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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새 두 마리

작성자그린맘*^^*|작성시간11.07.25|조회수2,805 목록 댓글 0

노새 두 마리 / 최일남

 

첨부파일 최일남 '노새 두 마리'.ppt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노새 가족을 통해서 도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도시빈민의 불행을 그린 작품이다. '노새'라는 상징적 소재를 통해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시골에서 상경한 가족이 도시에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 작품 발췌 읽기

그 골목은 몹시도 가팔랐다. 아버지는 그 골목에 들어서기만 하면 미리 저만치 앞에서부터 마차를 세게 몰아가지고는 그 힘으로 하여 단숨에 올라가곤 했다. 그러나 이 작전이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더러는 마차가 언덕의 중간쯤에서 더 올라가지를 못하고 주춤거릴 때도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이마에 심줄을 잔뜩 돋우며, “이랴 이랴!” 하면서 노새의 잔등을 손에 휘감고 있는 긴 고삐줄로 세 번 네 번 후려쳤다. 노새는 그럴 때마다 뒷다리를 바득바득(악착스럽게 애쓰는 모양) 바둥거리며 안간힘을 쓰는 듯했으나 그쯤 되면 마차가 슬슬 아래쪽으로 미끄러 내리기는 할망정 조금씩이라도 올라가는 일은 드물었다.

 

물론 마차에 연탄을 많이 실었을 때와 적게 실었을 때에도 차이는 있었다. 적게 실었을 때는 그깟 것 달랑달랑 단숨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런 때는 드물고 대개는 짐을 가득가득(양이 많이 차 있는 모양) 싣고 다녔다. 가득 실으면 대충 오백 장에서 육백 장까지 실었는데 아버지는 그래야만 다소 신명이 나지 이백 장이나 삼백 장 같은 것은 처음부터 성이 안 차는 눈치였으며, 백 장쯤은 누가 부탁도 안 할뿐더러 아버지도 아예 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우리 동네는 변두리였으므로 얼마 전까지도 모두 그날그날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 연탄 배달도 일거리가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구멍가게에서 두서너 장을 사서는 새끼줄에 조롱조롱 매달고 가는 게 고작이었다. 그랬는데 이삼 년 전부터 아직도 많은 빈터에 집터가 다져지고 하나둘 문화 주택이 들어서더니 이제는 제법 그럴듯한 동네꼴이 잡혀갔다. 원래부터 있던 허름한 집들과 새로 생긴 집들과는 골목 하나를 경계로 하여 금을 긋듯 나누어져 있었는데, 먼 데서 보면 제법 그럴싸한 동네로 보였다. 일단 들어와 보면 지저분한 헌 동네가 이웃에 널려 있지만, 그냥 먼발치로만 보면 2층 슬라브집들에 가려 닥지닥지 붙인 판잣집 등속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서울의 변두리에 흔한 여느 신흥 부락으로만 보였다.

 

동네가 이렇게 바뀌자 그것을 가장 좋아한 사람 중의 하나가 아버지였다. 아까 말한 대로 그전에는 동네 사람들이 연탄을 두서너 장, 많아야 이삼십 장씩만 사가는 터여서 아버지의 일거리가 적고, 따라서 이곳에서 이삼 킬로나 떨어진 딴 동네까지 배달을 가야 했는데 동네에 새 집이 많이 들어서면서부터는 그렇게 먼 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집에서 연탄을 한번 들여놓았다 하면 몇 달씩 때니까 자주 주문을 하지 않아서 아버지의 일감이 이 동네에서 끝나는 것만은 아니고, 여전히 타동네까지 노새 마차를 몰기는 했지만 그전보다는 자주 먼곳까지 가지 않아도 된 것만은 사실이었다.

 

새동네(우리는 우리가 그전부터 살던 동네를 구동네, 문화주택들이 차지하고 들어선 동네를 새동네라 불렀다)가 생기면서 좋아한 것은 비단 아버지만은 아니었다. 구동네에 두 곳 있던 구멍가게 주인들도 은근히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전까지는 가게의 물건들이 뽀얗게 먼지를 쓰고 있었고, 두 홉짜리 소주병만 육실하게 많았는데 그 병들 사이에 차츰 환타니 미린다니 하는 음료수병들이며 퍼모스트 아이스크림도 섞이고, 할머니의 주름살처럼 주름이 좍좍 가 말라비틀어진 사과 사이에 귤상자도 끼이게 되었다.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우유 배달부가 아침마다 골목을 드나들고, 갖가지 신문 배달부가 조석으로 골목 안을 누비고 다녔다. 전에는 얼씬도 않던 슈샤인 보이가 새벽이면 “구두 닦으…….” 하면서 외치고 다녔다. 전에는 저 아래 큰 한길가 근처에 차를 대놓고, 올 테면 오고 말 테면 말라는 식으로 버티던 청소부들이 골목 안까지 차를 들이대고 쓰레기를 퍼갔다.

