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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1

로마서 1:10-13절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작성자유도순|작성시간18.01.27|조회수647 목록 댓글 0

하나님의 뜻 안에서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1:10-13).

 

     본문을 통해서 사도 바울의 간절한 기도제목을 듣게 됩니다. 사도는 그 기도제목을 놓고 얼마동안이나 기도했으며, 그 기도는 어떻게 응답이 되었는가를 살펴봄으로 우리들도 기도 응답에 대한 교훈을 받고자하는 것입니다.

 

① 바울의 기도제목은,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10)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 사도는 당시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에 가서 복음전하기를 갈망했습니다. 13절에서도,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하고 말씀합니다.

㉡ 그의 말대로 여러 번 가고자 했으며, 10절의 “어떠하든지” 라는 표현에서 그의 강한 소원(所願)을 감지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어떤 방도로 하든지” 나아갈 좋은 길은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② 11절에서는,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합니다.

㉠ 그러나 그 기도는 응답(應答)되지 아니하였습니다. 지금 현재도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지지하고 있는 바대로 로마서가 고린도에서 기록되었다면, 바울의 심정은 고린도에서 로마로 직행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바울은 지금 구제금을 전달하기 위하여 오히려 반대방향인 예루살렘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기도가 응답되지 아니하고, 번번이 길이 막힌 기간은 얼마 동안이나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 15:22절에 의하면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다”는 말씀을 대하게 됩니다. 여러 해 전부터였습니다.

 

③ 바울이 로마에 가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은 다른 목적에서가 아니라, 순전히 복음(福音)전하기를(15) 원해서였습니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11) 합니다.

㉠ 그리하여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는 목적에서였습니다. 그러하건만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아니하셨는가? 이럴 경우 바울은 어떻게 대처했는가 하는 점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 우리는 생각하기를 바울에게는 우리가 겪는 이런 어려움이 전연 없었을 것이다. 바울 같은 분은 모든 일을 환히 내다보고 있었으며, 구하기만 하면 즉시 응답되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가 쉽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변에 잘못된 무리들이 그렇게 부추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내게 보여주시고, 말씀해 주시며, 무엇이든지 기도하기만 하면 척척 들어 주신다” 하고 입심 좋게 말합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 거짓주장들은 상대적으로 성도들을 낙망케 하고, 비참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본문은 우리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④ 이런 경우 바울은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10절)가 이에 대한 답변입니다.

㉠ “하나님의 뜻 안에서”입니다. 사도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입니다. 자신의 소원은 그렇다 해도,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이다 하고 맡기고 있었습니다.

㉡ 그렇다고 수수방관한 것이 아니라, 로마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인도하셔서, 가장 좋은 열매를 맺게 해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몇 년 동안이나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결코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 그러면서 사도는 기도하기를 중단(中斷)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이 보이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많은 형제들이 기도하다가 낙망하기도 하고, 응답되지 않는 것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⑤ 사도는 여러 번 가고자 했으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13하) 하고 말씀하는데, 길이 어떤 모양으로 막혔는가 하는 점입니다.

㉠ 이는 하나님의 “뜻과, 때”를 어떻게 분별 하는가 하는 것과 결부가 되는 문제입니다. 사도는 이 점에 관해서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아니 합니다만 그의 서신에서,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 5:19),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고후 13:13) 하고 말씀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에, 사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 바울의 로마행이 어떤 모양으로 가로막혀 있었을까? 15:22절 이하의 말씀은 이에 대해 빛을 비춰줍니다.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사도 바울이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에서 복음전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에 주께서 환상 중에,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10) 하고 말씀하신 것만 보아도 그러합니다.

㉢ 사도는 전도의 문이 열려 있는데도 이를 외면한 채, 서둘러 로마로 달려간다는 것은 그의 심령이 허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 편안한 일이 아닙니다. 형제는 마음이 편안치 않은데도 그대로 행하였다가 나중에 후회해 보신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좇아 행함은 아닌 것입니다. 바울은 그토록 고집스럽게 자기주장만을 내세울 만큼 우둔한 종은 아니었습니다.

㉣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2:18절에서도, “나 바울은 한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 하고 말씀합니다. 마음은 간절하였으나 주위 환경과 형편이 허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⑥ 우리는 사도행전 20장에서 성도들이 그토록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그는 체포되었으며,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 하여야 하리라”(행 23:11) 하고, 드디어 로마행 허락(許諾)이 떨어지는 것을 봅니다.

㉡ 사도는 그토록 소망했던 로마에 가게 되었으나 그가 바라던 때에, 그가 바라던 모습으로가 아니라, 쇠사슬에 매인 죄수의 몸으로 가게 됩니다. 왜 그러합니까? 사도행전 27:24절은 말씀합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로마의 황제 가이사(시저)와 문무백관(文武百官)에게 복음을 전케 하기 위하여 이 방법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⑦ 보다 중요한 하나님의 의도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서를 기록하여 후대에 전해주시려는 뜻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 만일 로마에 가는 것을 바울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허락을 하셨다면, 로마서는 기록이 되지 않았을 것이요, 우리는 영광스러움으로 가득 찬 로마서를 갖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혼잡이 되고 변질이 될 것을 아시고, 로마서를 기록케 하셔서 그 시대 시대마다 복음을 보수케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입니다.

㉡ 사도는 로마서 앞부분에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1:10) 했습니다. 사도는 로마서를 끝맺으면서도,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게”(15:32) 해달라고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 사도에게 있어서는 시작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요, 끝도 “하나님의 뜻대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매사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였습니다. 우리도 그러하기를 사모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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