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Ω】 해월선생의 집터를 호중계(壺中界), 건곤(乾坤)이 머무는 곳이라고 하는데..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작성자白虎작성시간25.08.28조회수79 목록 댓글 0https://cafe.naver.com/godnjf12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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Å日月眞人 明 선생님Ω
♧마지막 구세주(救世主) 황발(黃髮 : 明 선생님)♧
【인천(仁川) 중앙동(中央洞) 자유공원 작은 정자 옆에 있는 큰 정자(大亭:석정루石汀樓) 黃宮 】
【 鄭道令 (明 선생님)은 1946년 병술년(丙戌年)(음력 12월 대한민국 수도 서울 용산(龍山)에서
해월(海月) 황 여일(黃 汝一) 선생 후손(後孫)으로 강림(降臨)하셨다 】
"아계(鵝溪) 이 산해(李山海) 선생도 해월(海月) 선생의 생가(生家)에 대하여, 난새(鸞)가 선회(旋回)하고 봉황(鳳凰)이 날아 올랐다가 돌이켜서 품어안는 형(形)의 집터라고 하였는데, 해월(海月) 선생은 그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없으신가요? 해월(海月) 선생의 생가(生家)에 대하여 좀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3권 16장 74편 1수
(得見豚允書中有詩 是夕無寐遂於枕上疊和 二首 回寄允兒 以爲林泉 卜築之南針云)
득견돈윤서중유시 시석무매수어침상첩화 이수 회기윤아 이위임천 복축지남침운
우룡사하립암간(牛龍寺下立巖間) 몽매평생기왕환(夢寐平生幾往還)
곡호임천원득직(谷號林泉爰得直) 옹칭해월숙쟁한(翁稱海月孰爭閒) ***
청류굴곡엄릉뢰(淸流屈曲嚴陵瀨) 열수참치사조산(列岫參差謝眺山)
처세처향구매책(處世處鄕俱昧策) 휴가종차노운관(携家從此老雲關) **
제목-장남인 중윤(中允)의 글 중에 시(詩)를 보고서, 저녁 침상에서 잠 못 들며 첩화시(疊和詩) 두 수를 지어, 돌아와 윤아(允兒: 中允)에게 주며 임천(林泉)에서 터를 가려 집을 짓는데 정남향으로 하라고 이름.
우룡사(牛龍寺) 아래에는 조용한 석굴이 있으니, 평소 잠도 자며 꿈도 꾸며 자주 갔다 돌아오는 곳이다.
곡(谷)을 일러 임천(林泉)이라 하는데, 이 곳에서 만나 알게 되었으니, 해월을 부르며 누군가가 당겨 맞이하는데 한 노인이구나(翁 : 羽衣子)
맑게 흐르는 물이 이리저리 굽고 꺾이며 차가운데 더하여 물살은 빠르고, 물러나 멀리 산을 바라보니 봉우리가 연이어 있구나.
이 세상과 고향에서 살아나가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일인지라, 집을 떠나서 이 노인을 쫓아,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도다.
2수 【※※※】
풍진분주무문간(風塵奔走武文間) 모경방지권조환(暮境方知倦鳥還) *
자한오향편벽애(自恨吾鄕偏僻隘) 인언차토략관한(人言此土略寬閒)
소청현시호중계(小靑縣是壺中界) 태백지위획리산(太白支爲畵裏山) ★
시식건곤간비의(始識乾坤慳秘意) 시문수설주의관(柴門雖設晝宜關) ★
속세(風塵)의 문관과 무관사이(文武間)를 분주(奔走)히 지내다가, 나이가 들어서야 바야흐로, 고달픈 새는 돌아온다(鳥還)는 것을 알겠구나.
스스로 한(恨)하는 것은, 내 고향 마을이 외져 막혀 있는데, 사람들이 말하길, 이 곳은 대체로 넓고 한가하며,
작지만 맑고 고요한 고을로, 이 곳이 호중계(壺中界)라 하는구나. 태백(太白)산의 한 가지로 나누어진, 모태(母胎)가 되는 산으로,
처음으로 건곤(乾坤)을 굳게 감춰 둔, 신(神)의 뜻을 알게 되었다. 비록 사립문(柴門)을 설치한다 하더라도, 낮에는 마땅히 관통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
이 시(詩)는 1618(광해10, 戊午)년 8월에 동래부사(東萊府使)로 있다 관직을 물러나, 고향집으로 돌아와서는 해월헌(海月軒)을 만귀헌(晩歸軒)으로 고쳐 현판을 걸었으며, 그 이후 지은 시(詩)이다.
