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편, 우리가 증언하고 찬양해야 할 일
요절 : 22절,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2편은 이사야 53장과 함께 구약에 나타난 갈보리의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선지자로 사용하셔서 그리스도께서 당하실 수난(1-21)과, 부활 승리(22-26)를 증거케 하시고 이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끝, 열방”도 구원을 얻게 될 것을 예언케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이 극적으로 대조적이듯이, 22편도 앞부분과 뒷부분이 상반되게 대조적입니다. 앞부분이 어둠이 지배하는 밤이라면, 뒷부분은 광명한 아침 해가 떠오르는 낮 시간입니다. 중심점은,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한, “선포와, 찬양”에 있습니다. 선포해야할 내용이 무엇이고, 찬양해야할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단원(1-21)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둘째 단원(22-26)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
셋째 단원(27-31) 이방인에게까지 미칠 풍성한 은혜
첫째 단원(1-21)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첫째 단원에는 한 사람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점에서 시편의 기록목적(記錄目的)을 한 말씀드려야만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詩篇)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 24:44)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시편도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이점에서 확고해야 할 점은 시편에도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더러 있다는 정도로 여겨서는 아니 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쌀밥에 콩이 섞여 있는 양 여겨서는 아니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여긴다면 주님을 성경의 주인공(主人公)이 아닌 엑스트라로 만드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한 것이라”(요 5:39) 하고, 구약성경의 중심주제(中心主題)가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임을 명백히 하셨습니다.
시편의 주요 저자는 다윗인데 신약성경은 그를 가리켜 “그는 선지자(先知者)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행 2:30)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성령께서는 다윗의 수난을 예표로 하여 그리스도께서 당하실 수난을 예시해주고 있는 것이 시편인 것입니다. 다만 그 증거가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 암시적이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중심주제는 그리스도라는 점에 확고해야만 합니다.
신명기 31:19절에서는,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하십니다. 시편의 형식이 “노래”로 되어 있으나 내용은 선지서와 동일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만 합니다.
① 첫째 단원의 장면은 한 사람이 무고히 나무 형틀에 달려 사형을 당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 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 하시나이까”(1) 하고 호소를 합니다.
㉠ 이 예언은,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에서 응하여진 것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 하시나이다”(2) 하고 거듭 호소합니다.
② 그런데 이어서,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3) 하는 고백이 나옵니다.
㉠ 이런 상황에서도,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하는 것은, 마지막절의 “공의”와 결부되는 것으로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의로우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놓고,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요 12:28) 하셨고,
㉯ 로마서 3:26절에서는,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하고 말씀합니다.
㉰ 메시아예언으로 22편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이사야 53장에서는,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願)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사 53:10) 하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하는 뜻입니다.
㉡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4-5) 하고, “의뢰함과, 건지심”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는 1-2절에 대한 자답(自答)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 첫째는 “듣지 아니하시나이다(1), 응답지 아니 하시나이다”(2) 하면서, “주는 거룩하시니이다”(3) 하는 언급으로 볼 때에, 자신이 당하는 수난에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심이 있으시다는 것을 신뢰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 둘째는 당장은 구원하여주시지 않을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 즉 결국은 승리하게 하실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메시아의 수난은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안신대로 내어준 바 된”(행 2:23) 구속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③ 이어지는 6-18절의 증거는 마치 주님께서 당하신 십자가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기록한 양 그 진술이 너무나 생생합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6) 하고, “벌레” 취급을 하듯이 멸시와 천대를 받으실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7-8) 하고,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39-40) 하고, 조롱하는 자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9-11) 합니다.
누군가 지적을 했듯이 본문에는 “모친”(母親)에 대한 언급만이 있을 뿐 부친에 대한 말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시고, 우리들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시 51:5)하였지만, 주님은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12-13) 하고, 주위에는 “개들, 많은 황소, 부르짖는 사자” 등으로 표현된 대적들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 그런가 하면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이틀에 붙었나이다”(14-15상) 하고,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흘리신 주님의 처절한 모습도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15하) 한 것은, 죽어 무덤에 내려가게 될 것을 나타낸다 하겠습니다.
④ 드디어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手足)을 찔렀나이다”(16) 합니다.
㉠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17-18) 하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은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은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요 19-24)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唯一)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19-21상) 합니다. “내 유일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영혼”(靈魂)입니다.
㉢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하고 운명하셨습니다. 영혼이란 펑크 난 타이어를 갈아 끼우듯 여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천하를 얻는다하여도 영혼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첫째 단원을 구속사라는 맥락에서 보면, “너(사탄)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하신 선언의 성취라 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 단원(21하-26)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
둘째 단원은 암담했던 첫째 단원이 극적으로 반전(反轉)이 되어, 부르짖는 비탄의 소리 대신에, “찬송할지어다(22, 23, 25, 26), 영광을 돌릴 지어다”(23) 하고, 찬송과 영광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⑤ 첫째 단원에서는,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듣지 아니 하시나이까”(1) 하고 부르짖었는데, 둘째 단원에서는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21하) 합니다. “열조를 구원”(4-5)하여주심과 같이 수난의 종을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 그리하여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宣布)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讚頌)하리이다”(22) 합니다.
이 22절을 요절로 삼았는데 이 말씀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가 중요한 것은 신약성경에서도 이를 인용하여,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히 2:12) 하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포”해야 할 내용이 무엇이고, “찬송하리라” 하는 제목이 무엇인지에 확고해야만 합니다.
