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2편, 시온을 건설하시고 영광 중에 나타나실 것을 바라봄
요절 :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102편에는 “곤고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하는 기도”라는 표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개인의 참회(懺悔)하는 시로 보기가 쉽습니다만 내용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먼저 전체적인 구조(構造)를 파악하는 것이 곁길로 빠지지 않고 바르게 해석하는 비결이 됩니다. 첫째 단원(1-11)과, 셋째 단원(23-24)은 인칭(人稱)이 모두 “나”로 되어 있으나, 중간에 있는 둘째 단원(12-22)에는 “나”라는 인칭은 한마디도 없고 “시온”이라는 언급이 4번이나 등장하면서, “열방, 열왕(15), 민족들과 나라들이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22) 하는 구조입니다.
이를 내용적으로 분류를 하면, ㉮ 첫째 단원은 환난 중에 처한 현재 상황이고, ㉯ 둘째 단원은 예언적인 말씀인데, 여기가 102편의 중심부입니다. 이를 진술한 후에 결론 부분에서는 간구와 확신으로 마치고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문에 등장하는 “나”는 개인일 수도 있고, 징벌을 당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102편을 통해서 나 자신과 온 인류의 소망이 어디에 있는가를 깨닫는 일입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신다(16)는 점과,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18) 하는 말씀에서 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첫째 단원(1-11) 주의 분노를 인함이라
둘째 단원(12-22) 시온을 건설하시는 하나님
셋째 단원(23-28) 후손이 굳게 서리이다
첫째 단원(1-11) 주의 분노를 인함이라
첫째 단원의 중심점은 “이는 주의 분과 노를 인함이라”(10)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분노(忿怒)를 사서 이처럼 곤고한 처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현재적(現在的)인 상황입니다.
①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1),
㉠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2) 합니다. “괴로운 날과, 부르짖는 날”이 있는데, 괴로운 날은 부르짖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로 보건대 102편의 배경이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한 상황으로 여겨집니다.
② “대저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냉과리 같이 탔나이다”(3),
㉠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음으로 내 마음이 풀같이 쇠잔하였사오며 나의 탄식소리를 인하여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4-5) 합니다. 문자만을 본다면 “나”라는 사람이 중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102편 전체의 의미문맥으로 보면, 예루살렘의 패망으로 인한 민족적인 비애를 마치 자신이 중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예루살렘이 심판당한 것을,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를 꺾으셨고, 활을 당기고 나로 과녁을 삼으심이여 전동의 살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애 3:4, 12-13) 하고 표현합니다. 몸 된 교회의 고난은 곧 지체들의 고난과 같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나는 광야의 당아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6-7) 합니다. 이 고독과 비애를 예레미야 애가에서는, “이를 인하여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같이 흐름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영을 소성시킬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원수들이 이기매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애 1:16) 합니다.
③ 8-10절은 당면한 환난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줍니다. “내 원수들이 종일 나를 훼방하며 나를 대하여 미칠 듯이 날치는 자들이 나를 가리켜 맹세하나이다”(8) 하고, “미칠 듯이 날치는 원수들의 훼방”이라는 진술에서, 기자의 고난이 육신의 질병이 아님이 드러나고,
㉠ “나는 재를 양식 같이 먹으며 나의 마심에는 눈물을 섞었사오니 이는 주의 분과 노를 인함이라 주께서 나를 드셨다가 던지셨나이다”(9-10상) 하는데서, 당면한 고난이 죄에 대한 징벌임이 드러냅니다. “던지셨다”는 표현은 성전을 건축하는 솔로몬에게,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殿)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왕상 9:7) 하신 경고를 연상하게 합니다. 이것이 “주의 분노를 인함이라”입니다.
둘째 단원(12-22) 시온을 건설하시는 하나님
둘째 단원의 중심점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신다”(16)는데 있습니다. 이는 시온이 파괴를 당한 상태임을 암시해주고 있는데, 예루살렘이 파괴당한 것은 인간이 범한 죄의 결과요, 이를 건설(建設)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이는 예언적인 말씀입니다.
④ “여호와여 주는 영원(永遠)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다”(12) 합니다.
㉠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 즉 주의 이름은 대대로 기억하게 되리라는 말은 참으로 중요한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단원의 비애와 낙망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상론(詳論)이 26-27절인데,
㉮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永存)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如常)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無窮)하리이다” 합니다.
㉯ 무슨 뜻이냐 하면, 예루살렘은 파괴를 당하고, 성전 건물은 불에 타고, 자신들은 포로로 끌려와 옷처럼 낡아질 지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과, 언약과, 계획은 폐하여짐이 없이 영원하리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 이점이 계속되는 진술에 더욱 분명히 나타나는데,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정한 기한이 옴이니이다”(13) 합니다. 이는 세 마디로 되어 있는데,
㉮ “주께서 일어나사” 합니다. 인간이 절망하는 지점에서 하나님은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사 30:18), 즉 일을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 “긍휼히 여기시리니” 한, 하나님의 “긍휼”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합니다. “지금”은 어떠한 때인가? 첫째 단원(1-11)의 때, 즉 “나는 광야의 당아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6-7) 한, 외롭고도 처량한 때입니다.
㉰ 그러나 “정한 기한이 옴이니이다”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때가 찬 경륜”(엡 1:9) 가운데 행하십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갈 4:4) 하심같이,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하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 이 약속을 믿기에,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 티끌도 연휼(憐恤)히 여기나이다”(14) 합니다. “시온의 돌들, 그 티끌”이라는 표현은 파괴당하여 폐허가 된 상황을 상상하기에 족합니다. 그런데 “돌들을 즐거워하고, 연휼”, 즉 연민의 정을 가지게 된다니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돌아오게 하고 회복시켜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를 믿는 자는 파괴당한 벽돌, 기와조각 하나까지도 손으로 쓰다듬고, 가슴에 껴안으면서, 소망 중에 즐거워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⑤ 그런데 이점에서 유념해야할 점은 하나님께서 회복하시고자 하는 일은, 파괴당한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차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점이 “이에 열방(列邦)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세계 열왕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15) 하는 말씀에 나타납니다.