 

그러나 동네의 모습이 이처럼 달라지기는 했어도 구동네와 새동네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는 일이 없었다. 너는 너, 나는 나 하는 식으로 새동네 사람들은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누가 다가오는 것을 거절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들어옴으로 해서 구동네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조금 달라지기는 했는데 아무도 그걸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아버지도 배달일이 늘어나서 속으로는 새동네가 생긴 것을 은근히 싫어하지는 않는 눈치였지만, 식구들 앞에서조차 맞대 놓고 그런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 노새는 온 동네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고 짤랑짤랑 이 골목 저 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아니 그것은 새동네 쪽에서 더욱 그랬다. 원래의 우리 동네에서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중략된 줄거리] 어느 날 마차를 끌고 가파른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던 노새가 달아나 버린다. 이에 아버지와 아들은 노새를 찾아 이곳저곳으로 수소문하며 다니다가 동물원에까지 가게 된다.

 

그러던 아버지가 잠시 발을 멈춘 곳은 얼룩말이 있는 우리 앞이었다. 얼룩말은 두 마리였다. 아버지는 그러나 그 앞에서도 멍하니 서 있기만 하지 이렇다 할 감정의 표시를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한번 쳐다보고, 얼룩말을 한번 쳐다보고 하였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얼굴이 어쩌면 그렇게 말이나 노새와 닮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꼭 그랬다. 길게 째진, 감정이 없는 눈이며 노상 벌름벌름한 코, 하마 같은 입, 그리고 덜렁하니 큰 귀가 그랬다. 아버지가 너무 오래 말이나 노새를 다뤄 와서 그런 건지, 애당초 말이나 노새 같은 사람이어서 그런 짐승과 평생을 같이 해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막상 얼룩말 앞에 세워 놓은 아버지는 영락없는 말의 형상이었다.

 

동물원을 나왔을 때 이미 거리는 밤이었다. 이번엔 집 쪽으로 걸었다. 그럴 수밖에 우리는 더 갈 데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동네가 저만치 보였을 때 아버지는 바로 눈앞에 있는 대폿집에서 발을 멈추었다. 힐끗 나를 돌아보고 나서 다짜고짜 나를 술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런 일도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술집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서 왁왁 떠들어대고 있었다. 돼지고기를 굽는 냄새, 찌개 냄새, 김치 냄새가 집 안에 가득했다. 사람들은 우리를 의아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았으나 이내 시선을 거두고 자기들의 얘기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그 냄새들을 힘껏 마셨다. 쓰러질 것 같았다. 아버지는 소주 한 병과 안주를 시키더니 안주는 내 쪽으로 밀어 주고 술만 거푸 마셔 댔다. 아버지는 술이 약한 편이어서 저러다가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 고만 드세요. 몸에 해로워요.”

“으응.”

 

대답하면서도 아버지는 술잔을 놓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안주를 계속 주워 먹었으므로 어느 정도 시장기를 면한 나는 비로소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이제부터 내가 노새다. 이제부터 내가 노새가 되어야지 별수 있니? 그놈이 도망쳤으니까 이제 내가 노새가 되는 거지.”

 

기분 좋게 취한 듯한 아버지는 놀라는 나를 보고 히힝 한번 웃었다. 나는 어쩐지 그런 아버지가 무섭지만은 않았다. 그러면 형들이나 나는 노새 새끼고, 어머니는 암노새고, 할머니는 어미 노새가 되는 것일까? 나도 아버지를 따라 히히힝 웃었다. 어른들은 이래서 술집에 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안주만 집어 먹었는데도 술 취한 사람마냥 턱없이 즐거웠다. 노새 가족…… 노새 가족은 우리 말고는 이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아버지와 내가 집에 당도했을 때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우리를 본 어머니가 허둥지둥 달려 나와 매달렸다.

 

"이걸 어쩌우, 글쎄 경찰서에서 당신을 오래요. 그놈의 노새가 사람을 다치게 하고 가게 물건들을 박살을 냈대요. 이걸 어쩌지?"

 

"노새는 찾았대?"

 

"찾거나 그러면 괜찮게요? 노새는 간데온데없고 사람들만 다치게 하니까, 누구네 노새가 그랬는지 수소문 끝에 우리집으로 순경이 찾아왔지 뭐유."

