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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능]참고) 조선왕조의 계보와 왕릉 리스트입니다.

작성자장은경|작성시간09.07.11|조회수214 목록 댓글 1

국사 시간에 맨날 졸고, 사극도 별로 안좋아하는데, 참 이렇게 국사공부를 하게 되네요..ㅎㅎ

무식이 웬수인지라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 한 눈에 보기 좋게 되어있는 자료를 발견,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혹

저처럼 정보가 궁금하신 분들이 혹 계실까 싶어 공유하고 싶어 올립니다.

이중 동구릉에 있는 것은 건원릉, 현릉, 목릉, 휘릉, 숭릉, 혜릉, 원릉,수릉,경릉,명빈묘(3대 태종의 후궁 명빈 김씨)입니다.

 

 

조 선 왕 조

왕명

즉위년도

재위기간

왕릉

왕명

즉위년도

재위기간

왕릉

1

태조

1392-1398

6

건원릉

15

광해군

1608-1623

15

광해군묘

2

정종

1398-1400

2

후릉

16

인조

1623-1649

26

장릉, 휘릉

3

태종

1400-1418

18

헌릉

17

효종

1649-1659

10

영릉

4

세종

1418-1450

32

영릉

18

현종

1659-1674

15

숭릉

5

문종

1450-1452

2

현릉

19

숙종

1674-1720

46

명릉, 익릉

6

단종

1452-1455

3

장릉

20

경종

1720-1724

4

의릉, 혜릉

7

세조

1455-1468

13

광릉

21

영조

1724-1776

52

원릉, 홍릉

8

예종

1468-1469

1

창릉, 공릉

22

정조

1776-1800

24

건릉

9

성종

1469-1494

25

선릉, 순릉

23

순조

1800-1834

34

인릉

10

연산군

1494-1506

12

연산군묘

24

헌종

1834-1849

15

경릉

11

중종

1506-1544

38

정릉, 온릉

25

철종

1849-1863

14

예릉

12

인종

1544-1545

1

효릉

26

고종

1863-1907

44

홍릉

13

명종

1545-1567

22

강릉

27

순종

1907-1910

2

유릉

14

선조

1567-1608

41

목릉

 

 

 

 

 

 

1. 왕의 호칭

왕을 부르는 호칭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1. 태어나면왕은 태어날 때는 이름을 갖지 않고, 왕의 적장자로 태어나면 원자(왕의 장자로서 아직 왕세자)로 책봉되지 않은 사람)가 된다.

2. 자 字 관례를 행하면서 받는 호칭. 일생동안 명심해야 할 훈계 또는 축복의 내용을 담은 두 글자

3. 휘 諱(이름) 왕의 이름은 함부로 부를 수 없어서 잘못하여 글로 쓰거나 하면 큰 벌을 받았다. 금기의 글자였던 만큼 조선시대 사람들은 역대 조선왕의 이름을 죽 외우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상소문, 과거시험, 문장 등을 쓸 때 그 글자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잘 쓰지 않는 특이한 글자나 새로 글자를 만들어 썼다.

4. 호 號 자신이 스스로를 표시하기 위해 붙이거나 스승 또는 친구들이 붙여주는 일종의 별명.

5. 존호 尊號 왕이 훌륭한 업적을 이룩한 경우, 신료들이 왕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올리는 호칭.

6. 시호 諡號○ 왕이 죽었을 때 그의 일생을 평가하고, 공덕을 기리기 위해 짓는 호칭.- 고관 또는 공훈이 있는 사람에게 사후에 주는 존칭.조선의 왕은 중국에서 두 글자의 시호를 받고, 미진한 경우 신료들이 네 글자의 시호를 더 올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왕후 앞에 붙는 명칭도 '시호'이다.

▷ 시호의 기원은 중국에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 법흥왕 원년(514)에 죽은 부왕에게 '지 증'이라는 시호를 올렸다는 기록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시호제도가 정비된 것은 조선시대부터이다. 시호를 정하는 절차와 방법은 매우 엄숙하고 까다롭게 진행되었다. 특히 국왕이나 왕비가 죽은 경 우에는 시호도감을 설치하고 시책을 올리도록 했다. 시호에 쓰는 글자는 정해져 있었다. 조선 초기 사용하던 글자는 모두 194자였으나 글자수의 부족 으로 시호를 정하기 어려워 세종의 명에 의해 집현전에서 107자를 첨가, 그후 모두 301자를 사용 했다. 그러나 자주 쓴 글자는 문 文, 정 貞, 공 恭, 정 靖, 양 良, 효 孝, 충 忠 등 120자 정도에 불 과했다. 이 글자들은 모두 몇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 문 文 온 천하를 경륜하여 다스린다 / 배우기를 부지런히 하고 묻기를 좋아한다 / 도덕을 널리 들어 아 는 바가 많다 / 충심으로 남을 사랑한다 / 널리 듣고 많이 본다 / 15가지의 의미로 사용되었 다. 이러한 의미 가운데 돌아가신 분의 행적에 맞는 글자를 선택, 시호를 올리는 것이다.

