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9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연고라 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22장은 다윗의 위에 앉은 세 왕, 즉 살룸(여호아하스)과 여호야김과 고니야(여호야긴)에게 하시는 경고입니다. 21장에서는 시드기야 왕에게 경고하였으니까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말기의 네 왕에게 그들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언적으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생명을 내어놓은 담대함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들을 가리켜 “다윗의 위에 앉은 유다 왕”(2, 4, 30)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앞 장에서도 언급했습니다 만, 구속사의 맥락에서 바라볼 때에 대단히 중요한 묘사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위에 앉은 자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세워주신 언약의 계승자임을 나타내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위에 앉은 자들이 어찌하여 그토록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는가?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연고라”(9)고 대답합니다. 그러므로 본 장의 주제가 “다윗의 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가 될 수가 있습니다. 이를 두 단원으로 나누어 상고하겠습니다.
첫째 단원(1-9)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둘째 단원(10-30) 세 왕에 대하여 말하노라
첫째 단원(1-9)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유다 왕의 집에 내려가서 거기서 이를 선언하여 이르기를 다윗의 위에 앉은 유다 왕들이여 너와 네 신하와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1 -2).
본 단원(1-9)은 세 왕에게 개별적으로 말씀하기에 앞서서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① “너희가 공평과 정의를 행하여”(3상),
②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3하) 하십니다. 이 명은 21:12에서 시드기야 왕에게 하신 말씀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들을 다윗의 위에 앉게 하신 것입니다. 이는 훗날 다윗의 위에 앉아서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실 메시아의 예표답게 다스릴 것을 기대하셨기 때문입니다.
③ 이 말씀(3)을 23:5절과 결부시켜 보면 그 의미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의롭고 지혜로운 왕, 그리하여 공평과 정의”로 다스릴 이 왕이 누구입니까? 이는 명백한 메시아에 대한 예언입니다.
④ 이사야 선지자도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고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⑤ 이 예언이 “보라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1-33)에서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⑥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4) 평안하리라 하십니다.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로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무하리라”(5) 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위에 앉아 메시아를 예표하고 있는 왕들이 “공평과 정의”(3)로 다스릴 것을 기대하셨으나 그들은 순리로 행한 것이 아니라 역리(逆理)로 행함으로(롬 1:26) 결국 멸망을 자초하고 만 것입니다.
⑦ 하나님은 이 실패를 들어서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져주는” 구원행위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함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탈취 당한 자”란 빼앗긴 자입니다. “압박하는 자”란 곧 사탄입니다. 사탄의 속박에서 구원하여주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뿐임을 강력하게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⑧ 그들이 행할 수가 없었다면 다윗 언약을 믿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겼다”(9)는 것은 앞에서도 지적한 대로 단순한 우상숭배를 했다는 선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언약 곧 그리스도를 배척한 죄임을 인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그리스도를 배척하면 그 종말은 멸망뿐입니다. 이것이 세 왕에게 공(共)히 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둘째 단원(10-30) 세 왕에 대하여 말하노라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서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니라”(10).
세 왕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원리적인 말씀(1-9)을 하신 다음에 유다 말기에 세움 받은 세 왕에게 각각 경고적인 예언을 하십니다.
살룸(여호아하스) 왕에 대한 경고
10-12은 살룸 즉 여호아하스에 대한 경고입니다. 살룸은 요시야 왕의 넷째 아들(대상 3:15)인데 요시야가 죽자 백성들이 세 형을 제쳐놓고 그를 왕으로 옹립한 것입니다. “여호아하스가 그 열조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바로느고(애굽 왕)가 저를 하맛 땅 립나에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저가 거기서 죽으니라”(왕하 23:32-34) 하고 역사서는 그의 사적을 말해줍니다. 그는 불과 3개월 동안 왕위에 있다가 애굽으로 잡혀가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① 예레미야 선지자는 살룸에 대하여 “그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잡혀간 곳에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 (11-12) 하고 예언하였는데 그대로 성취되고 만 것입니다.
