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사울
10장의 내용은 사무엘이 은밀히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후에 백성들을 소집하여 제비뽑기를 통하여 공개적으로 사울을 왕으로 추대하는 내용입니다. 여기 의문이 제기됩니다. 어찌하여 신정왕국의 왕을 사람들의 제비뽑기로 선출한단 말인가? 그러므로 본문에는 간과해서는 아니 될 중요한 말씀이 있는데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을 기다리라”(8하) 하신 “기다림”입니다.
사울은 과연 기다릴 것인가? 두 단원으로 나누어 상고합니다.
첫째 단원(1-16) 왕으로 세우심에 대한 징조
둘째 단원(17-27) 제비뽑기를 통해 왕으로 선출 됨
첫째 단원(1-8) 왕으로 세우심에 대한 징조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를 삼지 아니하셨느냐”(1)
이리하여 사울은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으러 나왔다가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것입니다. 사울 자신도 실감이 나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그에게 확신을 주기 위하여 세 가지 징조를 말씀합니다.
①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았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2).
②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께 뵈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이 너와 만나리니 떡 두 덩이를 받게 될 것이다(4).
③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다(5).
성경은 “그 날에 그 징조도 다 응 하니라”(9)고 말씀합니다. 이점에서 유념할 점은 세 번째 징조인데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6)는 말씀입니다.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6하)는 말씀은 중생의 의미보다는 그의 새로운 사명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그가 잃은 암나귀를 찾던 자에서 하나님의 기업의 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 예언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이 사울의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의 당한 일이 무엇이뇨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11)하고 그의 변화에 놀라움을 나타냈던 것입니다.
이점에서 혼동해서는 아니 됩니다. 분별력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에게 여호와의 신을 주셨다고 하여서 사울이 메시아의 줄기의 왕으로 변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왜 여호와의 신을 주셨단 말인가? “여호와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으신 이상 <그 기업>(1)을 위하여 여호와의 신을 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잠정적인 조치였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되면 그에게 임했던 여호와의 신은 떠나고(16:14) 왕위는 박탈당하게(15:23) 될 것입니다. 사울은 백성들의 요구에 의하여 허락하신 왕임에는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점이 19절에서 “너희가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 하나님을 오늘날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도다” 하고 다시 한 번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시오, 다윗 계통에서 나실 그리스도십니다.
둘째 단원(17-27) 제비뽑기를 통해 왕이 됨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17)
먼저 저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왕을 구한 잘못을 책망합니다. 그것이 왜 잘못인지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도 다시 강조하고자합니다. 이점에 실패하게 되면 근본이 잘못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18상)하고 출애굽사건을 들어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출 6: 6-7)를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이점에서 중요한 요점은 “구속하여 내 백성을 삼았다”는 말씀입니다. 구속이란 대신 값을 지불하고 사심을 의미합니다. 죄 값에 팔린 인간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유일한 길은 “구속하여 내 백성을 삼아주시는” 길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신구약을 막론하고 동일한 진리입니다. 출애굽 당시는 유월절 양의 피로 구속하셨으나 이는 그림자에 불과하였으며 영적 출애굽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도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속함을 얻은 우리가 하나님의 “친 백성” 이라면 하나님은 우리들의 진정한 왕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 하나님을 오늘날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도다”(19)고 책망합니다.
모세도 임종머리에서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 32:6-7)고 책망했던 것입니다.
우매무지란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오신 구속의 역사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데 실패한 나머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왕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죄악(12:17)입니까? 이점은 어느 시대나 사활을 좌우하는 명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속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우리들의 왕이십니다. 어제나 오늘에 왕이 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인간에 구원을 베푸셨나이다”(시 74:12) 예로부터, 창세 전부터,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시 10: 16)이신 것입니다.
“그런즉 이제 너희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 오라”(19하)고 말씀합니다. 그리하여 제비뽑기를 하여 베냐민 지파, 마드리의 가족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습니다. 이 말씀을 대하는 우리는 다윗을 왕으로 세울 때에는 제비뽑기 같은 것이 없는데 어찌하여 사울은 제비뽑기를 하게 하시는가 고 묻게 됩니다. 이점이 하나님께서 예선해 놓으신 왕과 다른 점입니다. 사울을 가리켜 “이제 너희의 구한 왕, 너희의 택한 왕을 보라”(12:13)고 말씀합니다. 기억해 두십시오. 사울은 구속사에 끼어든(加入) 왕이라는 사실을(참고. 롬 5:20) 인간들이 택한 왕을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인가? 다시 말씀드립니다.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가망이 있단 말인가?
여기서 사울에게 첫 시험문제가 주어집니다.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을 기다리라” (8)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 말씀은 11:15과 연관이 되는 말씀이 아니고 13:8-10과 연결이 되는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기까지 기다려야만 하는가?
우리는 뒤에 가서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에 최우선적으로 법궤를 운반해 오면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다윗뿐만이 아니라 솔로몬도 일 천 번제를 드리면서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하고 기다리는 모습을 봅니다. 사울 왕은 첫 시험문제에 옳다 인정함을 받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