7. 묘호 廟號 ○ 왕의 삼년상이 끝나고 신주가 종묘에 들어가면 종묘에서 그 신주를 부르는 호칭. 신료들이 왕의 일생을 평가하여 공이 많다고 여기면 ''를 붙이고, 덕이 많다고 여기면 ''을 붙여서 두 글자로 지었다.(이것은「예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 ''에 는 어떤 정해진 규칙이 없고, 신료들의 평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들로 내려가면 ''이 고, 아니면 ''다 라든가, 적자이면 '', 아니면 '' 등등의 말은 옳은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다.

<증명 I >선조(중종의 서손, 덕흥대원군의 아들) 처음의 묘호 = 선종 -> 공보다 덕이 앞선다고 평가함. 바뀐 묘호 = 선조 ->임진왜란 때 왜구를 물리친 공이 있다는 근거로 허균과 이이첨이 주장.

<증명 II> 중종 (성종과 정현왕후 윤씨사이의 아들) 묘호가 바뀌진 않았으나, 연산군을 몰아낸 큰 공을 인정하여 '중조'로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음. ∴ 정해진 원칙은 없으며, 공이 있으면 '', 덕이 있으면 ''이라는 신료들의 평가에 달려있을 뿐이다.

8. 능호 陵號 ○ 왕의 무덤을 지칭하는 호칭. 왕의 무덤을 ''이라하여 존중했다. 능은 구릉이란 의미인데, 왕의 무덤이 구릉처럼 크고 웅장하 다는 의미다. 이렇게 많은 호칭을 어떻게 표기할까? 왕의 칭호는 보통 붙여서 쓰는데, 그 순서는 보통 ① 묘호 ② 중국에서 내려준 시호 ③ 존호 ④ 신료들이 올린 시호 순이다.

<> 세조의 정식 호칭 " 세조 혜장 승천체도열문영무 지덕융공성신명예흠숙인효 ① ② ③ ④ 우리가 보통 태조, 세종, 성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길고도 긴 호칭의 맨 앞에 위치한 '묘호' 두 글자만 부르는 것이다.

그 외의 호칭

▷ 대원군: 임금의 대를 이을 적자손이 없어 방계 친족이 대통을 이어받을 때, 그 임금의 친아버지에게 주던 벼슬. 즉 방계에서 왕위를 계승한 때에 그 왕의 생부에게 주는 칭호.

▷ 대군 : 왕비에게서 난 아들 / 왕의 적자▷ 군 : 후궁에게서 난 아들, 그리고 대군에게서 난 아들

▷ 비 : 왕비, 왕후, 국모 등과 같이 사용하며 왕의 본처▷ 빈 : 후궁과 같이 사용하며 왕의 후처

▷ 공주 : 왕비에게서 난 딸 / 왕의 적녀(嫡女)▷ 옹주 : 후궁에게서 난 딸 / 왕의 서녀(庶女)

2. 기초용어

대원군

○ 임금의 대를 이을 적자손이 없어 방계 친족이 대통을 이어받을 때, 그 임금의 친아버지에게 주던 벼슬. (양주동 편저, 국어대사전) - 방계에서 왕위를 계승한 때에 그 왕의 생부

수렴청정

○ 임금이 나이 어려 등극하였을 때 왕대비가 이를 도와서 정사를 돌 봄.○ 왕대비가 군신을 접견할 때 내외하기 위해 그 앞에 발을 쳤던 데서 유래. (상동)

추존왕

○ 실제로 왕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죽은 뒤에 묘호가 내려진 왕들.○ 조선의 추존왕은 모두 9, 이들은 종묘에 신위를 모셔 왕위에 오른 왕과 똑같이 대우했다.