㉠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여지는가? 여기 102편의 요절이 등장하는데,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建設)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심”(16)으로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건설하신다”는 “시온”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 이는 물리적인 건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한 답변을 사무엘상 7장에서 구할 수가 있는데, 성전건축을 소원하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建築)하겠느냐,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삼하 7:5, 11), 즉 건설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시온을 건설(建設)하신다”는 구속사적 의미입니다.
이점을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사 14:32) 말씀하고,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는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암 9:11) 하십니다.
㉡ “시온을 건설(建設)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심”(16)이 2차에 걸쳐서 나타나게 되는데,
㉮ 첫 번째는,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한,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나타나게 되고,
㉯ 두 번째는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 한, 재림으로 완성이 될 말씀인 것입니다.
㉰ 이런 맥락에서 “시온을 건설하시고”의 1차적인 성취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 하신 시온성과 같은 교회요,
㉱ 그 완성은,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계 21:3) 한, 하나님의 나라건설인 것입니다.
⑥ 그래서 “이 일이 장래(將來)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18) 하고, 장래에 되어질 일이라 말씀합니다.
㉠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 하는 재창조를 가리킵니다.
㉡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으니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19-20) 하십니다.
㉮ 79:11절에서도 “갇힌 자의 탄식으로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했습니다. “갇힌 자와, 죽이기로 정한 자”(20)가 누구인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신 아담의 후예들이요,
㉯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를 노아주려 하심이니”(히 2:15) 하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⑦ 왜 이렇게 행해주시는가?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케 하려 하심이라”(21) 하고, 목적을 말씀하는데 하나님의 “이름과, 영예”를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구원계획에는 “여호와의 이름과, 영예”가 걸려있다는 말씀입니다.
㉠ 그리하여 “때에 민족(民族)들과 나라들이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22)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 영광스러운 둘째 단원을 마치기 전에 다시 한번 본문을 관찰해보시기를 바랍니다.
㉮ 첫째 단원에는 “나”라는 인칭이 무려 21번이나 등장합니다. 결론이 무엇인가?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11) 하는, “쇠잔”(衰殘)입니다.
㉯ 그런데 둘째 단원에는 “나”라는 호칭이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고, 전부가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해주실 일들뿐입니다.
㉢ 인간의 행위는 “심판, 멸망, 파괴, 절망”을 가져왔으나 하나님의 행사는,
㉮ “건설하시고(16),
㉯ (재)창조하시고(18),
㉰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시고(20),
㉱ 영광 중에 나타나시어(16),
㉲ 민족들과 나라들이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22) 하는데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시온을 건설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셋째 단원(23-28) 후손이 굳게 서리이다
셋째 단원의 중심점은, “그 후손이 주의 앞에 굳게 서리이다”(28) 하는데 있습니다. 어찌하여 “후손”을 말하는가? 이런 뜻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히 11:13), 즉 자신들은 그 날을 보지 못할지라도, 정한 때가 되면 약속하신 대로 시온을 건설하시고 영광 중에 나타나실 것을 믿는 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후손이 주의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는 것입니다.
⑧ 그러나 지금은 “저가 내 힘을 중도(中途)에 쇠약케 하시며 내 날을 단촉케 하셨도다”(23) 합니다.
㉠ 시편 기자는 멀리 바라보던 둘째 단원의 비전에서 시선(視線)을 현재(現在) 상황으로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내 힘을 중도에 쇠약케 하셨다”는 진술을 개인의 일로 국한시켜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속사(救贖史)란 “중도에 쇠약케” 되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징벌하시기 위해서 중도에 쇠약케 하실지라도,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사 42:3) 아니하셨던 것입니다.
⑨ 24-28절은 영존(永存)하시는 하나님의 영원성과, 풀과 같이 시들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성을 대조적으로 진술하는 내용입니다.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년대는 대대에 무궁(無窮)하니이다”(24),
㉠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바니이다 천지(天地)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永存)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如常)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無窮)하리이다”(25-27) 합니다. 무슨 뜻인가?
㉡ 현실이 아무리 암담하다 하여도 하나님의 불변성과 영원하심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언약과 계획하심도 변함이 없이 성취가 된다는 점을 증거하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애가(哀歌)서에서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애 5:19) 합니다. 그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낙망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본문 25-27절을 히브리서 1:10-12절에서 인용하여,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하고 그리스도의 영원불변한 신성(神性)을 증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점에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영광 중에 나타나신다”는 말씀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될 예언임이 확고해집니다.
㉢ “괴로운 날에, 부르짖는 날에”(2) 하고 시작된 102편은, “주의 종들의 자손(子孫)이 항상 있고 그 후손이 주의 앞에 굳게 서리이다”(28) 하는, 확고한 소망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천하 만민이 구원의 복을 받게 될 것을 확신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시온을 건설하시고 영광 중에 나타나실 것을 바라봄”입니다.
적용 : 신약의 성도들은 “시온을 건설하시고 영광 중에 나타나신” 임마누엘 이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도 “괴로운 날, 부르짖는 날”은 있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 하신 약속을 믿기에, 영광 중에 나타나실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
㉠ “시온을 건설하시고 영광 중에 나타나신다”는 의미에 대해서,
㉡ “장래 세대를 위한, 창조함을 받을 백성”에 대해서,
㉢ “후손이 굳게 서리이다”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