해월(海月) 선생은 우룡사(牛龍寺) 아래에 바위 석굴이 있는데, 이 곳을 임천(林川)이라 하고 이 곳에서 한 노인을 만나서 모시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노인이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밝힌 구절은 없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 질문하자 한 사람이 말하였다
“그 글 내용으로 보면 이 세상과 고향 마을에서 잘 살고자 꾀하는 일은 부질 없는 일이라고 하여, 이 노인을 따라 구름이 낀 산속으로 들어간다고 하였으니, 분명히 신선(神仙)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하자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께서 시인(是認)도 부인(否認)도 하지 않으시고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두번째 시(詩)를 보면, 해월(海月) 선생이 속세(俗世)에서 무관(武官)과 문관(文官)으로 분주히 살아오다,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고달픈 새는 돌아 온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이 크게 한(恨)하는 것은, 고향 마을이 도회지와는 멀리 떨어진 외진 곳으로 꽉 막혀서, 이 곳 사람들은 좋은 스승을 만날 수도 없고, 아무리 똑똑해도 배경이 없으니, 중앙(中央)에 나아가 출세(出世)할 수도 없는 울진 사람들을 보고 매우 가슴이 아프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곳 고향 마을은 비록 작지만, 맑고 고요한 마을로 이 곳은 호중계(壺中界)라 한다고 하였다.
이 곳은 태백산(太白山)의 한 가지로 나누어진 모태(母胎)가 되는 산이며, 이 곳은 하늘이 비밀(秘密)에 부쳐둔 숨겨 둔 곳인데, 해월(海月) 선생도 늦게서야 그 신(神)의 비밀(秘密)을 알게 되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곳은 신성(神聖)한 곳으로, 아무나 출입(出入)시켜서는 안되는 곳이라, 속이 탄다고 하였다.
차라리 외부(外部)와의 교제(交際)를 끊고, 문을 만들어 닫아 걸어서 출입(出入)을 막고 싶은데, 그러나 어찌 대낮까지 사람들을 드나들 수 없게 할 수야 있겠느냐고 하였다.
그러나 만일에 그렇게 했다가는 오히려 사람들이 이상스럽게 생각하여, 신(神)이 숨기는 뜻을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쉬우니, 답답한 심정(心情)을 시(詩)로써 남긴 것이다.
라고 설명하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호중계(壺中界)란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자세히 설명하여 주십시오.”라고 질문하자,
“호중계(壺中界)란, 별천지(別天地), 비인간(非人間), 선경(仙境), 술그릇속, 바가지속이라는 말로, 한 마디로
신선(神仙)이 머무는 곳이란 말이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세계(理想世界)라고 이제껏 알아왔지만, 사실은 이 시에서는 호중계(壺中界)가 바로 해월(海月) 선생 자신의 고향(故鄕), 즉 해월(海月) 선생 자신의 집이 호중계(壺中界)라 한 것이다.
토정(土亭) 선생의 조카인 아계(鵝溪) 이 산해(李山海) 선생은, 이를 꿰뚫어보고 사동기(沙銅記)를 남긴 것이다.
바로 여기가 태백산(太白山)의 한 가지로서 모태(母胎)가 되는 곳이라는 것이다.
즉 금강산(金剛山) 태백산(太白山)의 정기(精氣)가 모여 있는 정혈처(正穴處)인 곳이다.
하늘이 천지만물(天地萬物)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우주(宇宙)를 개벽(開闢)하여야 하는데, 개벽(開闢)의 주인공인 건곤(乾坤) 즉 하나님의 아들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 정기(精氣)를 축척해 감추어 둔 곳이 바로 이 곳이니, 어느 누구도 출입(出入)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지(聖地)라는 것이다.
그러나 밤에는 사립문을 걸어서 닫으면 되겠지만, 낮에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통과시킬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내용이다.