• 태조 이성계의 선조 4 - 목조, 익조, 도조, 환조

•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요절한 세자 - 덕종(세조의 장남), 진종(영조의 장자), 장조(사도세자), 익종(효명세자, 순조의 장남)

•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왕의 아버지 - 원종(인조의 아버지)

원자(원손)

왕의 장자(장손)로서 아직 왕세자(왕세손)로 책봉되지 않은 사람

대군,

○ 대군 : 왕비에게서 난 아들 / 왕의 적자○ 군 : 후궁에게서 난 아들, 그리고 대군에게서 난 아들

세종과 소헌왕후(중전)사이에서 난 아들이 수양'대군', 안평'대군', 임영'대군'이며, 왕과비에 얼마전까지 나왔던 임영대군의 아들이 귀성''입니다.

공주, 옹주

○ 공주 : 왕비에게서 난 딸 / 왕의 적녀(嫡女)

○ 옹주 : 후궁에게서 난 딸 / 왕의 서녀(庶女)

용의 눈물에서 태조와 신덕왕후(중전) 사이에서 난 딸이 경순'공주'이며, 고종이 후궁에서 얻은 딸로 덕혜'옹주'가 있다.

3. 조선의 왕이름 시호, 묘호 조, , 군 구별은 어떻게 할까?

조선시대의 왕은 사후에 자신이 살았던 일생을 평가받는다. 시호(諡號)와 묘호(廟號)가 그 것이다. 시호는 살았을 때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올리는 칭호이다. 묘호는 왕의 일생을 평가 하여 정하며 종묘에서 부르는 호칭이기도 하다. 태조, 정종, 태종, 세종 하는 등의 칭호가 묘 호다.

묘호의 뒤에는 조()와 종()이 붙는데, 보통 조는 공()이 탁월한 왕에게 붙이고, 이에 비해 덕()이 출중한 왕에게는 종()을 붙인다. 따라서 창업군주에 버금가는 중흥군주에게 종이 붙는다. 대체로 나라를 세웠거나 변란에서 백성을 구한 굵직한 업적이 있는 왕이나 피 바람을 일으킨 왕들이 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태조 이성계를 비롯하여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 등이 그에 해당한다.

앞선 왕의 치적을 이어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며 문물을 융성하게 한 왕은 대개 종()자로 부른다.「창업(創業)은 조, 수성(守成)은 종」이라 하면 외우기 쉬울 것 같다.「예기」의「공 ()이 있는 자는 조가 되고, ()이 있는 자는 종이 된다」는 데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 다.

조선의 27 왕 가운데 태조,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 등 7명만 조 자를 썼다. 죽 어서 왕으로 대접받지 못한 연산군과 광해군을 제외한 나머지 왕들은 모두 종을 쓴다. 태조 는 나라를 처음 세웠기 때문에 조가 붙었다. 나머지 조 자 왕은 큰 국난을 극복했거나(선조, 인조), 반정을 통해 왕에 오른 경우(세조)이다. 영조, 정조, 순조는 숨지고 바로 종을 썼지만 후에 조 자로 바뀌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조와 종을 나누는 기준이 불투명해졌다. 조와 종은 원래 격에서 차별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가 종보다 나은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바람에 이런 이름 바꾸기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사학자 신명호씨에 따르면 조를 붙일지, 종을 붙일지는 후세의 평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심한 경우에는 이미 정한 묘호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는 것.

예컨대 선조의 경우 처음의 묘호는 선종이었다고 한다. 공보다는 덕이 앞선다고 평가한 것 이다. 그러나 나중에 허균과 이이첨이 주장하여 이를 선조로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왜구를 물리친 커다란 공이 있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또 중종의 경우는 연산군을 몰어낸 큰 공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여 중조로 하자는 주장이 인종에 의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료들 의 반대로 그냥 종을 붙이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폐위된 왕에게는 군()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왕으로서 조선시대 유교적 질서에서 크게 벗 어난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른 군주에게 붙여졌다. 연산군과 광해군이 그들이다. 이들은 왕의 자격을 박탈당한 군주이기에 종묘상의 묘호도 없다.

