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생활,과학,법률 상식

울릉도 기행문.

작성자무궁|작성시간26.06.19|조회수27 목록 댓글 0

[삼선 이야기] 울릉도를 가로질러 성인봉과 깃대봉을 오르다 (4)

2026.6.19.

펜션에 들어온 나는 기절하듯 잠들었으나 창밖에는 오징어잡이 집어등 불빛이 대낮처럼 훤하게 밝아 도무지 여명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는데, 경감님 “행님, 일출보러 안 갈 낍니까?”하는 바람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뒤따라간다.

내수전 앞 북저바위, 일명 독도 일출을 기대하며 해안가에 자리 잡았으나, 점점 바다를 진하게 물들이는 곳은 독도가 아니라 죽도였다. 아뿔싸, 해도 하지와 동지를 기점으로 북에서 남으로 왔다 갔다 하기를, 내 일찍이 이순신 장군 후예답게 인왕산 일출이 북한산 형제봉에서 안산 무악재까지 이른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건만, 여기는 내 곳이 아니라, 하지만 오늘은 일출은 여기서 본다.

고요한 바다에 붉은빛이 온 바다를 적시는 가운데 점점 붉은 빛이 한곳으로 모이면서, 주변 바다의 붉은 빛이 가시면서 주홍빛으로 바뀔 무렵, 오직 한 곳 유독 붉다못해 짙은 검정색이 될 만큼 불덩이가 바다 아래에 이글거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처음에는 해가 손톱만큼 보이다가 점차로 반월이 되더니 마침내 완벽한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불과 1~2분 사이 불쑥 솟아오른다.

오늘은 성인봉에 올라 나리분지로 하산하고 다시 깃대봉으로 오른 다음 울릉천국아트센터로 하산하는 코스다.

07:30, 우리의 전용 택시가 펜션에 도착한다. 택시 기사를 통해 울릉도의 속살을 듣는 것도 여행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언제나 첫 질문은 울릉도 토박인지 아닌지 점검하는 일이다. 왜 그런 궁금함이 생겼는지는 모를지만 모두 공통적 관심사다.

오늘 기사분은 포항 살다가 아내를 따라 울릉도에 정착한 분이라 한다. 19살 언저리에 결혼하여 애가 네 명이라고 하는데 늦 총각처럼 보여 거짓말이 아니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다. 처음에는 KBS 중계소로 가자고 했다가 더 빠른 코스가 없느냐고 했더니 우리는 안평전으로 데려다준다.

처음부터 가파르다. 우리가 3,000평 밭에 농사를 짓고 있다는 이현화 농장 주인의 말을 눈여겨 듣지 않았다면 완전 가파른 산 사면일 텐데, 이곳이 밭이라 하여 눈여겨보니 정말로 더덕, 명이나물, 부지깽이, 다 피고 난 고사리가 보인다.

오호라, 인간의 삶이 척박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었겠는가?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경사면에 나물을 채취하여 삶아 다듬고 포장한 후 다시 도동으로 보내 뭍으로 장사한다는 일이 그리 쉽지만 않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고 나니, 어디 서늘하지 않은 삶이 있었는지 도대체 궁금하다.

전날 강선생님 경기도 화성에서 초등학교 5학년때가지 전기가 안들와 생고생했던 이야기를 풀어낼 때 경상도 깡촌만 가난했던 것이 아니라 전국적 현상이라는 사실을 몸소 느끼고 나니,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는 시공을 탐색하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행복이었다.

빈 배낭에 바람만 잔뜩 넣은 내 무게조차 한 발을 올리기도 힘이 드는데, 이것이 유희가 아니라 생업이라고 한다면 즐거움이 고역으로 바뀌는 장면이 순간일 터, 섬말나리가 제철이라 그늘진 숲 아래에는 군락을 이루면서 온통 주황으로 물들어간다.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주 능선에 이르자 너도밤나무인지 섬피나무지 우산고로쇠인지 분간이 되지 않지만 단일 수종 숲이 장관을 이룬다. 친절하게도 나무에 이름이 적히지 않아 궁금증을 한가득 품은 채 점차 고도를 높여 봐도 바닥에는 고비같이 생긴 관종이 숲을 이루고 그 사이로 주황빛 섬말나리가 군락을 이룬 채 여름을 알리고, 이름 모를 원시림 하늘을 가린 사이를 걷는다는 것이 여간 기쁘지 않다.

