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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2

출애굽기 19장, 시내산에 강림하신 하나님

작성자유도순|작성시간18.04.11|조회수683 목록 댓글 0

시내산에 강림하신 하나님

출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19장은 출애굽기에 있어서 분기점이 되는 장입니다. 애굽을 탈출하여 시내 광야(1)까지 이르게 된 역사는 여기서 끝이고, 이제 후로는 시내산에 1년을 머무르면서 그들에게 율법이 주어지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18상) 합니다. 하나님이 왜 시내산에 강림하셨는가? 거기에 자기 백성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만나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셈입니다.

그런데 산 사면에 지경(地境)을 정하고 범하지 말라 하십니다.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12)고 경고하십니다. 이점이 엄하게 강조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자기 백성을 사랑하셔서 찾아오셨으나 만날 수 없는, 여기에 본 장의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이점을 세 단원으로 나누어 상고하겠습니다.


첫째 단원(1-8)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

둘째 단원(9-15) 지경을 범하지 말라

셋째 단원(16-25) 너는 아론과 함께 올라 오라


첫째 단원(1-8)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 삼월 곧 그때에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1).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 삼월이라 했으니까 삼 개월 째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때 행렬은 시내 광야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산에서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의도 즉 이스라엘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 본 단원의 주제입니다. 지금까지는 족장들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2:24) 했고,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6:6하-7상)하셨는데 여기 와서는 좀 더 발전 된 계시를 주시는 것입니다.


①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②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③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5-6) 하십니다. 셋 중에 핵심은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는데 있습니다. 여기에는 심오한 뜻이 함의되어 있습니다.


① “내 소유가 되겠고” 하신 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소유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특별한 소유”를 나타내는 의미입니다. 이점이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5상) 하신 말씀 속에 나타납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세계가 다 하나님의 소유인 것입니다. 그런데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하신 것은 창조원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속의 원리 즉 값을 주고 산 소유라는 뜻입니다. 죄 값에 팔린 인간은 구속으로 말미암아서만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② “제사장 나라가 되며” 하십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하신 대로 하나님은 그들을 다 구원하기를 원하시는데 이스라엘을 들어서 구원하시겠다는 이것이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천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제사장 나라의 사명이 무엇인가?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이 나와서 저들을 위하여 대속제물을 드려줌으로 구원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였던 것입니다.


③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하십니다. 여기 “백성”만 보아서는 부족합니다. “나라”를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저들이 거룩한 백성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면 하나님은 저들의 무엇이 된다는 말씀입니까? 다스리시는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려는 것이 구속사역의 목적입니다. 이는 제사장 나라의 사명 즉 그리스도가 제사장으로 오셔서 자신을 만민을 위한 대속제물로 드려주심으로만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④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5상),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분들이 여기서 문자만 보고 혼동하고 있는 듯이 여겨집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언약”이란 “행위언약인가? 은혜언약인가?”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

이점에 분명해야만 출애굽기를 바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자손이요 바로의 종이었던 저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은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행위로 이를 얻을 수 있는 민족이나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모세가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신 7:6) 하고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택하심은 아브라함에게 세워주신 언약에 근거합니다. 이점이 4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하십니다. 이렇게 해주심은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신 7:8)하여 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은혜언약인 것입니다.


⑤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하나님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기를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8)고 말했습니다. 일견 대견스러운 것 같지만 여기에 인간의 착각이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육적 출애굽을 통해서 영적 출애굽을 계시하시는 중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1500년 후 유대인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배척했습니까?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롬 10:3) 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고 장담한 저들이 다 행했습니까? 그리하여 저들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까? 행하지도 않았고 행할 수도 없는 전적타락, 전적부패, 전적무능을 모르고 다 행한 양 착각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의 비극이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단원(9-15) 지경을 범하지 말라

“너는 백성을 위하여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지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12).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회보(回報)하매”(8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예비하여 제 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 삼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산에 강림할 것임이니”(10-11) 하시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를 주목해 보십시오.


① 사면으로 지경(지경)을 정하라(12) 하십니다.

② 그 지경을 범하지 말라 하십니다.

③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한 데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본 단원에는 지경을 범하면 “죽임을 당하리라”(12-13)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 “짐승이나 사람을 무론하고 살지 못하리라” (13하), “내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22, 24) 하십니다. 이 말씀을 대하는 형제는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솔직히 그럴 것이라면 차라리 하나님이 강림하시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구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다”(히 12:19-21)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이를 통해서 무엇을 계시하시려는 것일까요?


셋째 단원(16-25) 너는 아론과 함께 올라 오라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16).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18-20), 다시 한 번 경계하시기를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 하다가 많이 죽을 까 하노라”(21)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강조하고 또 강조(12, 13, 21, 22, 24)하시는 의도는 무엇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았는가를 깨닫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돌파하고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24) 하십니다.

① 아론과 함께 올라 오라 하십니다.

② 제사장들과 백성은 근접하지 못하게 하라 하십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아론과 함께 올라 오라 즉 아론에게는 올라오는 것이 허락이 되었을까요? 아론의 임무는 대속제물을 드려야할 대제사장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에게는 일년 일차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될 자이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참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론은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으나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고 말씀합니다. 결론은 분명해졌습니다. “지경을 정하라, 아론과 함께 올라 오라” 하심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지경이 철폐가 되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말미암아서 만이 가능함을 계시해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한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아서 가능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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