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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사/군대 이야기

역사의 뒤안길에선 하야리야 부대

작성자조용만|작성시간19.11.12|조회수418 목록 댓글 0

일제 강점과 미군 주둔이라는 서글픈 역사가 서려있는 이땅 우리땅 이었으면서도 지난 100년 

한번도 우리땅이 아니었던( 캠프 하야리야) 이곳이 일백년만에 비로소 온전한 우리땅이 되었다

             " 서러운 땅 하야리야 " 2006년 폐

              일제 강점과 미군 주둔이라는 서글픈 역사가 서려있는 이땅 우리땅 이었으면서도 지난 100년간

           한번도 우리땅이 아니었던( 캠프 하야리야) 이곳이 일백년만에 비로소 온전한 우리땅이 되었다

             " 서러운 땅 하야리야 " 2006년 폐쇄되었고 2010년 1월 미군에서 우리 국방부로 국방부에서

부산시로 반환되고 부산시는  4월24일 부터 5개월 한시적으로 시민에게 개방하였다 

           정문 위병소로부터 관람로가 시작된다

              부산의 도시 중심지 서면일대 16만4천평 을 차지하고있는 이땅은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의

              경마장과 마권판매장으로 사용되었고 2차대전 당시에는 일본군과 징용병들의 훈련장으로 활용되다

              해방이되면서 이땅에  진주한 미육군의 첫부대가  이곳에 한동안 주둔 하였다가 철수함과 동시

 미국영사관과 유엔산하 기구가 이곳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관람로를 따라 들어서자 먼저 위관 들이 생활하던 관람동의 관사내부를 볼 수 있다

        ""  장교 클럽 .". 장교 구락부 건물이다

보기보다 내부가 넓었고 화려한 무대까지 갖추고있다

              "장교 구락부의 건물 천장은 지난100년의 역사를 매우 압축적으로 보여주고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광기를 상징하는 욱일승천기  미군은 이 욱일승천기를 지워버리지 않고

 그중앙에 자신들의 부대마크를 아로새겨 넣었다

            성조기가 내려진 국기 계양대와 사령관실 앞에 헬기장을 겸한 연병장을 백년된 향나무가 둘러싸고 있다

         1990년 대초반 부대이전 논의가 본격화 되면서 주변의 고도제한이 해제되자 주위는 이미 고층아파트로

           포위 되기 시작했다 만약 부대가 주둔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땅역시 주변과 같은 신세 였을 것이다

        하야리야 라는말은 미국 플로리다주 에있는 도시이름이고 인디언어로 "아름다운 초원"

이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동안에 금단의 땅이었기에 보존 되었던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하여 이제 이땅은 부산시가 도심지내에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대규모 공원부지가 되었다

              독신자 숙소라 되어 있으니  사병내무반 인것같다

              종교시설 이었다고 적혀있다  교회 였던가보다

              " 실내체육관 "하야리야부대가 개방된다는 소식에 잠을 설치다 싶이하고 한걸음에 달려온것은

하야리야가 나에게는 남다른 곳이었기 때문이다 44년전 힘들고 어려웠던 배고픈 시절에 이체육관이

 내땀과 정열베였던 곳이다  한주에 두시간씩 이 체육관에 와서 미군

선수들과 연습에 스파링과 시합을 하던장소다 이 곳에 오면 무었보다 운동후에 따뜻한물에 샤워를

 할수있어 좋았고 그렇게 맞있었던 서양음식을 배불리 먹을수 있었던게 그시절 나에게는 더할수

없는 행복이었다 감회가 새롭다는말 이럴때 쓰는 것인지 눈물이 날것같아 한동안 체육관 

 이자리를 떠날수가 없었다

              극장건물에서는 하야리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각종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하야리야와 부산의 역사까지 전시되고있다 

그림에 (사진) 초상권이 있다고 사진을 찍지 못한단다

             하야리야 정문 길건너 일찌기 사령관 관사가 헐린 자리에는 국립 부산 국악원이 들어서있다

            하야리야 부대의 폐쇄 그리고 반환은 부산시민 아니 국민 모두가 환영해야 할일이며 다시는

이땅에 이러한 슬픈  역사를 만들지 말아야 할것이다   

                           16만4천평 더넓은 이광장을 부산시는 일찌감치 시민공원으로 조성하기로했다

                           미국의 공원 설계 전문가인 "제임스 코너"로부터 기본설계 안 을받고 보고회까지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 나 런던의 하이드파크 일본의 신쥬쿠 공원과같이 부산의 렌드마크