⑥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 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 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 지어다”(23) 하고, “찬송”이 울려 퍼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지어다” 합니다.
㉠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는가? 이는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16) 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어 장사지낸바 된 수난의 종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가능하여지는 것입니다.
㉮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눅 2:10)이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소식이 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선포하고, 찬양”해야 할 제목은 주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인 것입니다.
㉯ 22절을 인용하고 있는 히브리서 2장에서도, “오직 우리가 천사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冠) 쓰신 예수를 보니”(히 2:9) 하고, 십자가의 고난에서 멈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부활 승귀(昇貴)까지 말씀합니다.
㉰ 그런 후에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히 2:12), 즉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것을 선포(宣布)하고 찬송(讚頌)하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 어찌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야만 했는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이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 2:14-15), 이점을 선포하고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 만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된 것이 끝이라면 이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에게 매여 있는 상태요, 그러므로 이처럼 선포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부활장이라 말하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 15:14, 17-18) 합니다.
㉰ 그러므로 로마서에서는,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합니다. 이것이 “찬송하리라” 한 이유입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합니다.
㉢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증거한 그리스도는 교훈을 하시고 기사이적을 행하시는 그리스도를 전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2-24) 하고,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파했던 것입니다.
㉮ 왜냐하면 인류의 구원이 기사와 이적, 교훈 등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가능하여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점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가를 보십시오.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 1:17),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 합니다.
오늘날은 시민운동가 예수, 병 고치는 예수, 축복을 주는 예수를 전하는 사람은 많으나,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복음 전도자는 많지가 않습니다.
㉣ 이제 우리가 선포해야할 복음(福音)과, 찬송해야할 제목(題目)이 무엇인가가 분명해진 것입니다.
㉮ 다윗은 “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행사(行事)를 백성 중에 선포할 지어다”(9:11) 합니다.
㉯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讚頌)하며 전파(傳播)하리이다”(51:15) 합니다.
㉰ 40:9절에서는 “내가 대회 중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합니다. 입이 만개가 있어도 전파하고 찬양해야할 일은 구속의 은총입니다.
⑦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24) 합니다.
㉠ 이는 그리스도에게 되어진 반전(反轉)이 성도들에게도 적용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점을 신약성경 히브리서에서는,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였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8) 합니다. 30:5절에서는,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30:5) 하고 말씀합니다.
㉡ “대회 중에 나의 찬송은 주께로서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25) 합니다. “나의 찬송은 주께로서 온 것이니” 한 말씀이 중요합니다. 구원 행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고후 5:18) 한 대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바울은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롬 11:35), 즉 내가 이렇게 했으니 하나님도 이렇게 해주셔야 한다고 말할 자가 있느냐 하고 묻고 있습니다.
㉢ 그래서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26) 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 여호와를 찾는 자”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점을 산상수훈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마 5:3-6)라 하십니다. 이런 자들이 “먹고 배부를 것이며”, 즉 풍족한 은혜로 만족하며, “찬송하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리라” 하십니다. 이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가능하여진다는 것입니다.
셋째 단원(27-31) 이방인에게까지 미칠 풍성한 은혜
⑧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27) 합니다.
㉠ “땅의 모든 끝, 열방의 모든 족속”이란 그리스도의 은혜가 이방인에게까지 미치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호 1:10) 말씀하고,
말라기 선지자로 말씀하시기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말 1:11) 하셨습니다. 그래서 “땅의 모든 끝이 돌아오며, 경배하리니”(27) 하는 것입니다.
㉡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 세상의 모든 풍비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에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28-29) 합니다. 여기에는 “풍비한 자와, 진토에 내려가는 자”가 망라되어 있는데, 이는 빈부귀천의 분별이 없이 은혜를 입게 될 것을 나타낸다 하겠습니다.
⑨ “후손이 그를 봉사할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30) 한 것은, 주님의 재림의 날까지 복음이 계승이 되어 나갈 것과, 자손 대대로 주를 섬기게 될 것을 말씀함입니다.
㉠ 이점을 78:5-7절에서는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게” 하려함이라 하십니다.
㉡ 그래서 “와서 그 공의를 장차 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31) 하는 것입니다. 여기 “공의”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하나님에게는 “공의와, 칭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의로우심입니다.
이 의로우심이 우리를 위하여 대신 정죄를 당하신 그리스도에게는 공의(公義)로 임하였고, 대속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하게 될 때에는 칭의(稱義)가 되어 받아주심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대신 자기 아들을 심판하심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시고 구원하심이 가능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 22편은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1) 하고 시작이 되었으나, “그 공의를 장차 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31) 하고, “전하라”는 말씀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첫째 단원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둘째 단원은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을 증거하여, 셋째 단원에서는 열방이 복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얼마나 명백한 계시인가! 이것이 “이방인에게까지 미칠 풍성한 은혜”요, “우리가 선포하고 찬양해야 할 일”입니다.
적용 : 이렇게 까지 미리 보여주신 후에 성취해주셨는데도 믿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첫째는 우리가 전해주지 않게 때문일 것입니다. 둘째는 설교자가 성경을 기록한 목적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이루어주신 복음을 믿노라고 하면서 찬양하지 못하고 전파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묵상
㉠ 첫째 단원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서,
㉡ 둘째 단원의 영광을 돌리며 찬양할 이유에 대해서,
㉢ 이 구원의 복음이 “땅 끝과, 열방”에까지 전파될 것에 대해서,
㉣ 우리가 전파해야할 내용과, 찬양할 이유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