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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2

예레미야 8장,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

작성자유도순|작성시간17.01.21|조회수1,233 목록 댓글 0

8장,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

 

   22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

    

8장은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1상)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이는 앞 장 마지막에서 “그 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쳐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7:34) 하신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멸망 받게 될 때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8장에서는 “그 때”의 참상이 어떠함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계속적으로 두려운 심판을 경고하는 중에 심판 당할 유대인들을 “딸 내 백성”이라는 애칭으로 네 번(11, 19, 21, 22)이나 부르고 있습니다.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21)고 말씀합니다. 이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경고하되 가슴이 미여지는 아픔을 맛보면서 눈물로 경고하고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딸 내 백성”이 멸망 즉 죽게 되었는가? 이는 약이 없어서도 아니요, 의사가 없기 때문도 아니라(22)고 말씀합니다. 선지자나 제사장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11) 하고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8장의 주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가 될 수가 있습니다. 이를 세 단원으로 나누어 상고하겠습니다.

 

첫째 단원(1-3) 그 때의 참상(慘狀)

둘째 단원(4-17) 고집하고 돌아오지 않는 백성

셋째 단원 (18-22) 선지자의 탄식

 

 

첫째 단원(1-3) 그 때의 참상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 방백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거민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

본 단원은 그 때의 참상을 두 가지 일을 들어서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① 먼저 죽은 자의 뼈도 무사치는 못할 것이라고 말씀함으로 “그 때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대적들이 무덤을 파헤쳐서 죽은 자들의 뼈를 묘실에서 끌어내어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같을 것”(2하)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모스 2:1에 의하면 모압 왕이 에돔을 정복하고는 왕의 뼈를 불살라 회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는 산 자를 모욕하는 것보다 더한 최대의 모욕이었던 것입니다.

㉠ 그토록 모욕을 당할 대상자들을 보면 “왕, 방백, 제사장, 선지자”들를 들고 있는데 이들은 지도자 계급입니다.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하고” 멸망을 당하게 한 일차적인 책임이 이들에게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 이점을 예레미야 애가에서는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애 2:1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 하고 그들의 책임이 화(禍)를 받아 마땅함을 책망하셨습니다. ㉢ 그런데 “예루살렘 거민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1하) 하고 예루살렘 거민도 맨 나중에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지도자를 잘못 만난 백성들의 슬픔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② 다음으로 “이 악한 족속의 남아 있는 자”(3상) 즉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의 참상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3하) 하십니다. 계시록 9:6에 보면 “그 날에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라는 묘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그 때의 참상”입니다. 이 이상 그 때의 참상을 달리 표현할 말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③ 하나님의 백성이 어찌하여 이런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되는가? “그들의 사랑하며 섬기며 순종하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2상) 이라는 말에서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구를 “사랑하며, 섬기며, 순종하며, 구하며, 경배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가 아닙니다. 일월성진(日月星辰)의 우상에게 그리하였다는 것입니다.

    

둘째 단원(4-17) 고집하고 돌아오지 않는 백성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4).

하나님은 그들이 “고집하고 돌아오지 않는” 잘못을 두 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① 전장(戰場)에서 죽을 줄도 모르고 앞을 향하여 달려나가는 말과 같다(6하)고 말씀합니다.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처럼 앞만 보고 돌진하는 것이 필요한 때도 있을 것입니다 만, 신앙생활이란 때로는 자신이 달려온 길을 뒤돌아다보며 곁길로 잘못 들지는 않았는가? 방향이 옳은가? 하고 궤도수정을 해야만 안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우상을 숭배하던)을 보라”(2:23) 하십니다. “뒤돌아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레미야서에는 “길”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40회 이상 나옵니다. “길을 바꾸었다”(2:36)고 경고합니다. “길을 굽게 하였다”(3:21)고 경계하십니다. “여호와의 길을 알지 못한다”(5:4-5)고 책망하십니다.


② 또한 철새 비유를 들어서 말씀합니다. “학, 반구, 제비, 두루미”(7) 등은 철새들인데 떠나 갔다가도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7하) 하고 떠나간 후로 고집하고 돌아오지 않는 딸 내 백성을 책망을 하십니다.

③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5하) 하심을 유념해야만 합니다. 예루살렘 백성이 “거짓을 고집하고” 있다는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 되게 하였나니”(8하) 하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지적합니다. 서기관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기록하고 해석하고 교훈 하는 자입니다. 이들이 거짓 교훈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백성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 그러면서도 서기관들은 말하기를 우리에게는 “지혜가 있고, 율법이 있다”(8상)고 가장 진실인양 백성들을 오도(誤導)했던 것입니다.


④ 하나님은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9) 하시면서 “수욕을 받으며 경황 중에 잡히리라”고 경고하십니다. 주님께서 일곱 번이나 “화 있을진저” 하고 저주하신 대상이 다름 아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마 23:13)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⑤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10하) 하고 지적합니다.

⑥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11) 하고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딸 내 백성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지 않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라”(약 3:1) 하심은 시대를 초월한 경고인 것입니다.

⑦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진멸 하리니”(13) 하십니다.


⑧ 14-17은 진멸 당할 그 때에 가서야 잘못을 깨닫게 되고, 속은 줄을 알게 되리라는 그런 뜻입니다. ㉠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으므로”(14), ㉡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15) 하고 평강하다, 평강하다 한 거짓말에 속은 것을 알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 “놀라움뿐이로다”(15하)고 말합니다. 그 놀라움뿐인 광경이 16-17인데 바벨론의 군사들을 “뱀과 독사”에 비하여 “너희를 물리라 하시도다” 합니다. 이것이 “고집하고 돌아오지 않는 백성”이 받을 마지막입니다.

 

셋째 단원(18-22) 선지자의 탄식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18).

① 본 단원은 예레미야의 탄식입니다.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21)고 말씀합니다. 예레미야는 9:1에서는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육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애가(哀歌)에서는 “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가”(1:12)고 묻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대하면서 내게도 이러한 슬픔과 상한 마음을 가지고 이 말씀을 상고하고 있는가? 아니면 지나가는 한 과객(過客)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도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롬 9:2) 양심과 성령이 증거하는 바라고 말씀합니다.


② “딸 내 백성이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19) 하고 바벨론에서 부르짓게 될 것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 왕이 그 중에 계시지 아니한가” 어찌하여 자신들을 버리셨는가 하고 슬피 부르짖을 것을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③ “추수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20) 하고 절망에 빠지게 될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이렇게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의 치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발하시나이까

옛적부터 얻으시고 구속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의 거하신 시온산도 생각하소서,

주의 대적이 주의 회중에서 훤화하며 자기 기를 세워 표적을 삼았나이다

저희는 마치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 같으니이다

이제 저희가 도끼와 철퇴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고

주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시 74:1-7).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들이 이렇게 부르짖게 될 소리를 들으면서 슬픔과 놀라움에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④ 하나님은 부르짓는 그들을 향해서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케 하였는고”(19하) 하고 우상숭배가 근본 원인임을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징벌을 받은 우상숭배! 신약의 성도들하고는 무관하단 말인가?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리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요일 2:15, 골 3:5).


⑤ 결론에 이르러 선지자는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22) 하고 탄식합니다. 그렇다면 유향은 무엇이며 의사는 누구란 말인가? “저가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 107:20) 하고 치료하는 유향이 “말씀”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고 있는” 당시의 선지자들은 돌팔이 의사요,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3:22)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양약(良藥)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궁극적인 말씀과 의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의사가 없고 약이 없어서 죽는다면 체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그런데도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면 선지자는 탄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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