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오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5:12-14).
12절부터는 새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까지 말씀한 것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12절은 “이러므로” 라는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러므로”는 앞에서 말씀한 두 가지와 결부가 되고 있는데
㉠ 첫째는, 인류가 어찌하여 “연약, 죄인, 원수”(6-10)된 상태에 처하게 되었는가와,
㉡ 둘째는 이런 상태에 있는 자들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고, 화목”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 사도는 “이제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3:21) 하는 복음과,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3:23) 한 “죄”, 즉 “죄(罪)와, 은혜”(恩惠)라는 두 가지 주제를 말씀해온 셈입니다. 그러면 인류가 타락하게 된 “죄, 사망, 원수” 됨은 누구로 말미암아 오게 되었으며, 이에 대해 “은혜, 의롭다함, 구원”은 누구로 말미암아 왔는가를 대조(對照)해서 말씀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2-21절은 로마서에 있어서 또 하나의 중추적인 문단입니다.
①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12상) 합니다.
㉠ 먼저 본 문단(12-21)의 전체적인 구조(構造)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표에 표시된 대로 세 단원으로 나누어 파악함이 이해에 도움이 되는데,
㉮ 첫째 단원에서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12) 하고, “죄”(罪)가 들어옵니다.
㉯ 둘째 단원에서는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15) 하고, “은혜”(恩惠)가 들어옵니다. 세상에 침투한 “죄”를 하나님은 “은혜”로 막아주셨다는 말씀입니다.
㉰ 그런데 셋째 단원에서는 “율법이 가입(加入)한 것은”(20) 하고, “율법”(律法)이 들어옵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없으면 죄를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이요, 죄를 모르게 되면 결국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도 모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12-21절의 전체적인 구조(構造)입니다.
② 이점에서 중요한 요점은, “죄가 들어오고”(12상) 하고, “죄”를 의인화(擬人化)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 그러므로 본 문단에서 말하는 “죄”는 권세를 가진 자 사탄(21)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씀이라는 점을 유념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죄가 이 때에 처음으로 “존재”(存在)하게 된 것이 아니라, 존재했던 죄라는 세력이 침입(侵入)을 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틈을 엿보고 있는 강도 같은 죄(罪)에게 아담이 문을 열어줌으로 침입(侵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죄”를 대항하도록 들어오게 한 “은혜”도, “은혜(恩惠)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 한,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죄의 세력은 “퍼지나”, 은혜의 권세는 “더욱 넘친다”는 것입니다.
③ 이런 맥락에서 12-21절 안에는 “한사람”(동의어 포함)이라는 말이 무려 12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대표(代表)를 나타내는 말인데, 첫 대표자인 아담의 범죄와, 새로운 대표자 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대조해서 말씀하려는 것입니다.
㉠ 15절을 보십시오. “한 사람의 범죄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대조(對照)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 사람, 또 다른 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사도의 의중을 분명히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냥 예수 그리스도라 하지 않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는 의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 인류의 조상(祖上)이었던 한 사람, 우리의 최초의 대표자(代表者)였던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온 것 같이, 또 “한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대표자(代表者)가 되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심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새로운 조상(祖上)이 되셨다는 점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④ 14절 끝에는,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表象)이라”는 말이 있는데, 표상이란 모형이라는 뜻입니다. “오실 자”란 메시아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어떻게 모형이 된다는 말씀인가?
㉠ 그것은 대표(代表)성에서 모형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첫 창조에 있어서 최초의 대표자가 되었고, 그리스도는 재창조에 있어서 새로운 대표자가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알든 모르든, 인정을 하든지 안 하든지 간에 두 대표자 중 어느 한 진영에 소속이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⑤ 그러므로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원인(原因)을 나타내는 “말미암아”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본문에는 두 방면의 “말미암아”(12, 15)가 있기 때문입니다.
㉠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의 진영에 연결이 되어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의 진영에 연결이 되어 있든지 둘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3:24절에서 모든 복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에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바 있습니다.
㉡ 먼저 5:1-11절의 “말미암아”를 살펴보겠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1),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 “그로 말미암아” 믿음에 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2) 말씀하고,
㉰ “그로 말미암아” 진노에서 구원을 얻게 되었다(9) 말씀하고,
㉱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다(10) 말씀하고,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느니라(11) 하고 말씀합니다.
㉢ 이상 모든 “말미암아”가 누구와 결부되어 있는지 주목해 보셨습니까? 우리는 아무나 하고 “말미암아”로 접속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말미암아”로 연결이 되어 있어야만 구원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의 “말미암아”가 끊어지게 되면,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4)가 되는 것입니다.
⑥ 다음은 12-21절의 “말미암아”를 살펴보겠는데, 두 방면(方面)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든 사람은 두 “말미암아” 중 어느 하나와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 12절에서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류의 타락은 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듯이, 죄와 사망은 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것입니다. 이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담”입니다.
㉡ 그렇다면 사도는 왜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이렇게 말씀하지 않고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하고 말씀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아주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⑦ 왜냐하면 사도는 지금 인류의 두 대표(代表)성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 아래 있었듯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 아래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 사도가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하고 말했다면 혹자는 생각하기를, 그것은 아담이 죄를 범한 것이지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여길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고 아담에게 대표성(代表性)을 부여했을 때에는, 누구도 피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 형제여, 형제는 어느 “말미암아”에 연결되어 있습니까? 가족들과 친척들, 친구와 이웃들은 어느 “말미암아”에 연결되어 있습니까? 이를 생각한다면 감사하게도 될 것입니다만, 바울처럼 애통하게도 될 것입니다. 형제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에 연결되어 있다면 구원은 보장되어 있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영화되어, 영원토록 그 분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라고 말씀하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