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들로 말하면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1:3-4).
우리는 로마서를 대할 때 그 논리성(論理性)을 주목해야만 합니다. 1절에서 “복음을 위하여” 하고 복음이 나오자 2절에서는, “이 복음은” 하고 이내 받고 있습니다. 또한 2절에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라는 말씀이 나오자, 3절에서는 “이 아들로 말하면” 하고 이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이 처럼 로마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논리적인 연속임을 명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① “이 아들로 말하면”(3상), 어떤 분이십니까? “육신(肉身)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합니다.
㉠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가리킵니다. 이점을 요한복음 1: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하고 말씀합니다. 영원 전부터 영광 중에 계시던 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 다윗의 혈통(血統)을 통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 사도가 이 말씀을 하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이 대목은 교리적으로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이서 1:7절에서,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迷惑)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하고 말씀합니다.
㉢ 어찌하여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다윗의 혈통으로 오셔야만 했으며, 이를 부인하는 것이 왜 “적그리스도”인가? 8:3절을 보십시오.
㉮ “율법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어떻게 하셨는가?
㉯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肉身)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게 되면,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죽어주셨다는 대속(代贖)교리가 무너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씀드린다면 죄를 해결하는 데는 이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점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② “성결의 영으로는”(4상) 합니다.
㉠ “성결의 영”이라 함은, 3절에서 “육신으로는” 한 것과 대조(對照)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신성(神性)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과, 하나님의 신성”을 함께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③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認定)되셨으니”(4중) 합니다.
㉠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는 말씀인가요? 천만에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주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나사렛 목수의 집안에 나셨을 때에는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사 53:2), 즉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몰라보았다는 것입니다.
㉡ 이점을 히브리서 2:9절에서는,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고, 만천하에 인정(認定)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④ 사도행전 17장에는 바울이 아덴에서 행한 설교가 있는데,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의 뜻입니다. 그러면 주님에게 되어진 일이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이 되는가를 말씀드려야만 하겠습니다. 요한일서 3: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자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라” 하고 말씀합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장래에 자녀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녀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광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인정(認定)이 되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오시는 날 우리의 낮은 몸도 주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영화될 것입니다.
㉢ 그 날에는 “아 그들은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들이었구나” 하고 인정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세상이 우리를 알지를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인성만을 보고 신성을 몰라 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 낮아지셔서 죽으시고 다시 사심은 자신만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시기”(히 2:10) 위해서였습니다.
㉠ 이 영광스러움을 세상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그 분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4하) 하고 사도는 증거 합니다. 그런대 현대교회 내에는 그노시스주의 자들과는 반대로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신성(神性)을 부인하게 되면, “처녀 탄생, 구속교리, 부활승천, 재림” 등도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현대판 적그리스도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 사도는 주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우리의 주(主)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이름은 우리가 사모할 이름입니다. 불러도, 불러도 또 부르고 싶고, 듣고 또 들어도 흠모할 우리들의 사랑하는 분의 이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께 고백하고, 돌려야할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 사도 바울의 서신서들을 보십시오. 이렇게 부르기를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요. 형제도 그러합니까? “예수와, 그리스도”를 떼어 놓아서는 아니 됩니다. 그 위에 “주”를 더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초대 성도들은 예수가 우리 주, 우리 “큐리오스”가 된다고 고백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관원들은 오직 가이사 만이 주가 된다고 말하라고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허사였습니다.
㉣ 우리의 형제들은 그 고백을 안고 기꺼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을 통해 이 땅에 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동안뿐이었습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그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형제도 “하나님의 자녀”임이 인정이 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이것이 “이 아들로 말하면”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