                           가 될수있는 세계적인 공원으로 조성해 시민에게 돌려주겠다고한다 

 

 


최진사: 금지된 땅이 개방되었다니 반갑군요. 당감동 하야리아부대...미군부대라는것 밖에는 모르지만 많이 들어 익숙한 단어입니다. 사진 잘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04/25-19:07]-


118.216.195.225 bat29: 고등학교시절 부대 안 교회에 친구랑 여러 번 갔습니다. 평일 저녁 시간으로 기억되는데 목사님이 성경구절을 읽으면 성경책 어느 부분에 나오는 지 먼저 알아맞히면 조그만 상품을 주었습니다. 나야 교인도 아니고 알아들을 영어 실력도 없었지만 끝난 후 식당에서 여는 다과회에 참석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미제 과자랑 주스를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 후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사진 속의 교회가 그 당시 교회와 비슷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추억을 되 살려준 사진과 글 감사합니다.

-[04/25-20:39]-


121.166.23.163 김병장: 하야리야 소속 609 ORD 중대(해운대) 정문 SG로 월남에서 귀국후 6개월 파견근무하는 동안 서면 하야리야 부대는 딱 한번 가보고 제대 하였습니다...미군 군화 폐품 창고에서 신을만한 것을 골라 해운대 051 탄약창(현재는 신도시로 개발)에 있는 한국군 자대 병사들에게 제대 기념으로 선물하고자 얻으러 갔을때 였습니다...미군과 한국군의 의.식. 주.가 엄청나게 차이나는 시절이었습니다...한달에 병장봉급 5백원 받을때 미군 이등병이 450 $ 정도 받을 정도 이니 차이가 엄청커 양담배는 같이 근무한 미군한테 얻어 피곤 했습니다...요즘의 우리나라도 이젠 부자라는 생각이 듭니다.추억의 사진 잘 보았습니다...항상 건강하십시요. -[04/25-21:36]-


119.201.61.73 최현득: 부산진 구청앞에 누님댁이 있어서 어릴때 자주가본 기억이 납니다 실내체육관 이야기 하시니 박 전우님과 나눈 이야길 들어 저는 압니다만 어려운 여건속에서 운동에 전념하시던 옛일이 생각이 나시니 감회가 깊었겠습니다 삼정호텔 모임에 시간이 남아 커피솦에서 두시간 가까이 박 전우님과 있어면서 들은 지난세월의 이야기가 자꾸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의 선생님이신줄 몰랐드랬는 이야기며 참 많은것을 들어 감회가 깊었습니다 히야리야 부대를 찾은 남다른 이유에 갑자기 숙연해 집니다. -[04/25-22:06]-


121.132.145.239 홍 진흠: 말로만 듣던 히야리야부대 잘 보고갑니다. 머잖아 홍하사가 근무하는 켐프 레드 크라우드도 사라진다니 그대까지 다닐수있을런지요. 암튼 부산소식을 전해주신 박특파원님 댕큐입니다. -[04/25-23:48]-


220.79.101.52 안흥종: 박전우님이 하야리아부대 체육관에서 챔피언 먹었군요. 100년 만에 부산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네요. -[04/26-10:30]-


114.203.238.127 백동기: 다른나라 군대들과는 달리 미군부대가 주둔하는 지역은 의례히 집창촌이 형성되었는데 부산 서면에도 그런곳이 있었다.부산역앞 영주동의 택사스 거리와 범전동 시카고 거리라는게 있었는데 택사스는 중앙부두 외국선원들이 주 고객이고 서면 범전동 시카고 거리는 하야리야 부대의 미군들이이다.지금은 없어진 곳이지만 부전역앞 물탱크가 있었던 곳에서 부터 개천가 따라 북쪽으로 올라 가면서 빨간네온사인을 밝히며 즐비했던 곳인데 제일 손님이 많았던 곳이 럭키빠였고 6.25 동란 중에는 서울서 피난온 사람들이 가정집에서도 거리의 미군들을 불러들여 매춘을 했는데 베트남과는 달리 겨울에는 모질게 춥고 배가 고파 살아남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는것 같다.다시는 그런 비극이 이땅에서 없어서면 하는맘 간절하다. -[04/26-11:04]-



다음블로그 "박재영의 블로그"에서 펌 


월남전 참전하셨던 분들 께서 후대의 우리가 몰랐던 역사를 이야기 해 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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