 

오늘 낮에 지서에서 나온 사람이 우리 노새가 튀는 바람에 여기 저기서 많은 피해를 입었으니 도로 무슨 법이라나 하는 법으로 아버지를 잡아 넣어야겠다고 이르고 갔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술이 확 깨는 듯 그 자리에 선 채 한동안 눈만 데룩데룩 굴리고 서 있더니 힝 하고 코를 풀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스적스적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나는 '아버지' 하고 뒤를 따랐으나 아버지는 돌아보지도 않고 어두운 골목길을 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또 한 마리의 노새가 집을 나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무엇인가가 뒤통수를 때리는 것을 느꼈다. 아, 우리 같은 노새는 어차피 이렇게 비행기가 붕붕거리고, 헬리콥터가 앵앵거리고, 자동차가 빵빵거리고, 자전거가 쌩쌩거리는 대처에서는 발붙이기 어려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남편이 택시 운전사인 칠수 어머니가 하던 말, '최소한도 자동차는 굴려야지 지금이 어느 땐데 노새를 부려.'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 동안이고 나는 금방 아버지를 쫓았다. 또 한 마리의 노새를 찾아 캄캄한 골목길을 마구 뛰었다.

 

■ 작품의 줄거리

노새를 생계수단으로 연탄배달을 하는 가족은 도시 변두리에서 어렵게 생활한다. 그러다 신동네가 생기면서 연탄배달 주문도 늘고(사람들이 노새가 신기해서 흥미로 연탄배달을 많이 한다.) 좋아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이제 그 관심도 떨어지고 주문도 점차 줄어든다. 그런 와중에 가족의 생계 수단인 노새가 도망친다. 생계를 위협하는 이 상황 속에 아버지와 나는 노새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찾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 과정에서 그 누구도 가족의 상황에 관심을 갖거나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 도시의 비정함 속에서 '나'는 아버지가 일만 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노새가 아닌가 생각하며, 아버지 역시 이제는 내가 노새다라고 말하면서 가장으로서 이제는 가족의 생계를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드러낸다. 그 결심으로 귀가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불행이다. 도망친 노새가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한 것이다. 경찰서로 오라는 말을 듣고 집을 나가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아버지와 노새 모두 도시적 삶에 적응하며 사는 것이 힘겨운 일임을 깨달으며, 언젠가 이웃이 말한 비행기, 헬리곱터, 자동차가 빵빵거리는 대처에서 노새로 사는 것은 힘들다는 말을 떠올린다.

 

■ 핵심정리

- 갈래 : 단편소설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배경

시간적 - 1970년대 서울

공간적 - 서울 변두리 동네

- 주제 :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도시 이주민들의 불행한 삶.

              정신적, 정서적 뿌리와 고향을 상실한 한 가족의 기이한 삶과 시대착오적인 풍습

(작가의 주제의식 - 고향을 떠나 도시 변두리에서 추락해 가는 한 가장의 모습을 통해 고향을 상실한 한 가족의 기이한 삶과 시대착오적인 풍습을 보여주려 한다.)

 

 

■ 구성 단계

 

- 발단 : 우리 동네 옆에 새로운 동네가 생겼다. 말은 안 했지만 아버지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는 눈치이다.

 

- 전개 : 새 동네가 생겨 동네의 모습이 달라졌지만 우리 동네가 새 동네 사람들이 어울리는 일은 없었다. 새 동네 사람들은 우리 노새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 위기 : 평소 연탄을 싣고도 거뜬히 올라가던 언덕에서 노새가 멈춰선다. 사람들이 도와주기는커녕 바라만 보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마차가 전복되자 노새가 그만 달아나 버린다.

 

- 절정 : 아버지와 ‘나’는 노새를 찾아 거리를 배회하지만 소용이 없다. 대폿집에서 술에 취한 아버지가 자신이 노새가 되겠다며 ‘나’를 보고 웃자 나도 아버지를 따라 웃는다.

 

- 결말 : 집에 도착하자 노새가 사람을 다치게 하고 가게 물건을 박살내서 순경이 왔다 갔다는 말을 듣는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노새를 찾아 문 밖으로 걸어 나간다.

 

 

 

 

■ 이해와 감상

 

