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태생은 내 것이니라
| 출 13:2 |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 |
12장의 주제가 “구속”이라면 13장의 주제는 “헌신”(獻身)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12장에서는 우리가 해야할 것이라고는 “믿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본 장에서는 “내 것이니라” 하고 하나님의 소유임을 말씀하면서 “내게 돌리라” 하고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2절과 12절에서 거듭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애굽의 장자를 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초태생은 유월절 양으로 대속하여 죽음을 면케 하셨으니 마땅히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구속, 또는 대속”의 교리에 입각한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12장이 먼저요, 13장은 그 뒤를 따라야할 말씀인 것입니다. 이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이점에서 분명해야할 점은 하나님께서 “이는 내 것이니라”고 말씀하심이 “우리의 것”이었던 것을 하나님께 빼앗긴 그런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셔서 나 같은 죄인을 탐을 내신 단 말입니까? 이는 바로(사탄)의 소유였던 그들을 구속(값을 지불)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비할 데 없는 망극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 장에는 여호와께서 능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는 말씀이 네 번(3, 9, 14, 16)이나 강조되어 있으며, 이와 수반하여 “인도”(引導)하셨다는 말은 무려 아홉 번이나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해방만 시키시고 방치하신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21) 하고 목자같이 앞에서 인도하여주셨음을 말씀합니다. 이는 그들을 책임져주심을 의미합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합니다. 이는 그들이 값으로 사신(구속)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또 강조하기를 누룩을 제하고 무교병을 먹으라(3-10), 즉 무교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째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구별 된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구속, 또는 대속”의 교리에 입각한 “윤리”입니다. 이러한 구속의 원리에 의하여 13장의 주제가 “초태생은 내 것이라”가 될 수가 있습니다. 이를 세 단원으로 나누어 상고하겠습니다.
첫째 단원(1-2,11-16) 장자는 다 대속할지니라
둘째 단원(3-10)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라
셋째 단원(17-22) 그들 앞에서 인도하신 여호와
첫째 단원(1-2,11-16) 장자는 다 대속할지니라
“너는 무릇 초태생과 네게 있는 생축의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1),
① 초태생은,
② 다 거룩히 구별하여,
③ 내게 돌리라,
④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십니다.
이 말씀을 12절에서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중요한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초태생, 또는 장자는 내 것이라는 말씀은 본문만이 아니라 출애굽기(22:29, 34:19)와, 민수기(3:11-13, 40-45, 18:16-18, 18:15-18)와, 신명기(15:19)에서도 말씀하고 있고, 심지어 신약에서도 주님과 결부하여 인용(눅 2:23)하고 있는 바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신구약을 막론하고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초태생은 “내 것이라”는 말씀이 독립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장자 된 자는 다 “대속할지니라”(13) 하신 대속(13, 13, 15)교리와 결부되어 있음을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므로 대속교리에 분명해야만 “초태생은 내게 돌리라” 하신 헌신 즉 기독교 윤리에도 분명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초태생의 태표성
그러면 왜 초태생, 또는 장자는 “대속”하라 하시는가? 그것은 부정(죄인)하기 때문에 그대로는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장자만 죄인이란 말인가? 아닙니다. 애굽의 장자를 심판하심이 애굽 전체에 대한 대표성의 의미가 있었듯이 초태생은 내 것이라는 말씀도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4:22)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전체가 장자요, 구속(값을 대신 지불)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었던 것입니다.
감추었던 계시가 밝히 드러난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는 이 진리가 더욱 분명한 것입니다. 장자만이 하나님의 소유가 아니라 어린양 되시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자는 모두 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인 것입니다. 동일한 원리로 “주일” 하루만 주의 날이 아니라 일 년 365일 전부가 주의 날이요, 십일조만 주의 것이 아니라 내게 속한 모든 것이 주의 것이라고 고백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히 구별하여”(2, 12) 내게 돌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거룩히 구별하여”란 성별(聖別), 성민(聖民)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이 전에는 어떤 처지에 있던 자들입니까? “너희는 애굽에서 곧 종 되었던”(3상) 한 노예신분이었던 것입니다. 14절에서도 “장래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찜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하고 설명해 주라고 말씀합니다. 바로의 종 곧 사탄의 종이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목을 꺾을 것이라
이 진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제시하신 한 예가 있습니다.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13) 한 말씀이 그것입니다. 어찌하여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양으로 대속하라”고 말씀하십니까? 나귀는 부정한 동물로 분류되어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기 때문에 어린양으로 대신하여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속인 것입니다. 만일 대속함을 얻지 못하면 그 목을 꺾을 것이요 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너희 아들 중 모든 장자 된 자는 다 대속할지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하나님 앞에서는 나귀처럼 부정한 자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속함을 받지 못한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귀의 목을 염려하심이 아닙니다. 바로 당신의 목입니다. 이것이 나귀를 통해서 계시된 인간의 실상인 것입니다. 이러한 처지에 있던 자가 어린양의 피로 대속함을 얻었다면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4-15). 이것이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는 뜻인 것입니다. 이를 신약적으로 말하면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단원(3-10)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에서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3).