② “너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10상) 합니다. 선한 왕 요시야가 죽자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대하 35:24)했는데 예레미야는 “죽은 자(요시야 왕)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간 자(살룸)를 위하여 슬피 울라”(10) 하므로 살룸의 종말이 차라리 죽은 자가 났다할 정도로 비참해질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야김(엘리야김) 왕에 대한 경고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불공평으로 그 다락방을 지으며 그 이웃을 고용하고 그 고가를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13).
13-23은 여호아김 왕에 대한 경고입니다. 여호야김은 요시아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는 11년 간 왕위에 있었는데 “여호야김이 그 열조의 모든 행한 일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왕하 23:37) 합니다. 그는 사치하고 포악한 왕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①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광대한 집과 광활한 다락방을 지으리라”(14) 하고 백성들에게 과중한 부역을 시키고는 임금도 주지 않았던(13) 것입니다.
② “네가 백향목으로 집짓기를 경쟁하므로 왕이 될 수 있겠느냐”(15상)고 책망하십니다. 장대한 궁궐과 누각을 세움으로 왕의 권위가 높아지고 견고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③ “네 아비(요시야 왕)가, 공평과 의리를 행치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15하) 하십니다. 요시야는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네 아비”처럼 행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돌아보는 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16) 하십니다. 이는 신약적인 말씀으로서 백성을 사랑하라, 즉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④ “그러나 네 눈과 마음은 탐람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강포를 행하려 할 뿐이니라”(17)고 정반대로 행하였음을 책망하십니다.
⑤ 그러므로 슬퍼하는 자 없이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18-19) 하고 예언합니다. 역사서를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치고 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갔다”(대하 36:6)는 말이 그에 대한 마지막 기록입니다. 그의 종말은 선지자의 예언대로 비참하게 최후를 마친 것으로 여겨집니다.
⑥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21) 하십니다. “습관”이란 말은 어쩌다 실수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의 경향성(傾向性)을 의미합니다. 요일 3:8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것을 의미하는 데 여호야김이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⑦ “레바논에 거하여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의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23) 하고 그의 종말이 비참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고니야(여호야긴) 왕에 대한 경고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너 고니야가 나의 오른 손의 인장 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의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24-25).
24-30은 고니야(여호야긴) 왕에 대한 경고입니다. 고니야는 여호야김의 아들, 즉 요시야의 손자인데 “여호야긴이 그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왕하 24:9) 하고 그도 악한 길로 행하였음을 말씀합니다. 그는 불과 석 달만에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모친과 아내와 내시와 방백들과 수많은 백성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습니다(왕하 24:8-16).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① “너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24상) 합니다. 인장반지란 사람 몸에 지닐 수 있는 최대로 귀중한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만일 다윗의 위에 앉은 자답게 행하였다면 하나님 앞에 인장반지 같이 소중히 여김을 받았을 것입니다.
② 그러나 “내가 빼어,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24하-25) 하십니다. 이는 그가 최대로 존귀한 자의 위에서 최저로 비참한 자의 자리로 떨어지게 될 것을 말씀함입니다.
③ 여호야긴과 결부된 말씀 중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無子)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 자손 중에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30)는 말씀입니다. ㉠ 그런데 역대기를 보면 여호야긴은 무자한 것이 아니라 아들의 이름이 일곱(대상 3:17)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고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 이 말씀은 23:5과 결부시켜 해석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위에 앉을 한 의로운 왕을 일으키실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는 말씀은 육적인 다윗의 위가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을 뜻함으로 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호야긴의 일곱 아들 중에 대를 이어 왕이 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등장하지만 그는 여호야긴의 아들이 아니라 삼촌으로, 실제로는 여호야긴이 마지막 왕이라 할 것입니다. ㉣ 이 점을 마 1:11은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고니야)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하고 그가 마지막 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 하고 언약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유다는 멸망하게 되고 다윗의 위는 끊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언약은 어찌되는 것이며, 성취해나가시는 구속사역은 어찌되는 것인가?
이는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대로(히 9:10) 짐승의 제물에서 아들로, 육적 다윗에서 영적 다윗으로 “개혁”(改革)할 때가 이르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 하고 선언하신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어 나오신 메시아 왕국이 중단된다던가 폐하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위를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2 -33)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심으로 중단 없이 이루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에 앉은 유다 왕"에 대한 경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