- 한 가족이 마땅히 뿌리박고 살아야 할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올라와 겪는 기이한 삶과 정황을 그리고 있다. 이미 도시에서는 종적을 감춘 노새가 연탄을 배달하는 기이한 풍경과 결말, 그리고 서울에서 자수성가하여 상류 생활을 하게 된 아들에게 얹혀사는 시골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불협화음적인 풍속의 괴리를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노새'는 이 시대를 힘겹고 고단하게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하는 노새는,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정신적 뿌리를 상실했지만, 가장의 책임을 다하려는 아버지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또한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노새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배경에는 도시화로 인해 고향을 잃어버리고 혼란스러워하는 소시민들의 고달픔과 소외감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하늘에는 비행기가, 땅에는 자동차들이 점령한 도시 안에서 마차를 끄는 노새는 급변하는 사회 안에 내재되어 있는 풍속의 괴리와 뒤죽박죽된 삶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 <노새 두 마리>는 노새를 끌고 다니며 연탄 배달을 하는 아버지를 둔 '나'의 눈을 통해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시골에서 도시 변두리(소외 지역)로 자리 잡은 우리 가족은 노새를 운송 수단으로 하여 배달을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노새 배달이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자 많은 주문이 들어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자 배달 주문은 급격하게 줄어든다. 언덕을 오르던 노새가 갑자기 서도 사람들은 도와주지 않는다. 그때 마차가 전복되자 노새는 달아나 버린다. 노새가 포박을 벗고 달아나 버렸듯이 어떻게든 자리를 잡고 살고자 했던 한 가족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현대 문명 속에 함께 존재할 수 없는 노새의 존재를 통해 또다른 노새('아버지')인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결국 작가는 고향을 떠나 도시 변두리에서 추락해 가는 한 가정의 모습을 통해 고향과 정신적 뿌리를 상실한 사람들의 불행한 삶과 정황을 그리고 있다.

 

노새 ↔ 헬리곱터, 자동차 자전거 (풍속의 괴리와 불협화음)

 

※ 참고

 

최일남의 주제가 보다 강렬하게 응축되어, 풍속적인 괴리가 삶의 파탄으로 접근한다는 경고적인 예를 그의 <노새 두 마리>와 <흔들리는 성(城)>에서 찾아보자. 이 두 단편에 특히 주목하는 것은 가족이란 틀의 안과 밖을 통해 도시의 문화와 풍속이 농촌의 그것과 정면으로 맞부닥치는 데서 야기되는,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뿌리뽑힌 한국인의 심상을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미 도시에서는 종적을 감춘 노새가 연탄을 배달하는 기이한 풍경과 결말, 그리고 서울서 자수성가하여 상류생활을 하게 된 아들에게 얹혀 사는 시골 어머니의 열패에서 한국 사회의 불협화음적인 풍속의 괴리를 보여준다.

 

<노새 두 마리>는 한 가족이 마땅히 뿌리박고 살아야 할 고향을 버리고 서울로 틈입해 들어왔을 때 파탄나고야마는 정황을, <흔들리는 성>은 한 가족 내에서 일상의 정서적 실용적 배경이 다른 사람끼리 모임으로써 뿌리째 흔들리는 가정의 분위기를 묘사함으로써, 작가는 이 두 가정의 좌절과 동요의 모습을 통해, 한국 사회에 대한 하나의 비유를 하고 있는 것이다.

 

■ 작가소개

최일남(崔一男, 1932.12.29~ )

소설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고향의 모습과 그 고향의 희생을 딛고 출세한 시골 출신의 도시인들이 느끼는 부채의식 등이 그의 소설의 주류를 이룬다. 월탄문학상, 소설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전라북도 전주 출생으로 전주사범학교를 거쳐 1952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국문과에 입학하여 1956년 졸업하고, 1958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1960년 수료하였다. 1953년 《문예》에 《쑥 이야기》가 추천 발표되고, 1956년 《현대문학》에 소설 《파양》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이후 《진달래》 《탄생》 《동행》 《보류》 《여행》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했으나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언론인으로서 활동하게 되어 창작활동을 거의 중단하게 되었다.

 

1959년 민국일보 문화부장을 시작으로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의 문화부장을 지내고, 1980년 동아일보 편집부 국장에서 해직될 때까지 언론 활동에 주력하면서 《두 여인》(1966) 《축축한 오후》(1967)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1973년부터 《빼앗긴 자리》 《노란 봉투》 《이런 해후》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재개하였다. 이후 창작활동과 언론활동을 병행하면서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최일남적인 소설 색채를 갖추었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가 이루어진 이 시기에 이른바 '출세한 촌사람들'이 겪는 이야기를 토착어의 풍부한 구사와 건강한 해학성을 바탕으로 삼은 개성적인 문체로 표현하였다.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고향의 모습과 그 고향의 희생을 딛고 출세한 시골 출신의 도시인들이 느끼는 부채의식 등이 그의 소설의 주류를 이룬다.

 

1980년대 들어 해직의 아픔을 겪고 1984년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복직하면서 《고향에 갔더란다》(1982) 《거룩한 응달》(1982) 《서울의 초상》(1983) 등에서 날카로운 역사적 감각,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전면에 드러내었다. 그러나 분명한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함축하면서도 날카로운 공격이 아니라 해학적인 문체를 살려 건전한 상식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1988년 한겨레신문 논설고문을 지냈고, 1999년 현재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고문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작가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월탄문학상(1975)을 시작으로 한국창작문학상(1981), 《흐르는 북》으로 이상문학상(1986), 가톨릭 언론문학상(1988), 인촌문학상(1994), 위암 장지연상(언론부문, 1995), 은관문화훈장(2001) 등을 수상하였다.

