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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1

로마서 8:10-11절 구원의 완성

작성자유도순|작성시간19.11.16|조회수2,518 목록 댓글 0

죽을 몸도 살리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10-11).

 

  사도는 4절 이하에서, “육신과 영(4), 육신의 일과 영의 일(5),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6) 등을 대조(對照)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이는 성령으로 거듭난 자와, 거듭나지 못한 자의 대조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4-11절 안에는, “영”이라는 말이 무려 10번이나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10) 하고, “몸과, 영”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현재(現在)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11하) 하고,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장래(將來)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모셨다, 즉 거듭났다는 것이 어째서 사활적(死活的)으로 중요한가를 말씀하려는 것입니다.

 

①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10) 합니다.

㉠ 사도는 9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인가? 아닌가, 즉 거듭났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 어찌하여 그다지도 중요하단 말인가?

 

㉡ 이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중요시 하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 내에서 조차도, “거듭난 자와, 거듭나지 못한 자”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이 보여지기 까지 합니다. 불신자들도 떵떵거리며 잘 살아가고 있고, 교회 내에서도 헌금 많이 하고 봉사 잘하는 사람을 알아주기 때문입니다.

 

② 그런데 사도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인 날이 온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 이런 맥락에서,

㉮ 10절은, 그리스도인의 현재(現在)의 모습이고,

㉯ 11절은 그리스도인의 장래(將來)의 모습입니다.

 

③ 현재(現在)의 상태는 어떠한가?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10상), 이것이 거듭난 사람입니다.

㉠ 그런데 거듭난 사람도,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10중)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5:12) 한, 원죄(原罪) 하에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몸”은 죽어가고 있다, 즉 “겉 사람은 후패하여”(고후 4:16)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10절을 다시 관찰해보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하고, 이미 죽은 것처럼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가? 실은 몸은 죄로 인하여 “죽어가고 있는” 중인데도 말입니다. 사도는 10절에서 예리한 대조를 보여 주고 있는 중입니다. “몸과 영, 죄와 의, 죽음과 산 것”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영”은 현재(現在) 이미 살리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와 대조를 시키려니까, “몸”도 현재(現在) 죽은 것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논증을 위해서는 거침이 없는 바울 사도의 대담함에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도 11절에서는, “죽을 몸”이라고 말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④ 그러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10하) 말씀합니다. “몸은 죽을 몸이지만, 영은 산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현재 상태입니다.

㉠ “의(義)를 인하여 산 것”이라한 “의”는, “의의 한 행동”(5:18),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신 대속적인 죽음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영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 반면 불신자란 현재 “몸”은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영”은 하나님에게서 끊어져 있는 상태, 즉 이미 죽어 있는 것이고, 그리스도인들은 “몸”은 죽어가고 있는 것 같으나 “영”은 이미 살리심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을 몸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⑤ 이에 대한 답변이 11절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靈)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靈)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11) 합니다.

 

㉠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하고 말씀합니다. 이는 성도들이 누리게 될 생명의 부활, 즉 영화를 의미합니다.

㉮ 이점을 23절에서는,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말씀하고,

㉯ 30절에서는,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말씀합니다.

㉰ “영화롭게 하실” 그 때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빌 1:6) 한, 구원은 완성(完成)이 되는 것입니다.

 

⑥ 이 “영화”(靈化)에 대한 언급을 좀더 인용을 해야만 하겠습니다.

㉠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이에 확고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니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2-53),

 

㉯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 3:21),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영광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영광의 주님이 다시 나타나시는 날에는 우리도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⑦ 이 “영화”는 아무나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11상) 하는, 조건부(條件附)가 있습니다. 즉 거듭난 사람들만이 참여하게 된다고 조건(條件)을 붙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 그러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누구의 영인가? 9절에서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한,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러면 사도가 어찌하여 “하나님의 영”이라 하지 않고,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라고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 있는 의도가 무엇인가?

 

⑧ 우리의 죽을 몸이, “주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영화(靈化)된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 이점이 얼마나 의도적이고, 아주 세심한 배려로 말씀하고 있는가를 보십시오.

㉮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합니다.

 

㉡ 사도는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形體)와 같이 변(變)케 하시리라”(빌 3:21)는 소망에 확고하게 서게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여, 우리 몸도 주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영화될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까?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 15:12, 20, 51), 사도는 부활 장에서 말씀한 바를 다르게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⑨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결과는, 영의 죽음만이 아니라, 몸의 죽음까지도 가져왔습니다.

㉠ 그런고로 마지막 아담을 통한 구원도, 영의 구원뿐만이 아니라, 몸의 구원(救援)까지도 이루어져야만 온전한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을 가진 자만이 이 영광에 참여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씨가 있는 계란만이 병아리가 될 수 있음과 같은 것입니다. 시작하신 이가 반드시 완성하신다고 말씀합니다.

 

⑩ 형제여,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우리의 영혼을 살려 주신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죽을 몸도 주님의 영광의 몸과 같이 변케 해주신다는 점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까?

㉠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얼마나 마음 설레는 기다림입니까? 우리 속에는 이 신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작은 채송화 꽃씨 속에 아름다운 꽃잎들이 예쁘게 포장되어 간직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소망과 용기를 가지십시오.

 

⑪ 그런데 사도는 지금 독자들인 우리에게 격려와 함께 경계를 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만 합니다.

㉠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모셨다는 말씀,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는 말씀 등은 도무지 꿈만 같은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입니다.

 

㉡ 그러나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9, 11) 한 조건부적인 말씀이나,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한, 무제한적인 표현들은 경계로 다가옵니다.

㉢ 그리고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6),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7),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는 말씀 등은 오늘의 신앙을 점검하게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인의 현재와 장래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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