“해월(海月) 선생의 생가(生家)를 호중계(壺中界)라 하고 신선(神仙)이 머무는 곳이라고 하였는데,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2권 12장 51편에,
차이청강 해월헌운(次李淸江 海月軒韻)
소헌탄진일창명(小軒呑盡一滄溟) 량월장풍진차정(凉月長風盡此亭) ★
불유적선유일구(不有謫仙留逸句) 좌래안득상금령(坐來安得爽襟靈) ★
조그만 정자(小軒)이나, 창해(滄海)를 한 번에, 마셔 없앨 수 있고, 맑고 깨끗한 달(凉月)과 장풍(長風)이, 이 정자에서 그치는데,
천상에서 귀양온 신선(謫仙)이, (남의) 훌륭한 구절을 엿보겠는가? 앉아서 찾은즉, 밝고 빛나는 옷을 입은 신(爽襟靈)이, 이르는도다.
이 시(詩)는 이 청강(李淸江) 선생의 시(詩)를 차운(次韻)하여, 해월헌(海月軒)에 대하여 읊은 시(詩)이다.
해월헌(海月軒)이란, 해월(海月) 선생이 선생의 호(號)를 따서, 지은 정자(亭子) 이름이다.
이 해월헌(海月軒)은 해월(海月) 선생이 1588(선조 21, 戊子)년 4월 고향에 돌아와서 해월헌(海月軒)을 지었는데, 현판(懸板)은 영의정(領議政)으로 있던, 아계(鵝溪) 이 산해(李山海) 선생이 썼으며, 백사(白沙) 이 항복(李恒福), 상촌(象村) 신 흠(申欽), 월사(月沙) 이정구(李 廷龜), 약포(藥圃) 정 탁(鄭琢), 지봉(芝峯) 이 수광(李晬光) 선생 등등, 수 많은 인사(人士)들이, 찬양(讚揚)하는 시(詩)와 글(文)을 남겼다.
해월헌(海月軒)은 조그마한 정자(亭子)이지만, 단 한(一) 번에, 넓고 푸른 바다(滄溟)를 마셔버릴 수 있고, 맑고 깨끗한 달(凉月)과 장풍(長風)도, 이 정자에 와서는 머문다고 하였다.
또한 천상(天上)에서 귀양온 신선(神仙)이, 남의 아름다운 구절을 엿보고 흉내내어, 큰소리나 치는 말이 아니라고 하였다.
즉 해월(海月) 선생이 이 정자에 앉아서 신선(神仙)을 찾은즉, 밝게 빛나는 옷을 입은, 신선(神仙)이 온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 시(詩)에서, 여러 가지 의미(意味)를 시사(示唆)하는 내용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해월(海月) 선생은 자신이 신선(神仙)에 대하여 하는 말은, 이름이 나 있는 문장가(文章家)들이 써 놓은 글이나 보고, 흉내내어 지껄이는 말이 아니라고 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이 신선(神仙)을 찾으면, 밝게 빛나는 옷을 입은 신선(神仙)을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는 말인 것이다.
그러니 남들이 신선(神仙)을 보지도 못하고, 옛날 책이나 남들이 신선(神仙)에 대하여 써 놓은 글을 보고 흉내내어 하는 말이 아니라고 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이 직접 신선(神仙)을 찾으면, 신선(神仙)이 나타나서, 신선(神仙)과 더불어 같이 지낸다는 말이다.
그러면 신선(神仙)이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가 자세(仔細)히 알아보자.
우리는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4권 1장 1편을 보면 더욱 확실(確實)하게 ,그 신선(神仙)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여유소부이(與有巢父耳) 녕위할관롱(寧爲鶡冠聾) *
여위기자노(與爲箕子奴) 녕위수옥용(寧爲樹屋傭)
불문불수세(不聞不須洗) 불출불수광(不出不須狂) *
소이현달인(所以賢達人) 행장순천상(行藏順天常) *
명관무위초(冥觀無爲初) 즉지유위후(卽知有爲後)
헌앙천지간(軒昻天地間) 독여지도우(獨與至道友) ***
욕형불가형(欲形不可形) 욕명불가명(欲名不可名) **
왕왕창해수(汪汪滄海水) 난탁역난청(難濁亦難淸) *
소부(巢父)와 같이 귀를 씻기보다는, 차라리 할관(鶡冠)이나 하고, 귀가 먹겠으며,
기자(箕子)와 같이, 종(奴)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통나무집을 짓고, 품팔이를 하겠다.