 

저서에 작품집 《서울 사람들》(1975) 《거룩한 응달》(1982) 《누님의 겨울》(1984) 《그리고 흔들리는 배》(1984) 《틈입자》(1987) 《히틀러나 진달래》(1991) 《하얀 손》(1994) 《만년필과 파피루스》(1997) 등이 있고, 수필집 《홀로 생각하며 걸으며》 《바람이여 풍경이여》가 있으며, 시사평론집 《왜소한 인간의 위대함, 위대한 인간의 왜소함》이 있다.

 

 

 

 

■ 수능형 문제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그 골목은 몹시도 가팔랐다. 아버지는 그 골목에 들어서기만 하면 미리 저만치 앞에서부터 마차를 세게 몰아가지고는 그 힘으로 하여 단숨에 올라가곤 했다. 그러나 이 작전이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더러는 마차가 언덕의 중간쯤에서 더 올라가지를 못하고 주춤거릴 때도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이마에 심줄을 잔뜩 돋우며, “이랴 이랴!” 하면서 노새의 잔등을 손에 휘감고 있는 긴 고삐줄로 세 번 네 번 후려쳤다. 노새는 그럴 때마다 뒷다리를 ⓐ(바득바득 / 바짝바짝) 바둥거리며 안간힘을 쓰는 듯했으나 그쯤 되면 마차가 슬슬 아래쪽으로 미끄러 내리기는 할망정 조금씩이라도 올라가는 일은 드물었다.

 

물론 마차에 연탄을 많이 실었을 때와 적게 실었을 때에도 차이는 있었다. 적게 실었을 때는 그깟 것 달랑달랑 단숨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런 때는 드물고 대개는 짐을 ⓑ(가득가득 / 가뜬가뜬) 싣고 다녔다. 가득 실으면 대충 오백 장에서 육백 장까지 실었는데 아버지는 그래야만 다소 신명이 나지 이백 장이나 삼백 장 같은 것은 처음부터 성이 안 차는 눈치였으며, 백 장쯤은 누가 부탁도 안 할뿐더러 아버지도 아예 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우리 동네는 변두리였으므로 얼마 전까지도 모두 그날그날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 연탄 배달도 일거리가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구멍가게에서 두서너 장을 사서는 새끼줄에 ⓒ(조롱조롱 / 대롱대롱) 매달고 가는 게 고작이었다. 그랬는데 이삼 년 전부터 아직도 많은 빈터에 집터가 다져지고 하나둘 문화 주택이 들어서더니 이제는 제법 그럴듯한 동네꼴이 잡혀갔다. 원래부터 있던 허름한 집들과 새로 생긴 집들과는 골목 하나를 경계로 하여 금을 긋듯 나누어져 있었는데, 먼 데서 보면 제법 그럴싸한 동네로 보였다. 일단 들어와 보면 지저분한 헌 동네가 이웃에 널려 있지만, 그냥 먼발치로만 보면 2층 슬라브집들에 가려 ⓓ(너절너절 / 닥지닥지) 붙인 판잣집 등속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서울의 변두리에 흔한 여느 신흥 부락으로만 보였다.

 

동네가 이렇게 바뀌자 그것을 가장 좋아한 사람 중의 하나가 아버지였다. 아까 말한 대로 그전에는 동네 사람들이 연탄을 두서너 장, 많아야 이삼십 장씩만 사가는 터여서 아버지의 일거리가 적고, 따라서 이곳에서 이삼 킬로나 떨어진 딴 동네까지 배달을 가야 했는데 동네에 새 집이 많이 들어서면서부터는 그렇게 먼 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집에서 연탄을 한번 들여놓았다 하면 몇 달씩 때니까 자주 주문을 하지 않아서 아버지의 일감이 이 동네에서 끝나는 것만은 아니고, 여전히 타동네까지 노새 마차를 몰기는 했지만 그전보다는 자주 먼곳까지 가지 않아도 된 것만은 사실이었다.

