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성경강해 2

시편 5편 주의 집에 들어가는 자와 쫓겨난 자

작성자유도순|작성시간19.04.13|조회수597 목록 댓글 0

시편 5편 개관도표

             주제 : 주의 집에 들어가는 자와 쫓겨나는 자

죄를미워하시는하나님

1-6

1 ⓛ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

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4 ②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5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주를

경외하는

자와

배역하는

7-12

7 ③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8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목전에 곧게 하소서

9 ④ 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저희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10 ⑤ 하나님이여 저희를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인하여 저희를 쫓아내소서

저희가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11 ⑥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 하리이다

12 ⑦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 리이다

5편, 주의 집에 들어가는 자와 쫓겨나는 자

요절 : 7절,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 하리이다.

 

5편에는 도표에 표시된 대로, “주를 경외(敬畏)하는 자와, 주를 배역(背逆) 하는 자”가 대조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주의 집에 들어가는 자와, 쫓아냄”을 당하는 자가 있게 됩니다. 이점이 5편을 해석하는 열쇠입니다.

도표를 보시면 먼저 “주를 경외하는 자”를 중심으로, ① 하나님을 “나의 왕”이라 부르면서,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 ②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하면서, ③ “오직 나는 풍성한 인자(仁慈)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경배하리이다” 합니다.

다음은 “주를 배역함”을 중심으로, ④ “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다” 하면서, ⑤ “저희를 정죄하사, 저희를 쫓아내소서” 합니다. ⑥ 결론적으로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 ⑦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은혜(恩惠)로 호위하시리이다” 합니다.


첫째 단원(1-6) 죄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

둘째 단원(7-12) 주를 경외하는 자와 배역하는 자


첫째 단원(1-6) 죄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

첫째 단원은 하나님의 성품을 말씀하는 내용인데 한마디로, “죄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이시라 합니다.

ⓛ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1) 합니다.

㉠ “심사(心思)를 통촉(洞燭)하소서”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보소서 하는 뜻입니다. 다윗은 먼저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있습니다. 139:23-24절에서는,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일로 인도하소서” 합니다.

 

㉡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2상) 하고, 다윗은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닌 “나의 왕”이라는 고백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자신을 통치(統治)하시고,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정왕국(神政王國)인 것입니다.

이 개념은 대단히 중요한 요점입니다. 가정도, 교회도 동일한 원리에 의하여 통치(統治)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복을 받는다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받든다는 통치의 개념이 우선하는 것입니다. “통치(統治)는 받기 싫다, 복만 달라” 하는 것이,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2:3) 하는 불신앙의 태도인 것입니다.

 

㉢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3) 합니다. “아침”이 강조되어 있는데 아침이란 일과(日課)를 시작하기 이전의 시간을 가리키는데,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란다”는 것은, 종이 상전의 분부를 기다리는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하십니다. 일과를 시작하기 전 하나님과 만나고, “바라는”, 즉 대령(待令)하는 자세가 먼저입니다.


②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4) 합니다.

㉠ 어찌하여 아담 하와가 하나님 존전에서 추방을 당해야만 했는가? “악이 주와 함께 유(留)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 존전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은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귈”(고후 6:14) 수가 있느냐 하고 묻고 있습니다.

㉡ 그리고 “오만(傲慢)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5상) 하고 말씀합니다. 그 날에 주의 목전에 “서느냐? 못 서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 그래서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5하-6)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만,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하는 두 가지 요점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둘째 단원(7-12) 주를 경외하는 자와 배역하는 자

7-10절 안에는 “나”라는 말이 4번, “저희”가 7번 등장하는데, “나와, 저희”를 대조(對照)하여 “들어가는 자(7)와, 쫓겨남”(10)을 당하는 자를 말씀합니다. “나”라는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가리키고, “저희”는 오만한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먼저 7-8절은 “주를 경외하는 자”가 힘입게 될 인자(仁慈), 즉 은혜인데,


③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仁慈)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7) 합니다.

㉠ 이 7절을 요절로 삼았는데, 복음의 중요한 요소들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합니다. “인자”(仁慈)로 번역된 “헤세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뜻합니다. 그런데 그 인자가 “풍성”(豊盛)하다는 것입니다.

 

㉯ “주의 집에 들어가” 합니다. 구속사라는 넓은 지평으로 보면 “주의 집에 들어가”라는 주제(主題)는 대단히 중요한 요점입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시조가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 존전에서 추방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들어감”이 가능해지는 것은, “오직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서” 뿐입니다.