살았을 때와 다르게 왕들에게 이런 이름을 만들어 붙이는 것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왕실 사당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쓰기 위해서이다. 이런 이름을 묘호(廟號)라고 부 른다. 조와 종으로 죽은 왕을 부르는 것은 삼국시대에 신라 무열왕이 사용했고, 고려는 태조 왕건 이후 죽 사용하다가 원의 간섭으로 쓰지 못했다. 조선에서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 이름 법을 사용했다

왕 칭호에 붙이는 조()와 종()의 차이 태조(太祖).태종(太宗).세종(世宗).세조(世祖)와 같이 왕의 호칭에 붙이는 '' ''은 무슨 뜻을 가지고 있으며 그 차이는 무엇인가? 어떤 왕에게는 ''를 붙이고 어떤 왕에게는 ''을 붙이는가? 태조.태종.세종.세조.성종.선조와 같은 호칭은 그 왕들의 이름이 아니다. 이는 임금들이 죽은 후에 그의 신주(神主)를 모시는 종묘 사당에 붙인 칭호로서, 이를 묘호(廟號)라고 한다. '' ''이라는 글자에는 다같이 '사당'이라는 뜻이 있다. 왕조시대에는 신하나 백성들이 감히 왕의 이름을 부르지도 쓰지도 못한다. 그래서 왕들은 생시에는 주상(主上)이나 전하(殿下)라고 부르고, 죽은 후에는 사당을 지칭하는 묘호나 능을 지칭하는 능호(陵號)로 불렀다. 세종은 영릉(英陵)이라고도 부른다. 묘호는 그 왕이 죽은 후 신주를 종묘에 올릴 때 조정에서 의논해 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산군과 광해군처럼 폐위되어 종묘에 들어가지 못한 왕들은 묘호가 없다. 왕의 호칭에는 묘호 외에도 사후에 중국 황제가 지어 보내주는 시호(諡號)라는 것이 있고, 또 신하들이 그 왕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지어 올리는 휘호(徽號) 혹은 존호(尊號)라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태조(이성계)의 정식 호칭은 '태조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太祖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이었는데, '태조'는 묘호, '강헌'은 시호, '지인계운성문신무'는 휘호(존호)이다. 묘호는 대신들이 회의하여 추천하고 왕의 결재를 받아 정한다. '' ''을 붙이는 원칙을 흔히 "조공종덕(祖功宗德)"이라고 한다. 공이 많은 임금은 '', 덕이 많은 임금은 ''자를 붙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애매한 원칙이다. 공이 많은지 덕이 많은지 판단하는 것은 그야말로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묘호는 그때 그때 정하기 나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은 한 왕조를 건국하였거나 거의 망한 왕조를 부흥시킨 왕에게만 ''를 붙이고 기타 왕들에게는 ''을 붙이는 것이 관례였다.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는 창업자인 태조(太祖)나 고조(高祖) 및 중흥 황제들 외에 후대의 황제들에게는 祖字를 붙이는 일이 거의 없었다. 고려시대에도 태조(왕건) 외에는 모두 종을 붙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를 붙이는 것이 ''을 붙이는 것보다 더 권위 있고 명예로운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후계자인 왕이나 신하들이 아첨하느라고 억지로 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로 인하여 때로는 조정에서 큰 말썽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세조(世祖) 선조(宣祖) 그리고 순조(純祖)의 묘호는 억지로 무리 하게 정한 것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묘호는 한법 정한 후에 다시 개정하는 일도 있었다. 인조(仁祖)의 묘호는 본래 열종(烈宗)이라고 정하였던 것인데, 아들인 효종이 불만을 표시하여 인조라고 고쳤다. 영조(英祖)와 정조(正祖)의 묘호는 원래 영종(英宗)과 정종(正宗)이었으나 1897년 조선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친 후 '' ''로 고쳤다. 정종(定宗)과 단종(端宗)은 오래동안 묘호를 정하지 않고, 몇 백년 동안 공정왕 (恭靖王)과 노산군(魯山君)으로 불리우다가, 숙종 때 와서 비로소 정종과 단종으로 정하였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반정으로 쫓겨나고 죽은 후 종묘에 들어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묘호가 없었다. 연산군이나 광해군이라는 칭호는 그들이 왕자 시절에 받은 벼슬 이름이다. 이는 그들이 왕위에서 쫓겨난 후 다시 왕자의 신분으로 강등되었음을 뜻한다. 그와 반대로 즉위하여 통치하지는 못하였으나 후에 왕으로 추존된 이들에게도 묘호를 올렸다. 성종(成宗)의 생부(친아버지)인 덕종 (德宗), 인조의 생부인 원종(元宗), 정조의 생부인 장조(莊祖), 헌종(憲宗)의 생부인 익종(翼宗)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왕자의 신분이었으나 죽은 후에 아들들이 왕이 되어 국왕의 지위에 격상된 것이다. 그러나 선조의 생부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이나 高宗의 생부인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왕자가 아니었고, 또 왕위계승의 차례(항렬)에도 맞지 않아 왕으로 추존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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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고운 | 작성시간 09.07.11 아주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계속 수고 아끼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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