 

새동네(우리는 우리가 그전부터 살던 동네를 구동네, 문화주택들이 차지하고 들어선 동네를 새동네라 불렀다)가 생기면서 좋아한 것은 비단 아버지만은 아니었다. 구동네에 두 곳 있던 구멍가게 주인들도 은근히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전까지는 가게의 물건들이 뽀얗게 먼지를 쓰고 있었고, 두 홉짜리 소주병만 육실하게 많았는데 그 병들 사이에 차츰 환타니 미린다니 하는 음료수병들이며 퍼모스트 아이스크림도 섞이고, 할머니의 주름살처럼 주름이 좍좍 가 말라비틀어진 사과 사이에 귤상자도 끼이게 되었다.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우유 배달부가 아침마다 골목을 드나들고, 갖가지 신문 배달부가 조석으로 골목 안을 누비고 다녔다. 전에는 얼씬도 않던 슈샤인 보이가 새벽이면 “구두 닦으…….” 하면서 외치고 다녔다. 전에는 저 아래 큰 한길가 근처에 차를 대놓고, 올 테면 오고 말 테면 말라는 식으로 버티던 청소부들이 골목 안까지 차를 들이대고 쓰레기를 퍼갔다.

 

그러나 동네의 모습이 이처럼 달라지기는 했어도 구동네와 새동네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는 일이 없었다. 너는 너, 나는 나 하는 식으로 새동네 사람들은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누가 다가오는 것을 거절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들어옴으로 해서 구동네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조금 달라지기는 했는데 아무도 그걸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아버지도 배달일이 늘어나서 속으로는 새동네가 생긴 것을 은근히 싫어하지는 않는 눈치였지만, 식구들 앞에서조차 맞대 놓고 그런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 노새는 온 동네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고 짤랑짤랑 이 골목 저 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아니 그것은 새동네 쪽에서 더욱 그랬다. 원래의 우리 동네에서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중간 줄거리] 어느 날 마차를 끌고 가파른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던 노새가 달아나 버린다. 이에 아버지와 아들은 노새를 찾아 이곳저곳으로 수소문하며 다니다가 동물원에까지 가게 된다.

 

 

그러던 아버지가 잠시 발을 멈춘 곳은 얼룩말이 있는 우리 앞이었다. 얼룩말은 두 마리였다. 아버지는 그러나 그 앞에서도 멍하니 서 있기만 하고, 얼룩말을 한번 쳐다보고 하였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얼굴이 어쩌면 그렇게 말이나 노새와 닮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꼭 그랬다. 길게 째진, 감정이 없는 눈이며 노상 ⓔ(벌름벌름 / 날름날름)한 코, 하마 같은 입, 그리고 덜렁하니 큰 귀가 그랬다. 아버지가 너무 오래 말이나 노새를 다뤄 와서 그런 건지, 애당초 말이나 노새 같은 사람이어서 그런 짐승과 평생을 같이해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막상 얼룩말 앞에 세워 놓은 아버지는 영락없는 말의 형상이었다.

 

동물원을 나왔을 때 이미 거리는 밤이었다. 이번엔 집 쪽으로 걸었다. 그럴 수밖에 우리는 더 갈 데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동네가 저만치 보였을 때 아버지는 바로 눈앞에 있는 대폿집에서 발을 멈추었다. 힐끗 나를 돌아보고 나서 다짜고짜 나를 술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런 일도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술집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서 왁왁 떠들어대고 있었다. 돼지고기를 굽는 냄새, 찌개 냄새, 김치 냄새가 집안에 가득했다. 사람들은 우리를 의아스런 눈초리로 쳐다보았으나 이내 시선을 거두고 자기들의 얘기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아버지는 소주 한 병과 안주를 시키더니 안주는 내 쪽으로 밀어주고 술만 거푸 마셔댔다. 아버지는 술이 약한 편이어서 저러다가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 고만 드세요. 몸에 해로워요.”

 

“으응.”

 

대답하면서도 아버지는 술잔을 놓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안주를 계속 주워 먹었으므로 어느 정도 시장기를 면한 나는 비로소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이제부터 내가 노새다. 이제부터 내가 노새가 되어야지 별수 있니? 그놈이 도망쳤으니까 이제 내가 노새가 되는 거지.”

 

기분 좋게 취한 듯한 아버지는 놀라는 나를 보고 히힝 한번 웃었다. 나는 어쩐지 그런 아버지가 무섭지만은 않았다. 그러면 형들이나 나는 노새 새끼고, 어머니는 암노새고, 할머니는 어미 노새가 되는 것일까? 나도 아버지를 따라 히히힝 웃었다. 어른들은 이래서 술집에 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안주만 집어 먹었는데도 술 취한 사람마냥 턱없이 즐거웠다. 노새 가족-노새 가족은 우리말고는 이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1.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알맞은 것은?

 

① 서술자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빌려 아버지와 아들(‘나’)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② 아들(‘나’)의 시선으로 동네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아버지의 삶을 그리고 있다.

 

③ 아버지는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던 아들(‘나’)의 시각을 깨우쳐 주며 이야기하고 있다.