㉰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敬拜)하리이다”(7) 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점에서 시편을 상고하면서 꼭 붙잡고 있어야 할 점을 말씀드려야만 하겠습니다. 그것은 “주의 풍성한 인자”라 한, “인자”(仁慈)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 불쌍히 여기심, 은혜”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시편에 120번 이상 등장합니다. 시편 기자는 결정적인 대목마다 “주의 인자”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바울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전 15:10) 하고 고백한 것과 같은 뜻으로, 우리도 시편을 상고하는 내내, 그리고 평생 동안 붙잡고 있어야 할 말씀입니다.

 

㉡ 그러므로 “들어감”에 대해서 좀 더 말씀을 드려야만 하겠습니다. 다윗이 “주의 집에 들어가” 했어도 그것은 온전한 “들어감”은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소(至聖所)는 휘장으로 굳게 막혀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신약성경에서는,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구약시대)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히 9:8) 하고 말씀합니다.

 

㉢ 그러므로 “들어감”이 가능해진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하고 선언하심으로 성전 휘장을 찢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히 10:19-20) 하고 말씀합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라는 뜻은,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롬 5:9) 한, 칭의(稱義)를 뜻합니다. 이점을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 3:18) 합니다.

 

㉣ 이런 맥락에서,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8) 한 말씀은 해석이 되어야만 합니다. “주의 의, 주의 길”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둘이 아니라 하나인데,

㉮ “원수들을 인하여” 하는데, “원수들”은 “나”를 대적하고, 송사하고, 망하기를 바라는 자들입니다. 이를 막아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주의 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의 의”란 “칭의”라 할 수가 있습니다. 이점이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7) 하는 말씀과도 부합이 됩니다. 이것이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8하)의 뜻이기도 합니다.


④ 이와는 대조적으로 9-10절은 “오만한 자, 행악자”(5)의 특성을 말씀함인데, “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저희 혀로는 아첨 하나이다”(9) 합니다.

㉠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저희 혀로는 아첨 하나이다”(9) 한 본문을 인용하여 인간의 전적부패를 말하면서,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하고, 인간의 자력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자가 없다(롬 3:9, 13, 20)는 점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⑤ “하나님이여 저희를 정죄(定罪)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인하여 저희를 쫓아내소서 저희가 주를 배역(背逆)함이니이다”(10) 합니다.

㉠ 여기 대조가 나타나는데,

㉮ “경외와, 배역”(7, 10)이 대조되어 있고,

㉯ “주의 의와, 정죄”(8, 10)가 대조되어 있고,

㉰ “들어감과, 쫓아냄”(7, 10)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 어찌하여 불신자들은 “정죄를 당하고, 쫓아냄”을 당하게 되는가?

㉮ “많은 허물을 인하여”(10중)입니다.

㉯ 그런데 결정적인 원인은, “저희가 주를 배역(背逆)함이니이다”(10하), 즉 “주의 풍성한 인자” 곧 하나님의 은혜를 배척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만 도표 우측에 표시된 “주의 집에 들어가는 자와, 쫓아내소서”의 대조를 유념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점에서 명심해야할 점은, 들어가는 자도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는 것”(7)이 가능하여진다는 점을 망각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 “하나님이여 저희를 정죄하사”(10상) 하는데, 신약성경에서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여지는가?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서 육신에 죄(罪)를 정(定)하셨기”(롬 8:1, 3)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하는 “저희”들은 이를 배역(背逆)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죄의 대가를 자신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⑥ 이점이 11-12절에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 하리이다”(11) 합니다.

㉠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라 한 것은, 도피성(逃避城)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란 도피성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향해서,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히 6:18) 자들입니다.

㉮ “다 기뻐하며”,

㉯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 하리이다”(11) 하고, “기쁨과 즐거움”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⑦ 5편도 중심점이 결론에 나타나는데,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12) 합니다.

㉠ “의인(義人)에게 복을 주시고” 하는데, “의인”이 누구란 말인가?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는 자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 “인도”(8)해주시고, ㉯ “보호”11)해주시고, ㉰ “은혜로 호위”(12)하여 주시고, ㉱ 궁극적으로는 “주의 집에 들어감”(7)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주의 집에 들어가는 자와, 쫓겨나는 자”입니다.


적용 : 하나님께서 “나의 심사(心思)를 통촉”하신다면 나의 모습은 어떠할 것인가?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예레미야 선지자 당시처럼 “넓은 길을 왕래”하면서 찾아보아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이에 대한 형제의 판단은 무엇입니까?

 

묵상

㉠ 5편이 대조하여 보여주기를 원하는 “나와, 저희”의 특성에 대해서,

㉡ 주의 인자를 힘입는 자의 누릴 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 주의 집에 들어가는 자와, 쫓겨나는 자에 대해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