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람을 만드심
“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5하). 사도는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는데 왜냐하면
막힌 담을 허시고 의문에 속한 율법을 폐하셨다는 것은 소극적인 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폐하신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헐어 버리고
폐하였다고 그들이 하나가 될 수가 있는가? 화평이 자동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까? 헐어버리신 것만으로는 불충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상태로는
“유대인은 그냥 유대인이요, 이방인은 그냥 이방인” 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화평의 비결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외형적으로 모이고 합치고 연합하면 그것이 곧 하나되는 것인 양 화평의 개념을
잘못 인식하고있는데 그것은 이합집산(離合集散)일뿐입니다. 수천년 동안 가로막혀
있었고 갈라져서 원수되었던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어떤 방도로 화목하게
하셨는가?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베풀어 유대인같이 되게 하여 하나가
되게한다. 반대로 유대인을 이방인처럼 되게 하여 하나가 되게 한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그것은 물리적인 하나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화평을 이루시는 방식은 각기
다른 둘을, “한 새 사람으로 지어” , 그렇습니다. 새로 지으시는 것입니다.
이점을 갈라디아서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갈 6:15)고 말씀합니다. “새로
지으심”을 받기만 한다면 흑인이냐 백인이냐 배웠느냐 못배웠느냐 가졌느냐
못가졌느냐? 그 밖의 무엇으로도 그리스도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에 새로운 담을
쌓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도 소외를 당하고,
유대인들로부터도 멸시를 당하여 2중적으로 버림을 당했던 이방인들이 “새로
태어남”으로 하나님과도 화목하고 유대인들과도 화평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새로운 창조를 의미합니다. 전에 있었던 것을 조금 개조를 해서 이루신 것이
아닙니다. 이 점에 분명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탄생인
것입니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다 죽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수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다” (골 3:11)고
말씀합니다.
“새로 태어남” 이 얼마나 강조되어 있는가를 에베소서
안에서만 좀 더 상고해 보겠습니다. 2:10절에서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합니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닌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새로 만드신 하나님의
작품이라는것입니다. 4:3절에서는,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합니다. 이 뜻은 하나 되기를 힘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날 때 “하나”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것을 갈라 놓으려고
훼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된 것을 힘써 지키라는 것입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새 사람을 지어” (15)
하나로 만드셨으며 화평
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대교회가 하나되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점은 분명해집니다. 화목과 화평을 가능하게 하는 십자가 복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이 죽고 새로 태어나지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달리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대인은 그냥 유대인이고, 이방인은 그냥 이방인이듯 하나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새 사람의 탄생이 어떻게 가능해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