 

④ 아버지를 바라보는 동네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을 아들(‘나’)이 바로잡아 가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⑤ 새동네 사람들의 시선에서 구동네 사람들의 시선으로 이동하며 그들이 아버지와 아들(‘나’)의 삶을 관찰하고 있다.

 

인 ‘나‘는 순진한 눈을 가진 아이로서, 동네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아버지의 삶에 초점을 두고, 대체로 관찰

 

2. 위 글에서 공간적 배경의 기능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점]

 

① 변두리 : 소설의 주요 무대가 성장과 개발에서 그동안 소외되거나 뒤처졌던 지역임을 말해준다.

 

② 골목 : 구동네와 새동네 사이의 경제적인 수준 차이와 소통의 단절감을 드러낸다.

 

③ 구멍가게 : 구비된 품목의 변화를 통해 동네 사람들의 생활에 변모가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④ 동물원 : 아들이 아버지라는 존재와 그 면모를 새로이 발견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⑤ 대폿집 : 술로써 인물들 사이에서 생긴 갈등을 풀어내고 화해를 도모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의 특성과 그 기능 이해

 

자신이 노새처럼 살겠다는 결심을 ‘나‘에게 내비치는 곳이다. 따라서 인물들 사이에 생긴 갈등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술로 풀어 화해를 도모하는 곳이라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3. ㉠에 내재된 ‘아버지’의 심리를 추리한 것으로 적절한 것은?

 

① ‘내가 새동네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내색하면 가족들이 흔들리겠지. 그러니 당분간은 내색하지 말아야겠어.’

 

② ‘남들은 잘도 사는데 나는 변변하지 못한 직업 때문에 돈벌이가 잘 되지 않아. 직업을 바꿔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③ ‘돈이 좀 벌린다고 가족들 앞에서 너무 으스대면 가족들이 경박하다고 생각할지 몰라. 그러니 속으로만 좋아해야지.’

 

④ ‘부지런히 돈을 모으다 보면 우리도 새동네 사람들처럼 잘 살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꾹 참고 일을 열심히 해야겠어.’

 

⑤ ‘돈벌이가 나아진 건 사실이지만, 못마땅한 새동네 사람들 덕분에 그리 된 것을 내색한다면 자존심 없는 사람으로 보일 거야.’

 

을 내색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만약 돈벌이가 나아졌노라며 내색을 하면 자존심조차 없는 사람처럼 비칠 수 있다고 보고 가족들에게조차 내색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4. 위 글의 제목(‘노새 두 마리’)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추리하여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하였다. 이 중, 적절한 의견을 제시한 학생을 골라 묶은 것은? [3점]

 

<보기>

 

◦가영 : 아버지는 바깥일을 할 때는 노새를, 집안일을 할 때는 아내를 고맙게 여기고 있다는 데에 착안한다면, 제목은 ‘노새’와 ‘어머니’를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영 : 평생을 노새와 함께 해 온, 노새를 닮은 아버지가 ‘이제 내가 노새가 되는 거지’라고 한 독백에 주목한다면, 제목은 ‘노새’와 ‘아버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다영 : 기분 좋게 취한 아버지가 ‘히힝’ 웃자 나도 노새 새끼인 듯 아버지를 따라 덩달아 ‘히히힝’ 웃고 있는 장면에 초점을 둔다면, 제목은 ‘아버지’와 ‘나’를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라영 : 피붙이보다 더하게 여긴 노새를 잃고 난 뒤 아버지는 자식인 ‘나’를 노새로 여기고 위안 받고 있는 것에 근거한다면, 제목은 ‘아버지’와 ‘나’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① 가영, 나영 ② 가영, 다영 ③ 나영, 다영

 

④ 나영, 라영 ⑤ 다영, 라영

 

의 제목은 ‘노새‘와 ‘아버지‘ 자신을 가리킨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타당하다. 또한 ‘다영‘은 노새가 되어 일하겠다는 아버지가 노새처럼 ‘히힝‘하고 웃자, ‘나‘도 ‘히히힝‘ 하고 뒤따라 웃는, 대폿집에서의 장면에 주목하고 있다. 이 순간은 마치 두 마리의 노새가 함께 자리하는 것처럼 비치므로 나름대로 타당한 의견이다.

