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14-15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이른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33장도 계속되는 회복에 관한 약속입니다. 이스라엘이 지금은 멸망당하나 “그러나”(6상)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것을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언제나 멸망당하게 되는 원인은 인간의 책임(죄책) 때문이지만, 회복하심은 신구약을 막론하고 “내가 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행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 장에서 하나님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2)로 계시되어 있습니다. 성취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14) 하십니다. 성취하실 선한 말(언약)이란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15) 하신 메시아 언약입니다. 본 장은 이 핵심적인 메시아 예언을 중심으로 해석되어야만 그 뜻을 바르게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를 세 단원으로 나누어 상고하겠습니다.
첫째 단원(1-3) 일을 행하는 여호와
둘째 단원(5-13) 치료하며 낫게 하리라
셋째 단원(14-26) 다윗에게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라
첫째 단원(1-3) 일을 행하는 여호와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가라사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1-2).
여기 중요한 계시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① 일을 행하는 여호와,
② 그것을 지어(계획하여),
③ 성취하는 여호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계시는 하나님의 도성은 멸망에 직면해있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갈 상황에 놓여있으며, 하나님의 성전은 불에 탈 절망적인 때에 임한 계시인 것입니다.
㉠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일을 행하는 여호와”이십니다. 창세기 2:3에서는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고 말씀했는데, 어찌하여 “일을 행하는 여호와”라고 말씀하시게 되었는가? 주님은 안식일에 일한다고 비난하는 자들을 향하여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고 대답하십니다.
㉡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는 소원을 말씀드리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삼하 7:6) 하셨습니다. 집에 거하지 않고 장막에 거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집은 부동산이나 장막은 이동하기에 간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적 싸움을 하는 중에 후방 궁궐에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전방 천막에 거하시는 야전군 사령관으로 계시하십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겠다”(삼하 7:5, 11)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15) 하신 다윗 언약입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는 다름이 아닌 이 언약을 이루어나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 “그것을 지어” 하십니다. 이는 인류구원에 대한 계획을 세우셨음을 뜻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를 가리켜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엡 3:9)이라고 말씀합니다. 경륜(經綸)이란 일을 계획하고 조직적으로 추진해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경륜은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7)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 “성취하는 여호와”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계획하신 역사를 중단한다든가 미완성에 끝이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고 말씀합니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사 43:13)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하고 담대히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믿음의 담력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를 의뢰하고 의탁하는데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 옥중에서도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고 이를 확신했습니다.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믿을만한 분)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④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3상)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어 성취”하신다고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이루어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니라”(겔 36:36-37) 하십니다.
⑤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하) 하십니다. 이는 예레미야에게만 알려주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을 지어 성취하심”을 자기 백성들이 알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시대 시대마다 말씀의 사역자들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점을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엡 3:8-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지어 성취”해 오셨음을 드러내고, 성경을 들어 증명(행 17:3)해줌으로 성도들의 믿음을 견고히 세워주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의탁하게 하기 위하여 세움을 입은 자인 것입니다.
둘째 단원(5-13) 치료하며 낫게 하리라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부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6).
둘째 단원은 크게 두 부분(4-5, 6-13)으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앞부분입니다.
① “내가 나의 노와 분함으로”(5상)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노와 분”함이 있으시게 된 것은 한마디로 그들이 선하신 하나님께 “배역하고(3:22) 반역”(11:9)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② “그들을 죽이고 그 시체로 이 성에 채우게 하였나니”(5중)하십니다. 이것이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한 반역의 종말입니다.
