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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1

계시록 강해 5장 (2)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

작성자유도순|작성시간17.01.29|조회수646 목록 댓글 0

둘째 단원(6-10) 일찍이 죽임을 당한 어린 양

①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6) 합니다. 첫째 단원에서는 주님을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라고 말씀했는데 이는 창세기로부터 선지서까지를 포괄하는 묘사로, 구약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구약성경의 중심(요 5:39)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 단원에서는 “유대 지파의 사자”가 “어린 양”(6, 8, 12)으로 등장을 합니다. 그것도 그냥 어린 양이 아니라, 죽임 당하신 어린 양으로 등장합니다. 형제는 성경에 “어린 양의 죽음”이 언제 어디서 등장하는지 말해줄 수가 있습니까?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한 창세기 4:4절에서 어린 양이 처음으로 희생이 되는데 이것이 성경에 등장하는 첫 제사입니다.


그렇다면 묻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다 해도 창조주 하나님께 어린 양을 잡아 제사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하는 점입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도리어 하나님을 우상시하는 모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다”는 것은 어린 양의 죽음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에 대한 그림자이기 때문

입니다.

이렇게 등장한 “어린 양의 죽음”은 창세기 22장의 아브라함의 번제와,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과, 조석으로 드려진 상번제로 이어져 내려오다가,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 10:5) 하고, 실체이신 그리스도로 성취가 되었고, 이 “어린 양”이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고, 성경 마지막 책 마지막 장인 계시록 22:1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의 구주요, 증언인 것입니다.

 

② 그러므로 5장의 핵심은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6) 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에 있는 것입니다.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6) 한 “죽음”이 무슨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는가를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린 양이 나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7)한, “봉인된 두루마리”와 결부되어 있는 것입니다.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는 표현을 구속사라는 맥락으로 표현을 한다면, “이 두루마리에 기록이 된 ‘빚’(죄 값)을 내가 대신 책임을 지겠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아버지의 원하시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책을 거절하시지 않으시고 “취하셨다” 함은 겟세마네에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하고 순

종하심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대제사장 기도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 하셨습니다.

 

③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8상) 찬양을 합니다. 4장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4:10) 찬양과 경배를 드렸는데, 5장에서는 “어린 양 앞에 엎드려”(8)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찬양의 내용이 무엇인가?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어린 양이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8상) 무엇을 찬양하고 있는가를 주목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9),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10) 합니다.

 

찬양의 내용을 관찰해보십시오.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하고는, 앞으로 전개될 심판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찬양하지 아니하고, 죽임을 당하심과, 그 결과로 우리로 나라와 제사장을 삼아주심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④ 이는 인봉을 떼심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죽으심)와, 그 공로로 가능하여진 결과가 무엇인가를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5장에서만 “어린 양”이 5번, “죽임을 당하심”이 3번이나 강조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도 “죽으심”(6)을 말하고 있으며, 네 생물과 24장로들도 “죽임을 당하사, 피로 사서 나라와 제사장 삼아주심”을 찬양하고 있으며(9-10), 만만이요 천천인 천사들도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12)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도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4:11) 하시고, 어린 양도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5:12) 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대하는 우리들도 “아멘” (14) 할 것밖에는 없습니다.

 

⑤ 찬양과 함께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라”(8하) 합니다. 계시록에서는 성도들의 기도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데 8:4절에서도,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합니다. 이런 뜻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겔 36:36-37),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입니다.

⑥ 아직 중요한 말씀이 남아있습니다. 어린 양이 죽으신 최우선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증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9절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라고 말씀하고 있고, 10절에서는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다”고 말씀합니다. 1:5-6절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드리시고,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라고 〈하나님〉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고난을 자취하신 최우선의 목적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과 영예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다”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는 뜻입니다. 최우선이 하나님 나라건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목적, 인생의 목적, 목회의 목적을 어디에 두어야만 하는 가를 결단케 하는 중요한 진리인 것입니다.

 

⑦ “그들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10하) 합니다. 성경은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들”(벧전 2:9)이라고 말씀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이요, “왕”은 다스리는 권세입니다. 성도들에게는 이 양면성이 있음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는 제사장으로써 은혜에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를 마치고 파송 받을 때에는 왕 적인 권세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온전한 성취는 주님의 재림 후에 되어 질 것입니다만, 이 땅에 사는 동안도 이 세상 임금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을 받는 고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20:4) 한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⑧ 이제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일곱 영이더라”(6하)는 말씀을 상고해야만 하겠습니다. “일곱 영”이란 성령을 가리키는 말씀인데, 이 “일곱 영”을 4:5절에서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하나님과 결부되어 있고, 5:6절에서는 두루마리를 취하시는 어린 양과 결부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왜 그런가? 구원계획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이요, 또한 어린 양과 결부하여 “일곱 영”이라 하심은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 15:26) 하신 대로 주님께서 성취해 놓으신 구속사역을 증언하러 오신 분이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영”(6하)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찍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입니다.

 

셋째 단원(11-14) 천사와 만물의 찬양

①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11) 합니다. 본 단원에서는 “만만이요 천천이라” 한 수많은 천사들의 찬양이 울려 퍼집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12) 합니다.

 

다시 상기시켜드립니다만 천사들이 찬양하는 이유가 인을 떼심을 심판과 결부시켜 찬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과 결부시켜 찬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만일 인을 떼심이 심판과 결부되어 있다면 두루마리를 취하시는 분을 어린 양이라고 부르지 않고 유대 지파의 “사자”(獅子)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본 것도 “일찍이 죽임을 당한 어린 양”(6)이고, 장로들과 생물들도 “일찍이 죽임을 당하신”(9) 어린 양을 찬양하고 있으며, 천사들도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12)을 찬양하고 있는, 모든 초점이 어린 양의 죽음에 모아지고 있음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②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13상),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13하) 합니다.

 

찬양을 4장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5장에서는 “일찍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께 돌렸는데, 마지막 결론부분에 이르러서는 모든 피조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양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4장의 “보좌”와, 5장의 “어린 양”이 나란히 함께 찬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③ 계시록에는 “보좌”가 44회, “어린 양”이 29회나 등장하고 있는데, 이것이 계시록의 두 축을 이루고 있는 중심주제입니다. 뿐만 아니라 “보좌와, 어린 양”은 신구약 성경 전반에 걸쳐 있는 중심축인 것입니다. 원 복음이라 하는 창세기 3:15절에서도 “내가(보좌), 여자의 후손”(어린 양)으로 네 머리를 상하게 하리니 하십니다.

출애굽을 가능하게 한 것도, “여호와께서(보좌),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취할지니”(출 12:, 3) 하십니다. 이사야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보좌)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어린 양)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합니다.

그리고 4장-5장에 성령을 상징하는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 등장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린 양을 통하여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전파하실 이는 "성령"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④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14) 합니다. 5장을 마치기 전에 묻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인봉한 두루마리가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아닌 별개의 두루마리라면 승천하신 주님, 즉 어린 양이 그 인을 떼시는 시기는 언제입니까? 또한 “인, 나팔, 대접” 재앙이 시행되는 시기는 언제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 때부터 이미 “말세”가 시작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말세의 기간을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다가 주님께서 재림하심으로 종말을 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동일한 원리로 “인, 나팔, 대접” 재앙은 주님의 승천으로부터 시작이 되어 종말에 가서 온전히 성취는 것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에서 말씀하는 온갖 재앙들이 “회개”를 촉구하는 것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회개를 촉구하는 재앙은 진행형으로 시행이 되고 있는 중입니다. 이것이 “봉인을 떼기에 합당한 어린 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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