듣지 않으니, 모름지기 씻을 필요도 없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으면, 모름지기 미친 듯이 떠돌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현명하고, 사물에 통달한 사람(賢達人)이라면, 세상에 나아가, 도를 행하는 일과, 물러나 숨는 일(行藏)은, 천명을 따르는 것(順天)이, 상식(常)이다.
어리석게도 처음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보았으나, 다시 말해 나중에는, 할 수가 있슴을 알겠구나.
의기 양양(軒昻)하게, 천지 사이(天地間)에서 내가 홀로(獨) 지극한 도(至道)와 벗(友)하고 있지만,
드러내고 싶어도(欲形), 드러낼 수 없고(不可形), 누구라고, 지칭하고 싶어도(欲名), 지칭할 수 없구나(不可名).
깊고 넓은(汪汪) 푸른 저 바닷물은(滄海水), 탁해지기도 어렵지만(難濁), 역시 맑아지기도 어렵구나(亦難淸).
이 시(詩)는 1617(광해 9, 丁巳)년 12월 62세 때 지은 시(詩)인데, 그 당시 해월(海月) 선생은 동래(東萊) 부사(府使)로 있었다.
이 때 폐비(廢母: 인목대비)의 논(論)이 일어났으며, 또한 조정의 대신들 사이에서는 한 당파(黨派) 속에서 패가 갈리면서, 여러 각료들의 벼슬을 빼앗고, 멀리 내쫓는 일이 벌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이 시(詩)를 쓰고, 즉시 사직서(辭職書)를 제출하고는, 고향에 돌아갔다.
조정(朝廷)에서는 계속 근무(勤務)하기를 종용하였으나, 끝내 고사하고는 돌아간 것이었다.
소부(巢父)란 요(堯)임금 때의 고사(高士)로, 요(堯)임금이 천하(天下)를 맡기고자 하였으나, 사양(辭讓)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천하(天下)를 맡기고자 한다는 말을 듣고, 귀가 더럽혀졌다 하여, 냇가로 가서 귀를 씻었다고 전해 오는 것이다.
이 글에서 해월(海月) 선생이, 의기양양(意氣揚揚)하게 한 마디를 하였는데, 이 넓고 넓은 천지(天地) 사이에서,홀로(獨), 지극한 도(至道)와 벗(友)하고 있다고 하였다.
도(道)와 벗(友)하고 있다는 말은 바로 정도(正道)인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과 더불어 동행(同行)한다는 말인 것이다. ***
그러니 드러내고 싶어도 드러낼 수가 없고, 누구라고 지칭(指稱)하고 싶어도 지칭(指稱)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깊고 넓은 저 푸른 바닷물은 탁해지기도 어렵고 또한 맑아지기도 어렵다고 한 것이다.
바로 해월(海月) 선생이 벗(友)하고 있는 지극한 도(道)가, 변하지 않는 진리인 바다(海)라고, 은연중(隱然中)에 밝히는 것이다 바다(海)란, 진인(眞人) 정도령을 뜻하는 별칭(別稱)이라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밝힌 것이다.
