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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1

에베소서 1:20-23절,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알기만 한다면

작성자바람이어라|작성시간15.11.23|조회수2,069 목록 댓글 0

 

 

예언의 성취

 

 

 

이처럼 중요한 주님의 승귀(昇貴)가 임기응변으로 된 일이 아니라 다윗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 110:1)고 예언케 하신 성취였다는 점입니다.

 

시편 110편에서도,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고 말씀하면서,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시 110:1, 5)고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ㄱ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께서는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4-36)고 담대히 증언하게 하셨습니다.

 

ㄴ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히 8:1),

 

ㄷ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고 굳세게 증언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능력은 창조의 능력도, 노아 홍수의 능력도, 홍해를 갈라지게 한 능력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 능력! 그를 지극히 높히사 하나님 오른편에 앉히신 그 능력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 능력이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혀 주셨으며, 또한 완성하실 것입니다.

 

형제여, 이 엄청난 능력이 형제의 심령 안에서 역사하셨다는 점을 믿으십니까? 이제도 형제 안에서 역사하고 계심(골 1:29)을 믿으십니까? 또한 우리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이가 중단 됨이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하십니까?

 

 

 

바울의 의도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21-22),

 

사도는 20-23절을 통해서 그리스도에게 이루어진 5가지 사실을 들어서 몸 된 교회의 영광스러움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도의 의도는, “머리”에 이루어진 사실은 동일하게 “몸”인 교회에도 되어진 사실이라는 점을 확신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저도 다시 한 번 강조해야만 하겠습니다.

 

ㄱ 첫째는,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20상), 동일하게 그 능력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 합니다.

 

ㄴ 둘째는 주님을 살리신 것만이 아니라,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20하), 동일하게 우리도,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합니다.

 

ㄷ 셋째는,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21) 하는데,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개역)란 천사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형제)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히 1:14) 합니다.

 

ㄹ 넷째는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22상) 하는데, 동일하게 머리만이 아니라 몸된 교회도,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 6:2, 3)고 우리의 정체성을 일깨워줍니다.

 

ㅁ 다섯째로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22하) 하는데 그러면 “몸”은 어디 있는가? 사도는 즉각적으로, “교회는 그의 몸이니”(23상) 하고 응답합니다.

 

 

 

연합교리의 신비

 

이점에서 사도의 놀라운 통찰력과 논증을 대하게 되는데, ㄱ 우리를 살리신 능력과 그리스도를 살리신 능력이 동일한 능력이라는 선에서 끝을 맺었다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아직은 남남과 같은 것입니다.

 

ㄴ 그러나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하고, “머리와 몸”의 관계로 말씀함으로,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5:31-32) 한 “한 몸”이라 하는 것입니다.

 

머리와 몸은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머리만 부활 승귀하신 것이 아니라 머리 있는 곳에 몸도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 하십니다. 아무도 나누지를 못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누구도 끊어놓지를 못합니다. 이것이 “머리와, 몸”에 비유한 연합교리의 신비입니다.

 

1장을 마치기 전에 바울 신학의 핵심이라 하는 “그리스도 안에”, 즉 “엔 크리스토”가 1장 안에 몇 번이나 강조되어 있는가를 확인해 보십시오. 10번(1, 3, 4, 6, 7, 9, 10, 12, 13, 15) 이상 강조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전에는 아담 안에 있었습니다. 그가 금단의 열매를 범했을 때 우리는 그의 안에 있었습니다. 범한 것은 아담이었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그의 범죄에 동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고전 1:30),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그리스도 안에 집어 넣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못은 주님의 몸에 박혔으나 우리는 그 때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점을 로마서 6장에서는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못 박히고,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롬 6:6, 8, 4, 8)고 증언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 재위하셨을 때에,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2:6) 하는 놀라운 신비를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승귀케 하심은 그리스도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소망이요, 영광이 되는 말씀입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는 교회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23).

 

23절에는 두 가지 주제가 있는데 첫째는, “교회는 그의 몸”이라는 주제요, 둘째는 “만물을 충만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1 먼저 “교회는 그의 몸”이라는 주제인데, 복음은 임기응변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히 1:1), 즉 언약과 예언과 예표와 모형과 그리자 등으로 믿을 만한 증거를 주신 후에 마지막으로 아들을 통해서 성취하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의 몸”이라는 연합교리도 창세기 2장에서 계시하신 예표에 대한 성취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하십니다. 창세기 1장에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7번이나 등장하는데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미처 모르셨단 말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배필을 지어주는 예표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를 계시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배필을 지어주셨는데 아담은 이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환성을 질렀던 것입니다. 하와는 무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아담의 일부분에 의해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를 “둘”이 되게 하셨다가, “두 몸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니라”고 “하나”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고전 15:45)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새로운 시조가 되시는 영적 아담에게 배필을 주시되 그를 십자가에 깊이 잠들게 하시어 신부인 교회를 탄생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함같이 그리스도의 몸이요,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입니다.

 

2 둘째는 “만물을 충만하게 한다”는 말씀인데, 아담은 하와 없이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하와는 더욱 아담 없이는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고 말씀합니다. 또한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5),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고 말씀합니다.

 

이런 구속사의 넓은 맥락으로,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23)는 말씀을 조명해 보면 ㄱ 첫째로,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에게만 충만한 것이 아니라 몸 된 교회에도 충만하다는 점입니다. 이점을 에베소서와 함께 기록한 골로새서에서는, “그(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充滿)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골 2:9-10)고 말씀합니다.

 

이점을 시편에서는 노래하기를,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시133:2) 합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머리에 부어진 기름이 몸 된 교회에 속해 있는 모든 지체에 까지 흘러 충만해진다는 말씀입니다.

 

 ㄴ 둘째는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은 몸 된 교회 곧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통해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사도는 “교회는 그의 몸이니” 한 다음에 이어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임이 분명하다면 주님은 지체인 형제를 필요로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몸된 교회는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최대한으로 영화롭게 해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묵상해 봅시다.

 

1. 거듭난 능력과 주님의 부활능력이 동일하다는 점에 대해서,

 

2. 주님의 우편 재위가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대해서,

 

3. 아담에게 배필을 지어주신 예표의 구속사적인 의미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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