출애굽한 그들을 향하여 우선적으로 “초태생은 내것이라” 말씀하신 하나님은 다음으로 애굽에서 나온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말고 무교병을 먹으라고 명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는 유월절과 무교절이라는 두 가지 절기가 들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됩니다. 왜냐하면 “애굽에서 나온 날을 기념하라”는 절기는 분명 유월절이요, 유교병을 먹지말고 무교병을 먹으라는 절기는 무교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절기는 나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이면서 하나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미 12:15-20을 통해서 명하신 바입니다. 12:18에 의하면 “정월에 그 달 십 사일 저녁부터 이 십 이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하십니다. 그러니까 14일 저녁은 “유월절”의 밤이고, 계속되는 7일 동안은 “무교절”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이 절기를 지키라고 강조하고 있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유월절과, 무교절)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유월절
① “구속의 은총”을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3)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유월절입니다. 어느 정도 명심해야하느냐 하면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으로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능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연연(年年)이 기한에 이르러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9-10) 하십니다.
잊지 말아야함은 자신들뿐만이 아닙니다. “너는 그 날에 네 아들에게 뵈어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인함이라 하고”(8) 자녀들에게도 계승시켜 나가라고 말씀하십니다. 14절에서도 “장래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찜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하고 자녀들에게 잊지 않도록 가르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유월절을 지켜야하는 이유입니다.
무교절
② 다음은 무교절을 지켜야할 이유입니다.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고, 네 지경 안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도 말게 하며”(7) 하신 대로 거룩하게 구별 된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갈 5:9) 한 대로 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8)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먹기는 고사하고 “있게 하지 말며, 보이지도 말게 하라” 하십니다.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며 금하고 계신가를 보게 됩니다.
만일 유교병을 먹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이스라엘의 회중에서 끊쳐지리라”(12:19, 15)고 엄히 경계하십니다. 이 대목을 신약성경에서도 대할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유교병을 먹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누룩 제거) 아니하였느냐”고 책망합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5:1-11). 이것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라”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과 무교절은 떼어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① 유월절 양의 피로 구속함(유월절)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②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무교절)의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③ 나아가 이 절기를 지키라 명하시는 궁극적인 의도는, 광복절 기념행사처럼 과거에 대한 기념만이 아니라 이 절기를 지킴으로 미래에 유월절 양의 실체로 오실 그리스도를 대망(待望)하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유월절은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눅 22:15) 하신 최후의 만찬이었던 것입니다. 이 밤은 마지막 유월절이자 첫 성찬이었습니다.
셋째 단원(17-22) 그들 앞에서 인도하신 여호와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21).
본 단원에는 “인도”(引導)라는 말이 세 번(17, 18, 21) 나옵니다. 이 순서를 명심하기 바랍니다. 먼저 구속(유월절)이 있고, 다음에 성화(무교절)가 뒤따르게 될 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동행”이 유지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화의 삶이 뒤따르지 않게 될 때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33:3)라는 말씀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고센 땅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른”(12:37) 하나님의 백성들은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13:20) 합니다. 출애굽의 여정 지도를 보시면 이 코스는 가나안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17). 그래서 블레셋을 통과하여 가사에 이르는 지름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방향을 동쪽으로 돌려서 “홍해의 광야”(18)로 인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때로는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안전한 길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을 아시는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고전 10:13)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은 홍해도하를 통해서 “세례”를 계시하시고, 추격해오는 바로의 군사를 막아주시려는 섭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19). 이 말씀을 여기에 기록케 하신 것은,
① 이스라엘 자손들이 430년 동안 고달픈 종노릇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소망을 가지고 견디었음을 말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② 나아가 하나님은 그 약속을 믿는 자들의 “소망을 부끄럽게 아니”(롬 5:5)하시고 지켜주셨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③ 그러므로 이는 요셉의 해골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라고 말씀합니다. 이 시점에서 상기해야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야곱을 애굽으로 내려보내시면서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요”(창 46:4)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셔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면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않게”(3:2) 하시고, 도리어 창성케 하사, 때가 찬 경륜 가운데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지금 “그들 앞에” (21) 앞장 스셔서 인도하여 올라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알았기에 시편기자는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에 (셀라)” 하고 말을 잊지 못해 하였던 것입니다(시 68:7).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시면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21하) 하셨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아니었다면 그들의 출애굽은 영원히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행하여” 주시지 않았다면 출애굽을 하였어도 광야를 통과하여 목적지 가나안에 이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해주심은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 된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