우리는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 속에서, 해월(海月) 선생이 마음속 깊이 숨겨 왔던, 밝히기가 곤란(困難)한 혼자만의 큰 비밀(秘密)을, 마음 크게 다져 먹고 고백(告白)하여, 세상에 드러낸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를 더 밝힌다면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3권 3장 13편을 보면,
『인종상계사초하(人從上界槎初下)』 ***
사람들은 하나님을 천상의 세계(上界)에 있는 것으로 알고 쫓지만, 울진(仙槎)이, 바로 천상세계에 계신 하나님 또는 신선이 내려와 계신 곳(初下)이라고 하였다.(海月軒)
현재의 울진의 옛 지명(地名)이 선사(仙槎)인 것이며, 시(始)와 초(初)라는 말은, 도(道)를 의미하는 말로 부처님 또는 상제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가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하늘에 계신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해월(海月) 선생은 바로 선사(仙槎 : 신선의 뗏목), 즉 울진(蔚珍)에 하나님이 내려와 계신다고 밝힌 것이다."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께서 말씀하시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제가 알기로는, 그 당시에 당파(黨派) 싸움이, 아주 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월(海月) 선생은, 당파(黨派) 싸움에 휘말려 들어가서, 해를 당한 적이 없습니까? " 라고 질문하자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해월(海月) 선생은 일생(一生)의 관직(官職) 생활에서, 당파(黨派) 싸움에 휘말린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당파(黨派) 싸움에 휘말리지 않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해월(海月) 선생의 신도비명(神道碑銘)을 보면,
『朝廷分黨禍 人不得避 而公能見幾 一櫂歸山 不以有無累 其心 凌凌 有披雲 萬里之像志』
조정분당화 인불득피 이공능견기 일도귀산 불이유무누 기심 릉릉 유피운 만리지상지
조정(朝廷)에 당(黨)이 나누어지니, 사람들은 그 화(禍)를 피할 수가 없었는데, 공(公: 해월)은 능히 그 기미(幾微)를 한 번에 알아보고는, 노를 저어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니 연루(連累)되어 해(害)를 입지 않은 것이다.
해월(海月) 선생의 마음속에는, 구름을 헤치고 하늘 높이 올라가 만리(萬里) 기상(氣像)의 웅지(雄志)가 있다고 하였다.
앞에서 해월(海月) 선생은, 스스로 시(詩)에서 밝히기를 세상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을, 천명(順天)에 따른다고 하였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관직에 나아가고 물러났기 때문에, 당연히 해월(海月) 선생은, 당파(黨派) 싸움에 연루되어 해(害)를 당하지 아니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해월(海月) 선생의 신도비문(神道碑文)을 쓰신 분은, 이 유원(李裕元) 선생인데, 이 항복(李恒福) 선생의 후손(後孫)인 것이다.
이 항복(李恒福, 1556 ~ 1618, 명종 11∼광해 10) 선생은 호(號)가 필운(弼雲), 백사(白沙)이며,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다.
항상 당쟁(黨爭)에 초연(超然)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광해군(光海君) 때 영창대군(永昌大君)을 구원하려고 힘썼으며, 폐모(廢母)의 논(論)이 일어나자, 이를 적극 반대했으므로 북청(北靑)에 귀향가서 적소(適所)에서 사망했던 것이다.
또한 백사(白沙) 선생과 해월(海月) 선생은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난 분이며, 사망(死亡)하신 시기는 해월(海月)선생이 4년 뒤인 것이다.
이 유원(李裕元, 1814 ~ 1888, 순조 14∼고종 25) 선생은 조선 말기의 문신(文臣)이며,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춘(京春),호는 귤산(橘山), 묵농(默農)이다.
1841(헌종 7)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규장각 대교를 거쳐, 의주 부윤, 함경도 관찰사를 지내고, 고종 초에 좌의정에 올랐으나, 흥선대원군과의 반목으로 1865(고종 2)년 수원 유수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그 해 말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로 전임되고, 1873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실각(失脚)하자 영의정(領議政)이 되었고,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로 서임되었다.
또한 학문과 예서에 능하였다고 하며, 저서(著書)로는 임하필기(林下筆記), 귤산문고(橘山文庫)가 전한다."
라고 하자 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의 조그마한 정자(亭子)가, 넓고 푸른 바다 즉 창해(滄海)를 한 번에, 마셔 없앨 수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라고 묻자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께서 곧 설명을 하셨다.
【※】
상촌(象村) 신 흠(申欽) 선생의 해월헌(海月軒)에 대한 시(詩)를 보면,
수지북두작동명(誰持北斗酌東溟) 공설군가해상정(共說君家海上亭) ***
응유란참과벽락(應有鸞驂過碧落) 계궁고처문선령(桂宮高處聞仙靈) ***
누가 북두칠성(北斗)을 손에 넣어, 동해바다(東溟)를 잔(酌)질 하겠는가?
그대의 집 바다 위의, 해월헌(海上亭)이라는 정자에서 함께 말했지,
난새(鸞)가 끄는 수레가, 푸른 하늘을 지나가니,
달속의 궁전(桂宮)에, 신선(仙)의 신령(靈)한 소리가 들리는구나.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 명종 21∼인조 6)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으로 본관(本貫)은 평산(平山), 자(字)는 경숙(敬叔), 호(號)는 현헌(玄軒), 상촌(象村), 방옹(放翁)이다.
