 수석 민간 엔지니어였다. 그런데 그가 구상중인 라이플의 성공을 가로막는 가장 암적인 존재는 군수뇌부로 이뤄진 '조병창 위원회'였다. 뜬금없이 전차 승무원이나 보병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총을 만들어내라고 요구하질 않나...엎친데 덮친 격으로 개런드는 구닥다리 M1903 라이플의 부품을 최대한 활용해서 기관총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병창의 황당한 요구와도 실갱이를 벌여야 했다.

스프링필드 M1903 라이플
앞서, 다른 총기 설계자들과는 달리 개런드의 유명세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개런드 자신이 평~~~생, 군소속이 이닌 민간 연구원으로 총을 개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런 약점 때문에 개런드 라이플이 미군 제식으로 채택되는 과정에서 개런드는 몇차례 수난을 격어야 했다. 개런드는 자신의 라이플에 사용할 탄으로는 .30-06탄을 선택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이 탄환은 이미 1차대전때 써먹던 M1903이나 M1907 볼트액션 라이플에도 사용됐기 때문에 재고량이 엄청나게 쌓여있었다.

"나는 입대신 M1과 총알로 말한다..."
미군 제식 라이플 트라이얼에서 개런드 라이플은 일단 '펜치'를 먹는다. 당시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는 .30 구경탄에 지연폭발화약과 뇌관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개런드 라이플의 시스템과는 전혀 매칭이 되지 않는 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혜성처럼 등장한 총기 설계자 존 페더슨은 색다른 주장으로 자신의 반자동 라이플을 홍보하며 주목받았다.
".30-06탄은 반자동 라이플용으로는 너무 쎈거 아냐?"
페더슨은 .276 (7 X 53mm)탄을 사용했는데 이게 의외로 먹혀들어갔다. 실제로 돼지와 염소를 대상으로 .276탄과 .30-06탄을 테스트하면서 .276탄의 효용성이 입증되자 위원회에서는 .276탄을 제식탄으로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개런드에게도 .30-06탄 대신 .276탄을 사용하는 총기로 '둔갑'시켜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후 4년동안 개런드와 페더슨의 라이플을 비롯해서 몇가지 민수용 라이플까지 미군 제식소총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인다. 그런데 초기에 주목받았던 페더슨 라이플은 조기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게 된다. 윤활제가 뿌려진 탄을 사용해야 제대로 동작하는 구조라 청소를 제대로 안해주면 총 내부에 먼지와 이물질이 덕지덕지 들러붙었기 때문이다.
차츰 잊혀져가던 개런드 라이플을 주목한 사람은 바로 장본인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었다. 이 양반은 차세대 군용 라이플에도 .30-06탄을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는데, 사실 군 내부적으로도 소총과 기관총에 동일규격의 탄환을 사용하길 바랐기 때문에 맥아더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맥아더 장군(1880 ~ 1964)
미 의회에서도 .276탄의 제조 예산을 삭제하는 진통을 겪은 끝에 개런드 라이플은 오리지널 .30-06탄을 사용하게 되었다. 사실, 개런드가 자신의 총을 .30-06버전으로 다시 만들지 않았다면 미국은 2차 세계 대전에 상당한 고역을 치렀을 지도 모른다. 개런드 라이플이 대전내내 너무도 맹활약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어쨌건, 여러 테스트를 거친 끝에 1936년이 돼서야 개런드 라이플은 30여년간 미군 제식으로 사용되던 스프링필드 M1903 라이플의 뒤를 이어 .30구경 M1 라이플이란 제식명칭으로 미군 제식 라이플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민간 사격장에서의 M1 개런드
개런드 라이플의 제원을 살펴보자. 무게는 약 4.5Kg이었고 장탄수는 8발로 로테이팅 볼트의 가스압 작동식이며 기존의 미군제식 볼트액션식 라이플과 위력은 동일했다. 버뜨...연사속도는 볼트액션방식에 비해 2배이상 빨랐다. 물론 초기에 지급된 개런드 라이플은 잼현상이 자주 발생해서 미의회에 보고되어 1939년에 가스 포트 시스템을 변경했으며, 덕분에 반자동 사격시의 잼 현상은 해결을 볼수 있었다.

가스 시스템의 구조변경. 좌측은 오리지널인 1932년, 우측은 개량된 1939년 개런드의 특허 도면.
오리지널 M1의 경우 총구쪽에 익스텐션을 통해 가스가 유입되는 구조였으나 신뢰성이 떨어져서
개량형은 총구쪽에 구멍을 뚫어 가스 포트를 통해 가스가 유입되도록 변경되었다.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면서 그 무시무시한 공업 생산능력을 풀 가동, 스프링필드 아머리 조병창과 '윈체스터사'등에서 전쟁 기간중 찍어낸 개런드 라이플은 무려 400만정에 달한다.

2차대전당시 독일군의 주력라이플은 5연발 볼트액션식인 KAR-98K였다.
M1 개런드 라이플의 최대 장점은 역시 반자동 사격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개런드 라이플이 대활약한 2차대전 당시 반자동 라이플을 사병들에게 제식으로 지급한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게다가 장탄수마저 8발로 당시의 일반적인 볼트액션식 라이플보다 3발정도 많았다. 물론 자잘한 단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건 M1 개런드가 맹활약 했던 시대의 기준으로는 가장 최첨단을 달리는 군용 라이플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참호전과 같은 좁은 공간에서 반자동 방식의 개런드 라이플이 당시 독일군
제식이었던 볼트액션식 KAR98K보다 훨씬 유리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개런드 라이플은 신뢰성과 명중률, 내구성등 모든 면에서 병사들의 합격점을 받기에 충분했다. 진흙구덩이에 처박거나 비를 쫄딱 맞거나 얼어서 오줌을 내리 깔기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쏴도 멀쩡하게 작동했다. 전용 클립에 8발의 .30-06탄이 끼워진채 총에 수납되는데 클립 없이는 장전할 수 없다.
찰캉...옆에서 필자가 직접 지켜본 장면.(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등장했던 소품)
물론 단점도 없지 않았는데...마지막 탄을 발사하면 클립은 방출되고 노리쇠는 오픈된 상태에서 멈추는데, 문제는 클립 방출시 요란한 소리가 나서 적에게 '탄 비었소...' 라고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었다. 또한 탄을 모두 발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클립을 교환하는 것도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었으며, 클립을 끼워 넣으면서 충격을 주면 볼트가 풀려 엄지손가락을 찧는 사고도 빈번했다. 총알이 오락가락 하는 마당에 엄지 하나가 대수겠냐만, 재장전할때마다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면 총을 다루는 입장에서도 꽤나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M1 개런드 클립과 장전 모습
그리고 4.5Kg에 이르는 막강한 무게도 고역이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개런드 라이플은 역대 미군 군용 라이플중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위력은 5.56mm탄을 쓰는 현재의 M16의 2배요....스코프를 얹으면 저격총으로 쓸 수 있을 만큼 명중률이 좋았고, 일단 튼튼하기 때문에, 2차대전중 발지 대전투에서부터 오키나와 전투에까지 이 총은 미군 병사들의 가장 믿음직한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