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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1

로마서 4:13-16절, 믿음으로 되는 후사

작성자유도순|작성시간18.10.06|조회수792 목록 댓글 0

믿음으로 되는 후사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 졌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4:13-16).


본문의 중심주제는 “후사”입니다. “후사”(後嗣)라는 말이 3번(13, 14, 16) 등장합니다. “후사”란, “대(代)를 잇고, 유산을 상속(相續)할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면 이 “후사”라는 주제가 이 시점에서 왜 등장하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워주신 “언약”이 어느 줄기로 계승(繼承)되어 나가느냐 하는 문제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후사”가 되느냐 하는 주제를 구속사라는 맥락에서 보면 대단히 중요한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16하) 하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사”(자손)가 되어야만 구원의 반열에 참여할 수가 있다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합니다.


①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13) 합니다.

㉠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이라 말씀하는데, 하나님께서 언제 이런 “언약”(言約)을 하셨는가?

㉮ 아브라함이 “나는 무자(無子)하오니 나의 상속자(相續者)는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말하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은 너의 후사(後嗣)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 15:2, 4) 하셨습니다.

㉯ 또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말하였을 때에도,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창 17:18, 2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에셀, 이스마엘”은 “후사”가 아니고, “이삭”이 후사라는 말씀입니다.


② 이점을 9장에서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9:7-8) 하고 말씀합니다.

㉠ 그래서 사도는 갈라디아서에서,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갈 4:28) 합니다. 약속의 자녀라야만 후사가 되어 구원의 반열에 참여함을 받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입니까?

㉡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으리라” 하신 후손이란,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될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③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 졌느니라”(14) 합니다. 사도는 14-16절을 통해서 “후사”가 되는 것이 어찌하여 율법의 방법으로는 불가능(不可能)하고, 믿음의 방법으로 만이 가능(可能)한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행위언약, 즉 모세 율법을 주시기 훨씬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여러 번 은혜언약을 세워주셨습니다. 그런데 “후사”가 되는 것이 율법(律法)을 행함으로 되는 것이라면 아브라함에게 세워주신,

㉮ “약속”은 폐하여 지고,

㉯ 아브라함이 “믿으매 의로 여기셨다”(3) 한 “믿음”은 헛것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 이점에 대해서 사도는 갈라디아서에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언약(言約)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律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갈 3:17) 하고 말씀합니다.


④ 제가 깨닫기로는 갈라디아 3:17절의 주제는 대단히 중요한 원리(原理)가 되는 말씀입니다.

㉠ 왜냐하면 구약성경을 해석할 때에 아브라함에게 세워주신 “메시아언약”은 망각하거나 옆으로 밀어놓은 채, 모세 율법만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경을 구속사라는 “선”(線)으로 보지 않고, 교훈이라는 “점”(點)으로만 보기 때문에 오는 맹점입니다.

㉮ 예를 들어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이 불에 타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된 원인을 말할 때에, 모세의 십계명의 1-4계명을 어겼기 때문으로만 보는 것입니다.

㉯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하고 메시아언약을 세워주셨는데 저들은 이 언약을 망각하고는 우상을 통해서 복을 받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메시아언약을 우상과 바꿔치기를 했다가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복과 저주는 메시아언약을 믿느냐 여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⑤ 그러므로 바울은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15) 하고, 쐬기를 박습니다.

㉠ 이 말씀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율법”(律法)을 행함으로 후사(後嗣)가 되는 것이라면, 후사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애를 쓰겠지만,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3:20), 결국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 둘째는 “후사”만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진노”(震怒)를 받게 되리라는 논리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범했으니,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한 그 불쌍한 사람은 율법을 행함으로 후사가 되려다가 그만, “진노”를 받았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⑥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16상)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 16절 안에는 “후사, 은혜, 믿음, 약속”이라는 복음적인 요소가 다 등장합니다. 이를 결합을 하면,

㉮ 후사가 되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 그러므로 무슨 자격이나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이며,

㉰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약속”에 근거한 것이라는 말씀이 됩니다.

㉡ 후사가 되는 것이 무슨 공로나 자격이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받는 방법도 믿음뿐이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어서 후사가 되는 이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⑦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16하) 합니다.

㉠ 중심점은 그 약속을,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에 있습니다. “굳게 하려 하심”이란, “확실히 보장”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만일 후사가 되는 것이 율법으로 되는 것이라면, 그 약속은 굳게 세워진 것이 아니라 그림의 떡이 되고 말지만,

㉡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즉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의롭다함을 얻어서 후사(後嗣)가 될 수 있다니, “확실히 보장”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의 뜻입니다.


⑧ 이처럼 후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것이 아니라면, 후사가 될 수 있는 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요, 혹 있다 가정을 하더라도, 언제 잃게 되고 놓치게 될지 모르는 불안하기 이를 데가 없을 것이며, 그 지위를 끝까지 유지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 이점에서 명심해야할 점은, 인간이란 자력(自力)으로는 구원될 가망도 없고,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후사(後嗣)도 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끝이 아니라, 의롭다함을 얻은 자는 영화롭게 되고, 하나님의 영원한 후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시고, “맹세로 보증”(히 6:17)하여 주셨습니다. 그 약속에 의해, 그 보증에 근거하여, “그 약속은 모든 후손에게 굳게 세워진”, 확실히 보장(保障)된 것입니다.


⑨ 이점에서 본문이 말씀하는 “후사”가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이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 8:17절에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後嗣)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하고 답변해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7절에서는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遺業)을 이를 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후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라고 말씀합니다.

㉡ 이 말씀을 듣는 형제의 심정은 어떠합니까? 일국의 왕의 후사, 재벌의 후사도 누가 될 것이냐 관심의 초점이 모아지는데,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니 어찌 놀라지 아니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행함이나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된다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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