1585(선조 18)년 진사시와 생원시에 차례로 합격하고, 1586년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사헌부 감찰, 병조좌랑으로, 1599년 동부승지, 우부승지, 이조참의, 도승지, 병조판서, 예조판서, 경기감찰사를 역임하고, 1610년에는 예문관 대제학을, 1623년 인조 즉위년에 이조판서겸 예문관 홍문관의 대제학에 등용되었고, 같은 해 7월에 우의정에 발탁되었으며, 1627년에는 좌의정으로, 같은 해 9월에는 영의정에 올랐다가 사망했다.
그는 장중하고 간결한 성품과 뛰어난 문장으로 선조의 신망을 받았으며, 이정구(李廷龜), 장유(張維), 이식(李植) 등과 더불어 이른바, 한문 사대가(四大家)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의 저서(著書)로는 상촌집(象村集), 야언(野言) 등이 있으며 시호(諡號)는 문정공(文貞公)이다.
이 글을 보면 상촌(象村) 신 흠(申欽) 선생은 해월(海月) 선생과 더불어, 해월(海月) 선생의 고향 바닷가가 있는, 해월헌(海月軒)에 올라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던 중, 누가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손에 넣어서, 동해(東海) 바다를 잔질하겠는가?
하고 서로 말을 주고 받았다고, 상촌(象村) 신흠(申欽) 선생은 말하는 것이다.
이 시(詩)를 보면, 누가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손에 넣어서, 동해(東海) 바다를 잔질할 수 있는가? 라는 말은, 해월(海月) 선생 자신이, 그 북두칠성(北斗七星)을 가지게 될 것을, 은연중(隱然中)에 말하였지만, 상촌(象村) 선생은, 해월(海月) 선생이 무슨 의도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 시(詩)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거의 짐작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다만 시(詩)의 내용으로 보아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손잡이가 달린 술잔 모양으로 생겼으니, 단순히 선비의 호기(豪氣)로운 말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라고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 의 이야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서로들, 이 시(詩)의 내용으로 보아 진실로 신선(神仙)을 이야기하는 해월(海月) 선생과 다만 단순히 이야기로만 듣고,서책(書冊)으로만 대하던 신선(神仙)을 이야기하는 상촌(象村) 선생과의 글은 구분이 된다며 서로들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그렇다면 해월(海月) 선생께서 직접적으로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손에 넣었다고 하는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께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집중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4권 13장 24편에,
온정도중 마상구점(溫井道中 馬上口占)
평생장한조화아(平生長恨造化兒) 부단희인역희물(不但戱人亦戱物) ***
천어물물각성정(天於物物各性情) 불유시인수영발(不有詩人誰咏發) ***
호위차간절기병(胡爲此間竊其柄) 장기비수무인경(藏奇秘秀無人境) ***
창창지색냉냉성(蒼蒼之色冷冷聲) 사지천추부득령(使之千秋不得逞) ***
아가서남삼십리(我家西南三十里) 일구계산천기미(一區溪山擅其美)
동풍미미척촉연(東風微微躑躅姸) 세폭종종포곡어(細瀑淙淙布穀語)
여하부재해헌전(如何不在海軒前) 일몽조도류강변(一夢阻到流江邊)
금봉람승정중인(今逢攬勝亭中人) 복참좌대산중춘(踣驂坐對山中春) ***
산여영아물여흔(山如迎我物如欣) 시각조물개량신(始覺造物開良辰) ***
호아갱작산중주(呼兒更酌山中酒) 취사천지생오신(醉謝天地生吾身) ***
불연차지여차경(不然此地與此景) 부직일전부초신(不直一錢付樵薪) **
일찍이 크게 한(恨)해 온 조화(造化)의 아이(兒)는, 단지 사람(人) 뿐만 아니라 만물(物)을 다 즐겁게 하려 했었다.
하늘(天)은 물(物)에 있고(의지하고) 물(物)은 각각의 성정(性情)을 가지니, 시인(詩人 : 해월)이 아니면 누가 읊어서 드러내겠는가.
어찌하여 이 곳(해월)이 북두칠성의 손잡이(柄)를 남몰래 가지게(竊) 되었는가.