③ “나의 얼굴을 가리워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니라”(5하) 하십니다. “얼굴을 가리웠다”는 이 묘사가 중요합니다. 이점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1-2)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우심은 당시만이 아니라 구약시대 내내 그러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우심이 성막 계시의 휘장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행위의 결국임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인간중심으로 보면 그것은 암흑, 절망인 것입니다.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① 둘째 부분은 “그러나”(6상) 하고 시작됩니다. 32:36에서도 “그러나” 하고 말씀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란 이제까지 말한 것을 단 번에 뒤집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인간중심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중심으로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부분에서는 “그들”이라고 말씀하였으나 뒷부분에서는 “내가, 내가”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죄론을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하고 결론을 맺고는 (그러나) 이제는(but now) 하고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롬 3:20-21) 하고 이제까지 말한 인간행위를 뒤집고,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복음이 나타났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란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그러나”를 외칠 수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여기에 광명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②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고 고쳐 낫게”(6중) 하겠다고 말씀합니다. 30:17에서도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③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7)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④ 그냥 돌아오게 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8) 하십니다. 이런 말씀을 교훈적으로만 본다면 일상적인 말씀처럼 들릴 수가 있습니다만, 구속사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에 예사 말씀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율법(구약시대)으로는 죄를 정할 뿐, 사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31:34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새 언약과 결부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구약시대)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히 9:15)라고,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성도들의 죄까지를 담당하여 죽으셨음을 말씀합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께서는 다름 아닌 이를 이루어 나가고 계시는 중인 것입니다.
⑤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9상) 하십니다. 이는 신약시대에 있을 시온 성과 같은 교회를 전망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⑥ “그들(열방)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9하) 하십니다. 이는 복음이 이방인들에게까지 전파될 것을 가리킵니다.
⑦ 그러므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집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10-11) 하십니다. 이는 복음이지 의문이 아닙니다. 어찌하여 이토록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것일까요?
⑧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로 돌아와서 처음과 같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11하) 하고 포로를 돌아오게(30:3, 18, 31:8, 16, 32:37, 44, 33:7)하시기 때문에 누리게 되는 즐거움이요 기쁨인 것입니다. 이것이 일차적으로는 바벨론 포로의 귀환을 가리킨다하여도 “일을 행하는 여호와”께서는 이를 예표(豫表)로 하여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사 61:1-3)하게 하시려는 이를 이루려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아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16 -21)고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셋째 단원(14-26) 다윗에게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이른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14-15).
본 단원도 크게 두 부분(14-18, 19-26)으로 나누어집니다. 앞부분에서는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고, 뒷부분은 이 약속의 불변함을 천지의 규례가 변함이 없음에 비하여 보증하시는 내용입니다.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신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본 장은 이를 중심으로 해석되어야만 합니다. 다시 상기시켜드립니다 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서의 중심적인 말씀을 어찌하여 이 시점, 이러한 상황에서 말씀하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상황을 통해서 인류가 처해있는 절망을 보게 하시고, 이들에게 복음을 계시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① 2절에서 “성취하는 하나님”으로 자기를 계시하신 하나님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14) 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이십니다. 무엇을 성취하시는가?
②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15) 하십니다. 이는 일찍이 다윗에게 세워주신 언약(삼하 7:12)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이 약속이 풍부합니다. 23:5에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하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 하십니다.
③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16) 하십니다. 16-18에서는 일으키실 다윗의 자손이 우리를 구원하실 “구주”요(16), 다윗의 위에 앉으실 “왕”(17)이요, 영원한 “제사장”(18)이심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보증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약정과 밤에 대한 나의 약정을 파하여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하 수 있을진대”(20),
①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파하여 그로 그 위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21) 하십니다. 이런 뜻입니다. “낮에 대한 나의 약정과 밤에 대한 나의 약정”(낮이 가면 밤이 오는)을 파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언약도 파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언약의 불변함과 확고함을 보증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② 이점을 시편에서는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을 아니할 것이라”(시 89:35) 하고 말씀합니다.
③ 신약성경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의 “약속과 보증”을 가리켜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히 6:18)이라고 말씀합니다.
④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는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사 55:3)고 보증하십니다. 그래도 부족합니까?
이처럼 약속하시고 예언하신 그리스도가 오셨는데도 믿지를 안는다면 증거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롬 2:5) 때문입니다. 만일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그리고 교회 밖의 모든 자들이, 이 확실한 복음을 전해주는 자가 없어서 듣지를 못하고, 모르기 때문에 믿지를 못하고, 그래서 멸망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그 피 값을 말씀을 맡은 자에게서 찾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짓선지자의 율에 처하여질 것입니다. 이것이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