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성경강해 1

로마서 1:1절 바울의 소명과 사명

작성자유도순|작성시간17.12.09|조회수1,177 목록 댓글 0

바울의 소명과 사명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1:1).

 

  본문은 사도 바울의 신분(身分)과 사명(使命)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나 바울은 이런 사람이요” 하고 소개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람들은 성급한 마음으로 서문들을 대강 훑어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귀중한 것을 놓치고 말 것입니다. 서문을 잘 파악한다면 절반은 이해한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로마서도 마찬가지입니다.


① 바울은 붓을 들자 제일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종”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맨 앞에 놓습니다.

㉠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그의 중심에 계셨습니다.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셨습니다. 오매불망 잊을 수 없는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의 고백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하심이라”(빌 1:20), 이것이 로마 지하 감방에서 한 바울의 고백입니다.

 

㉡ 믿는 마음으로 말씀을 드립니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하고 말씀하자, 바울은 벌써 가슴이 저려오고 감격에 복받쳐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항상 그러했습니다.

㉢ 어찌하여 “예수의 종 바울은”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이 두 이름은 떼어 놓아서는 아니 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인 예수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언약하신 그리스도시다”, 이를 증거 하기 위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떠한 박해를 당했는가를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이라면, “예수와, 그리스도”를 떼어놓지는 못할 것입니다.

 

② 사도행전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요 15:26)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행전”입니다.

㉠ 2장에는 베드로의 첫 번 설교가 있는데, “이스라엘 온 집은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리라”(2:36) 하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 5장 42절에서도,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 하니라” 하고 말씀합니다. 조심성 있게 말씀드립니다만 이 점은 누가 시키거나 가르쳐서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고 성경을 상고하다보면 스스로가 이렇게 부르기를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은 두 이름을 결코 떼어 놓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신약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 1:1) 하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족보를 제시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언약하신 “그리스도”이심을 입증(立證)하기 위해서입니다.

㉣ 2천년 전에 이 땅에 태어나셨던 역사적인 인물 “예수”는,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을 통해서 언약하시고, 예언케 하셨던 메시아 곧 그리스도시다, 초대 사도들이 목숨을 내놓고 증거 했던 핵심주제가 이것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남에게 전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라는 말은, 바로 그의 신앙고백(信仰告白)이었던 것입니다.

 

③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 본래 우리들은 죄 값에 팔린 사탄의 종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께서 값을 주고 사심으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입니다.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 또한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子女)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광과 기업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님께서 몸소 본을 보여 주심 같이, 종으로써 섬김의 삶을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분의 종임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④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많은 종들 가운데서 나를 사도로 불러 주셨오”, 이렇게 자신을 소개해 나갑니다.

㉠ 사도(使徒)란 특별한 직무입니다. 누군가 생각하듯이 사도는 계승되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 2장 20절에서,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말씀하신대로, 사도들은 기독교의 터를 놓은 분들입니다. 터를 계속 놓아야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위에 세워나갈 뿐입니다. 사도가 특별한 직분임을 성경이 얼마나 예민하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보십시오.

 

㉡ 누가복음 6장 13절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다” 하고 말씀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 그분의 제자(弟子)들일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열둘만을 택하사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 골로새서 1:1절에서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사이입니다. 그러나 직분(職分)은 구분되었습니다. 바울은 사도였고, 디모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된 바울과 디모데는” 하지 않고, “사도된 바울과 형제(兄弟) 디모데는” 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 형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 사도는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 주의 종들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몇 분만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사도란 특별한 사명, 즉 최초로 교회의 터를 닦으며 유일한 표준이 되는 성경을 완성케 하기 위하여 주께서 친히 세우신 특별한 직무였던 것입니다.

 

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1하)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이것이 “소명”(召命)입니다. 부르실 때에는 목적(目的)이 있기 때문인데,

㉡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것이 바울 사도에게 주어진 “사명”(使命)입니다. 1절 안에는 바울의 신분(身分)과, 소명(召命)과, 사명(使命)이 들어 있습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분과 소명감과 사명감에 투철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려움을 당할 때에 낙심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소명감과 사명감에 투철한 사람은 난관에 봉착을 하게 되면, 자신을 부르시고 사명을 맡겨주신 이가 누구인가를 확신하기 때문에 그분에게 간구합니다. 그에게 청원합니다. 그에게 매달립니다. 그리고 응답해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는 말씀 속에는, “나는 지금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이 로마서를 기록하고 있노라” 하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는 바울의 사신(私信)이 아닙니다.


⑥ 이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고, 말씀하는 순서(順序)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사도”가 먼저가 아닙니다. 먼저는 “종”입니다. 종이 먼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다 그리스도의 종들입니다. 그 많은 종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목사로, 또는 교사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 형제는 누구로부터 소명(召命)을 받았습니까? 형제에게 부여된 사명(使命)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사명을 감당케 하기 위하여, 부르시고 택하여 주셨다는 소명감과 사명감에 투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