신묘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선비(秀)를 숨겨 두었는데 이 곳은 인경(人境)이 아닌 것이다 (즉 이 곳은 仙境이로다).
맑고 푸른 하늘에 맑은 물 소리 천추(千秋)에 이루지 못한 것을 그대가 이루게 하는구나.
나의 집에서 서남쪽으로 삼십리에 한 곳이 계곡과 산이 아름다운데 춘풍(春風)은 미미(微微)한데 철쭉은 곱게도 피었구나.
뻐꾸기는 울고 가느다란 물줄기는 떨어지며 졸졸 흐르는데 어찌하여 해월헌(海軒) 앞에는 이와 같은 것이 없는가?
한 꿈(一夢)에 기이하게도 물이 흐르는 강가에 이르렀는데, 바로 정자 한가운데서 승리를 손에 넣은 분(攬勝)을 마주 대하게 되었다.
말이 끄는 수레를 밀쳐 놓고 마주 대하여 앉으니, 산중은 봄이 한창인데 산이 나를 영접하는 것 같고 만물 또한 기뻐하는 것 같구나.
나는 비로소(始) 조물주(造物)인 하나님이, 처음으로 좋은 때(良辰: 봄, 용, 북두칠성, 부처님)를 열어 꽃을 피우게 하는 것(開)을 알게 되었다.
아이라고 부르는 이(呼兒)가 산중의 주연(酒)에서 연이어 술잔을 기울이며 천지(天地 : 부모)가 자기 자신(吾)을 인간의 몸(身)으로 나가게 한 것을 기쁘게 감사하는데, 그렇지 않아도(不然) 즉 이 곳(此地)이 상서로움(景: 태양, 明, 밝음)을 베풀어 주고, 한 푼의 돈이 없어도 땔나무를 주지 않는가? ***
이 시(詩)는 해월(海月) 선생이 말을 타고(馬上) 온정(溫井)으로 가는 길에 즉석에서 읊어 지은 시(詩)인 것이다.
온정(溫井)이라면, 그 유명한 백암산(白巖山)이 있는 곳인데, 인근에 백암온천(白巖溫泉)이 있는 곳이다.
이 글에서, 일찍이 크게 한(恨)을 품어 온, 조화(造化)의 아이(兒)가 있다고 하였다.
그 조화(造化)의 아이(兒)는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萬物)을, 다 기쁘고 즐겁게 하려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천추(千秋)의 한(恨)을 품어 온 조화(造化)의 아이(兒)라고 하였다.
하늘(天)은 물(物)에 의지하고 기다리며, 또한 물(物)은 각기 성정(性情)을 가지고 있는데, 시인(詩人)이 아니라면, 그 누가 이러한 깊은 사정(事情)을, 풀어 밝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시인(詩人)이란, 해월(海月) 선생 자신을 두고 이르는 말인 것이다.
어찌하여 이 곳이 남몰래, 그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손잡이(柄)를 가지게 되었는가 하면, 깊이깊이 비밀(秘密)로 숨겨 둔, 수(秀)가 있다고 하였다.
또한 무인경(無人境), 선경(仙境)이며, 비인간(非人間)이며, 호중계(壺中界)라는 것이다.
여기에 하늘이 오랜 세월 즉 천추(千秋) 동안 이루지 못한 바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하였으며, 해월(海月) 선생의 집에서, 서남쪽 30리의 한 구역에 매우 아름다운 곳이 있는데, 이 곳에서 해월(海月) 선생이, 꿈결같이 승리를 손에 넣은 자(攬勝), 즉 이긴 자(勝)인 정도령을 만나서 계시(啓示)를 받는 내용(內容)인 것이다.
해월(海月) 선생은, 처음으로 조물주(造物主)인 하나님께서, 봄(春)의 계절 즉 용마(龍馬)인 북두칠성(北斗七星)으로 하여금, 비로소 꽃을 피우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아이라고 부르는, 즉 조화의 아이(造化兒)가, 산중(山中)의 주연(酒宴)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천지부모(天地父母)가, 자기 자신을 인간(人間)의 몸으로 나가게 하여, 승리(勝利)를 손에 넣어, 이긴 자(勝)가 되게 하여 만사(萬事)를 끝맺게 한 것을 기쁘게 감사 드린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 곳, 즉 해월(海月) 선생의 집이 있는 장소(곳)가 이 상서로움(景)을 베풀어주고 또한 함께 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해월(海月) 선생도, 처음 알게 되었다고 밝히는 것이다.
