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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2

사무엘상 13장, 망령되이 행한 사울이라는 거울에 비췬 내 모습

작성자유도순|작성시간16.01.18|조회수740 목록 댓글 0

망령되이 행한 사울

 

     10장에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후에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을 기다리라” (10:8)고 말씀한 바가 있습니다. 본 장은 그 말씀과 연관이 되는데 본문 13절에 의하면 이 말씀이 단순한 사무엘의 당부가 아니라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사울 왕은 그 말씀을 명심하고 있었으며 또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급하게 되자 끝까지 기다리지를 못하고 자신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불안하고 초조했기 때문입니다.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당도한 사무엘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고 책망합니다.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는 엄한 징책을 합니다. 그러므로 본 장의 주제가 “망령되이 행한 사울”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이 번제를 드린 것이 어떤 의미에서 망령되이 행한 것인가? 묻게 됩니다. 세 단원으로 나누어 상고합니다.

 

첫째 단원(1-7) 이스라엘의 위급함

둘째 단원(8-15) 기다리지 못한 사울

셋째 단원(16-23) 칼이나 창이 없는 군사들

 

 

첫째 단원(1-7) 이스라엘의 위급함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6)

본 단원에는 이스라엘의 전력과 블레셋의 전력이 대비되어 있습니다. 사울 왕은 군사 3,000을 택하여 2,000은 자기가 거느리고 1,000은 아들 요나단이 거느리게 했습니다. 이에 비해 블레셋의 군세는 “병거가 30,000이요, 마병이 6,000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더라”(5)고 말씀합니다. 블레셋 사람이 이러한 대군을 거느리고 이스라엘을 침공해 온 것입니다. 한마디로 중과부족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좇는 모든 백성은 떨더라”(6-7)고 한 말씀을 짐작할 만합니다.

우리는 10:8을 고찰할 때에 “칠 일을 기다리라” 함이 왕이 된 사울에게 주어진 첫 시험문제라고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13)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유의해 보십시오.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기다 림>이란 신뢰(信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5-2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무엘도 권면하기를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12:16)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사울은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기다렸어야만 했습니다.

평안할 때나 안전할 때 기다린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지금 사울 왕이 이러한 위급한 상황 하에서도 하나님을 의뢰하고 잠잠히 기다릴 수 있는 지도자인가? 검증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러한 시험을 치른 바가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왜 이런 상황에 처하도록 하셨습니까?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8-9)고 대답합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만 의뢰하지를 못하였습니다. 형제도 이러한 시험을 받으신 적이 있으시겠지요? 그때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사 30:15-16)고 불안 초조해 하지는 아니하였는지요?

 

 

둘째 단원(8-15) 기다리지 못한 사울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8)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9)고 말씀합니다.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왔다”는 말씀으로 보아 사무엘은 약속한 기한에 오되 꽉 차서 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조금만 일찍이 왔어도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이점에서도 사울을 시험하심임이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사울은 기다리되 끝까지 기다리지를 못한 셈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13-14) 기브아로 가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사울의 잘못이 어디에 있기에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왕위를 옮기시겠다는 것인가? 그는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였던가? 아닙니다. 사울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것을 하나님을 경외한 것으로 여겨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드리지 아니함이 하나님을 경외함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망령되이 행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첫째는 불신앙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믿지를 못했으며 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도 믿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고 책망했던 것입니다. 사울은 사시는 하나님을 의뢰한 것이 아니라 번제라는 의문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을 믿지 않고 “법궤”를 믿은 것(4:3)과 같은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제사제도를 범했던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아무나 드려도 되는 줄로 경()히 여겼습니다. 성경은 제사제도를 무시함을 의외라 싶게 엄중히 다스리고 있음을 봅니다. 사울의 잘못은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한”(2:25) 경건치 아니함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대할 때에 어찌하여 교훈적인 관점에서만 접근을 하는지 안타깝습니다. 사울의 죄는 궁극적으로는 구원하심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사역에 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무시하고 불신한 죄임을 간과해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셔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주실 수가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구약시대는 그분을 예표하는 인물만이 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역은 아무나 해도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대신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유일무이한 사역입니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범한다면 달리는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던 선한 왕 웃시야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제사장 용맹한 자 80인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웃시야 왕을 막아 가로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대하 26:16-18)고 극력 저지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문둥병으로 치셨습니다. 사울 왕의 행위도 바로 이 죄를 범한 망령된 행위였던 것입니다

 

 

셋째 단원(16-23) 칼이나 창이 없는 군사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으니라”(22)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을 계수하니 600명 가량이라”(15) 그나마도 그들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었습니다(22). 아마도 삼손 이후의 일로 여겨집니다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서 “철공”(19)을 모두 잡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심지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를 벼리려면 블레셋으로 내려가야만 했던 것입니다(20). 이러한 상황에서는 더욱 더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기다렸어야 마땅합니다.

이로 보건대 사무엘이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을 기다리라”한 것은 예사로운 말씀이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을 알고 그런 중에서도 사울이 하나님을 의뢰하고 기다릴 것인가? 그리하여 약속한 기한에 오되 날이 꽉 차서야 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사울이 이러한 상황에서도 요동함이 없이 기다렸다면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이점을 8:9과 결부시켜 보십시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한지라”의 역사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사무엘의 무기, 곧 하나님의 군대의 무기는 칼이나 창이 아니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 이것이 무기였습니다. 13장의 구도를 보십시오. 첫째 단원(1-7)과 셋째 단원(16-23)에서는 약하기 그지없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블레셋 군대에 비하여 십분의 일도 안 되는 숫자와 그들조차도 손에 무기가 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둘째 단원, 즉 가운데 말씀은 사무엘이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기 위하여 약속한 기한 내에 오고 있는 구도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벧후 3:10)이 아닙니다.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왕은 응락하소서

시 20:7-9

 

사울 왕의 죄는 ①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한 불신앙의 죄입니다. ②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죄(제사제도를 무시함)입니다. ③ 하나님의 말씀(사무엘을 통하여주신)을 믿지 않은 죄입니다. 한마디로 “망령되이 행한” 죄입니다. 사울 왕은 첫 시험(試驗)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지를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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