 

5. ‘사물의 모양이나 움직임’을 고려하여 ⓐ~ⓔ에 들어갈 어휘를 선택한 것 중 알맞지 않은 것은? [1점]

 

사물의 모양이나 움직임

선택 어휘

① ⓐ : 악착스럽게 애쓰는 모양 → 바득바득

② ⓑ : 양이 많이 차 있는 모양 → 가득가득

③ ⓒ : 매달린 물건이 흔들리는 모양 → 조롱조롱

④ ⓓ : 자그마한 것들이 많이 붙어 있는 모양 → 닥지닥지

⑤ ⓔ : 벌어졌다 닫혔다 하는 모양 → 벌름벌름

 

⑤ 말(의태어)의 쓰임에 대한 이해

[해설] 매달린 물건이 흔들리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쓰여야 하므로 ‘대롱대롱‘이 적절하다. ‘조롱조롱‘은 ‘주렁주렁‘의 작은말로서, ‘열매 따위가 많이 매달려 있는 모양‘(호박이~매달리다.) 또는 ‘한 사람에게 여러 사람이 딸려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1. ② 작품의 특징 파악

 

[해설] 서술자가 사건을 바라보는 위치를 시점(視點)이라 한다. 서술자는 서술을 하면서 자신의 눈만이 아닌, 등장 인물의 시선을 이용하여 인물이나 사건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이 작품의 서술자인 ‘나‘는 순진한 눈을 가진 아이로서, 동네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아버지의 삶에 초점을 두고, 대체로 관찰자의 시점으로 그려내고 있다.

 

[오답 풀이] ① ‘나‘는 서술의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구동네 사람들 눈을 잠시 빌려 새동네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아버지나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2. ⑤ [출제의도] 소설의 공간적 배경의 특성과 그 기능 이해

 

[해설] ‘대폿집‘은 아버지가 평소에 잘 들르지 않던 곳이다. 이곳에서 아버지는 노새를 잃어버린 상실감을 술로 달래면서 앞으로 자신이 노새처럼 살겠다는 결심을 ‘나‘에게 내비치는 곳이다. 따라서 인물들 사이에 생긴 갈등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술로 풀어 화해를 도모하는 곳이라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답풀이] ④ 아이는 동물원에서 노새와 너무도 닮은 아버지의 면모를 발견하고, 평생 노새와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존재를 새로이 발견하고 있다.

 

 

 

 

3. ⑤ [출제의도] 작품 내용의 창의적 변용

 

[해설] 아버지의 심리는 ‘(1)돈벌이가 다소 나아진 것이 싫지 않음, (2)그러나 가족들에게 내색하고 싶지 않음‘이다. 여기에는 아버지의 복합적인 심리가 내재해 있다. 즉, 돈벌이가 다소 나아진 것은 새동네 사람들 덕분이지만, 문을 걸어 잠그고 구동네 사람들을 거부하는 듯한 그들의 태도가 못마땅하기 때문에, 아버지는 가족들 앞에서조차 마음을 내색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만약 돈벌이가 나아졌노라며 내색을 하면 자존심조차 없는 사람처럼 비칠 수 있다고 보고 가족들에게조차 내색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4. ③ [출제의도] 다양한 감상과 수용 능력 평가

 

[해설] 수용자 입장에서 작품을 다양한 각도로 감상해 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에서 출제한 문항이다. 그러나 ‘열려 있는‘ 감상도 중요하지만 판단의 근거는 타당해야 한다. 의견을 제기한 학생 중 ‘나영‘과 ‘다영‘ 학생의 견해가 일리가 있다. ‘나영‘은 노새를 잃어버린 뒤에 이제부터 자신이 노새가 되어 일하겠다는, 노새를 닮은 아버지의 독백에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노새가 달아나버리고 없긴 하지만, 작품의 제목은 ‘노새‘와 ‘아버지‘ 자신을 가리킨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타당하다. 또한 ‘다영‘은 노새가 되어 일하겠다는 아버지가 노새처럼 ‘히힝‘하고 웃자, ‘나‘도 ‘히히힝‘ 하고 뒤따라 웃는, 대폿집에서의 장면에 주목하고 있다. 이 순간은 마치 두 마리의 노새가 함께 자리하는 것처럼 비치므로 나름대로 타당한 의견이다.

 

[오답풀이] ‘가영‘과 ‘라영‘은 각기 판단의 근거가 적절하지 않다.

 

 

 

 

5. ⑤ [출제의도] 말(의태어)의 쓰임에 대한 이해

 

[해설] 매달린 물건이 흔들리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쓰여야 하므로 ‘대롱대롱‘이 적절하다. ‘조롱조롱‘은 ‘주렁주렁‘의 작은말로서, ‘열매 따위가 많이 매달려 있는 모양‘(호박이~매달리다.) 또는 ‘한 사람에게 여러 사람이 딸려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오답풀이] ④ ‘닥지닥지‘는 ‘때나 먼지 등이 많이 끼거나 오른 모양‘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2층 슬라브집 옆에 판잣집들이 자그마하게 붙어 있는 듯 보이는 모습을 형용하여 표현한 말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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