조물주(造物主)인 하나님께서 ,양신(良辰)을 비로소 열게 한다고 하였는데, 이 양신(良辰)이란 의미를 자세히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사전에는, 이 양신(良辰)이라는 말은 좋은 날, 혹은 좋은 때, 또는 봄의 계절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이 양(良)자란 좋다는 말 이외에 , 현인(賢人), 준마(駿馬), 낭군, 님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 신(辰)자란 용(龍),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의미하고 때(節)와 시기(時期)를 의미하는 글자이다
다시 말하면 좋은 날, 좋은 때, 봄(春)의 계절이란, 바로 현인(賢人)인 정도령을 의미하는 은어이며, 또한 용마(龍馬)인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의미하는 말인것이다.
"이는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인간으로 내보내어, 세상에 알리고 일을 시작하는 시기 즉 때가 또한 진(辰)이라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즉 진(辰)이란 바로 진년(辰年)을 밝히는 것이다.
진년(辰年)이란 바로, 예언서(豫言書)마다
진사년(辰巳年)에 성인(聖人)이 나온다고 밝혔는데, 가장 중요한 그 때를 밝혀주는 말인 것이다.
※참고 (2025년 을사년乙巳年)
또한 우리 민요(民謠)에 「얼시구 절시구 기화자 좋다」 는 말의 절시구(節矢口)에 그 때(節)를 알라는 의미의 말인 절시구(節矢口)의 절(節)자가 바로 부처님을 의미한다고 이미 밝힌 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해월(海月) 선생의 집이 있는 그 장소가 이러한 경사스러움을 베풀어 주고 함께한다고 하였는데, 말하자면 천지(天地)가 정기를 모아 숨겨둔 곳이 해월(海月) 선생의 생가(生家)라고 하는 말인 것이다.
즉 오랫동안 천지(天地)가 천년(千年)의 정기(精氣)를 모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나오게끔 준비하여 왔는데,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나오게 되는 근본(根本)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말인 것이다.
그러면 이 땅이 하나님의 아들이, 나오게끔 베풀어 준다고 하는 경(景)자의 뜻을 자세히 알아보자.
이 경(景)자란 경치, 상서로움, 경사스러움이라는 뜻 이외에 태양(太陽)또는 밝음 즉 명(明)을 베풀어 준다는 말인 것이다.
한 마디로 밝은 태양(太陽)인 명(明)이 세상에 나오게 되는 원인(原因)이 이 곳에 있다고 밝히는 말이다.
그러면 태양(太陽)이란 누구를 뜻하고, 명(明)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하면, 한 마디로 이는 조화의 아이(造化兒)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진인(眞人) 정도령이고, 아기장수라고 하는 말인 것이다.
이를 해월(海月) 선생께서 분명히 밝히신 것이다." ***
【해월유록(海月遺錄) 말씀(中)】
"남이 알 수 없는 외로운 싸움, 선악간에 대쟁투를 이제 조금 알게 되셨습니까?"
【上帝之子斗牛星 西洋結寃離去后 登高望遠察世間 二十世後今時當 東方出現結寃解】
【 선출기인(先出其人) 후강주(後降主) 로 무사탄금(無事彈琴) 천년세(千年歲) 】
【만사이황발(萬事已 黃髮 ) 잔생수백구(殘生隨 白鷗 )】
♧ 청림도사(靑林道士) 明(黃) 선생님 ♧
조선중기 대문장가인 해월(海月) 황 여일(黃 汝一) 선생의 시문이 들어있는 문집 목판본(7권14책)이 현재
고려대학교와 서초동 국립도서관에 있으며 필사본은 영남대학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도 또한 있음.
해월헌(海月軒) -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선생의 친필
한석봉(韓石峰)선생의 해월헌(海月軒)의 갈근필병풍(葛根筆屛風 : 무이구곡가)
해월종택(海月軒): 봉황이 알을 품는 형국으로 풍수학상 강릉 이남 최고의 명당(明堂)
경북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433 (해월헌길70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