한발 한발 옮기기가 힘이 드는 것이 아니라 한발 한발 떼고 싶지 않아서 더 힘이 든다. 천천히 심호흡하며 매우 천천히 오르니 몸은 산을 오르는데 마음은 자꾸 숲에 머문다.

흔히들 바닷가에는 갯내음과 소금기가 물씬 풍겨 뭍에서 오면 첫날만 기분이 좋고 금세 싫증을 내지만, 울릉도에는 그런 것이 없다. 수심이 깊어 갯벌이 형성되지 않고, 소금기가 바람에 머물 사이도 없이 동해로 흐르고, 온통 원시림으로 뒤덮인 산에서 맑은 피톤치드가 수도 없이 뿜어내니, 치유의 숲으로 이만한 곳이 없다.

성인봉 표지석을 스치듯 지나면서 바로 아래에 있는 전망대로 내리 달려간다. 내가 울릉도 천하제일경으로 꼽는 장소 중 하나다. 나리분지에서 화산이 폭발할 때 북면 쪽은 조면암으로 이루어져 칼데라가 쉽게 붕괴되어 주저앉아 말발굽 모양을 이루었는데, 신이 뭔가 아쉬운 듯 송곳봉만이 유독 뾰쪽한 기상을 드러내니, 기이하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나리분지로 하산한다. 오래된 분화구 안쪽에는 거대한 원시림으로 뒤덮여 이곳이 용암이 펄펄 끓었다고 상상도 못 할 만큼 변했지만, 숲을 거둬내고 자세히 골격만 관찰한다면 여러 겹 폭발된 흔적이 낮은 구릉을 형성하면서 겹겹이 중첩됨을 알 수 있다.

나리분지 안에는 샘이 많아 설악산 공룡능선을 탈 때처럼 물을 잔뜩 짊어지고 갈 필요가 없다. 땅속 압력을 못 견딘 물이 성인봉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용출되는 곳에서 갖고 온 물을 몽땅 쏟아내고 다시 새것으로 담는다.

숲을 좋아하는 내가 연둣빛이 채 가시지 않은 원시림을 보고 눈길 닿은 곳이 너무 많아 어디에 고정할지를 가늠하느라 정보량이 폭증할 무렵, 나리분지 전망대에 이르러 알봉을 본다. 성인봉에서 이곳까지 오면 절반 분화구 속으로 내려온 셈이고, 다시 더 내려가면 완전 나리분지 평지에 이른다.

데크는 점점 가팔라 수직처럼 느껴지고 좌우에는 억센 고사리처럼 생긴 관종이 나무 사이로 들어온 햇살의 무게를 못 이겨 일렁이고, 연둣빛 바다 한가운데 표류하듯 내 발걸음은 물결처럼 느리게 흘러 시간이 멈춘 듯하다.

첫날 우리는 내수전동으로 안내해 준 택시 기사가 “나리분지에서 산채비빔밥을 먹지 않고는 울릉도에 왔다고 하지 말라”는 택시 기사의 조언을 금과옥조처럼 여겨 씨껍데기 막걸리 두 병을 시켜놓고 연거푸 내리 두 잔을 마시고 나니, 그제야 옆 테이블에는 독일에서 온 관광객 대여섯 명이 고요하게 울릉도 지질학의 철학적 논의를 하는 듯 조곤조곤한데, 테이블을 보니 유독 없는 것이 바로 ‘막걸리’였다.

암만, 그들 문화에서 산행 후 맥주는 몰라도 와인을 들 수는 없는 법, 역시 산채비빔밥에 씨껍데기 막걸리는 언제나 배반하지 않는 사실을 그들이 어찌 알까?

*내일은 깃대봉으로 이어지며, 이 기문은 6.11~14 일정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