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닥쳤을 때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8:18).
“고난”(苦難)에 대해서 좀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고난문제가 성도들의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현실적으로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고난이 내게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달리 말씀드리면 고난을 극복하는 성경적인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①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18상) 합니다.
㉠ 고난(苦難)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만 하는가?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 교훈하고 있습니까? 사도는 본문에서, “생각건대”, 즉 생각해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고 덮어놓고, 아무거나 생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는 1장에서 “생각건대” 하는 것이 아니라, 8:18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생각건대” 하고 말씀한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말씀한 영광스러운 교리들,
㉮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3:25)로 세워주신 일,
㉯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3:24) 하신 일,
㉰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5:10)하게 해주신 일,
㉱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5:20) 해주신 일,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게”(8:1) 해주신 일,
㉳ 우리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신 일”(8:3),
㉴ 그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8:2)하여 주신 일,
㉵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8:15) 해주신 일,
㉶ “자녀이면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8:17)가 되게 해주신 일 등을 “생각건대”, 생각해보라는 말씀입니다.
② 그러므로 사도는 아무나 보고 생각해 보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 복음진리를 들은 사람들, 곧 그의 안에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9)을 모신 사람들에게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 로마서가 감탄 할 만큼 논리적인 서신이라는 점을 말씀드린바가 있습니다. “생각건대”란 뜻은, 논리적인 사고(思考)를 거쳐서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셈입니다.
㉡ 나는 환난과 핍박과 고난을 당할 때마다 여러분에게 증거한 복음진리들을 묵상합니다. 그렇게 하노라면 필연적으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하고 선언하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고난을 당하거든 이 말씀들을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나와 같이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③ 그러므로 사도는 고난(苦難)을 다룰 때에 영광(榮光)과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 영광을 먼저 말씀한 후에 고난을 말씀하고 있음을 봅니다.
㉮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5:2) 말씀한 다음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합니다.
㉯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8:17) 하고 말씀합니다.
㉰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에서도,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하고 “고난과, 영광”을 함께 말씀합니다.
㉡ 고난 자체만을 바라보지 말고, 장차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복락들을 “생각할 때”, 현재의 고난에도 낙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게 된다(5:3)는 것입니다.
④ 성경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우리의 “생각”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 전도서 7:14절에서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말씀합니다.
㉡ 베드로도 사도도,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어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합니다. 계속해서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벧후 1:12-13, 15) 하고 생각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 “필요한 때”가 언제이겠습니까? 환난이 닥치고 시련이 몰아쳐서 성도들의 믿음이 약하여지고 흔들릴 때가 아니겠는가? 그럴 때에 내가 순교당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⑤ 옛 언약은 돌비에 기록이 되었으나 새 언약은,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히 10:16, 렘 31:33) 하십니다.
㉠ 그러면 새 언약이 어떤 방도로 성도들의 마음에 기록이 되는가? 설교자가 복음진리를 전해줄 때에 성령께서 듣는 자의 마음에 기록해(고후 3:3)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치명적이고도 심각한 문제는, 고난이 닥쳤을 때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생각하고 싶어도 생각할 말씀이 마음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 이런 상황은 우려가 아니라 현실인 것입니다. 말씀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성령의 검을 갖고 있지 못한 무장해제를 당한 것과 같은 무방비(無防備) 상태인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고난과 시련을 당하게 되니까 백전백패를 당하듯, 낙망하고 주저앉게 되는 것입니다.
⑥ 우선적으로 “필요(必要)한 때”를 대비해서 형제의 마음에 새 언약이 기록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극복할 다른 비결, 지름길은 없습니다.
㉠ 어떤 사람들은 고난이 닥쳤을 때 기적을 바라고 매달립니다. 성경은 기적을 부인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적이 고난을 대처하는 성경적인 방법이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기적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과 섭리가 계실 때에만 나타나는 비상(非常)섭리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기적이란 모든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보편적이고,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 기사이적에 의존하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인 양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대한 해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 등을 오용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의 암이 치유되지 않을 확률이 치유될 확률보다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비상섭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16) 한 불변의 진리까지도 믿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신유은사를 의존했다가 구원까지 잃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⑦ 이제 “고난, 환난, 시련”을 당했을 때에 꼭 명심해야할 점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나”라는 자신의 고난만 보지 말고, 형제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 영예”를 생각하라는 점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욥을,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하고 자랑하셨습니다. 사탄은 즉각적으로,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 1:8, 11) 하고 항변을 했습니다. 그래서 욥이 시험을 받게 된 것입니다.
㉡ 결과는 어찌 되었는가?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찬양을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영광을 돌립니다. 찬양을 받으십시오” 한다고 해서 영광이 돌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사탄의 말대로 욥이 대면하여 하나님을 원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 이런 일이 에덴이라는 낙원(樂園)에서 벌어졌습니다. 욥기 1장이나, 창세기 3장의 구도(構圖)는 “욥과, 아담”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사탄이 대결하는 구도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자랑하셨는가? 인류의 시조가 하나님의 이름에 모독을 돌린 것을 누군가가 회복하여 주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 사탄은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욥은 천상(天上)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런 대결(對決)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형제가 “고난, 환난, 시련”에 직면했을 때에 “하나님을 원망할 것인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게” 할 것인가? 이제까지의 형제는 어느 쪽이었습니까?
㉤ 그러나 욥도 3장에서,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욥이 말을 내어 가로되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 남아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리하였더라면”(욥 3:1-2) 하고, 온전한 승리를 돌리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 대표자의 실패를 온전히 회복하신 분이 둘째 대표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은,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막 1:12) 합니다. 주님은 낙원이 아닌 광야에서 “임의로 먹되”가 아닌, 40일을 주리신 상황에서, 한 가지가 아닌 세 가지 시험을 온전히 이기심으로 첫 시조의 실패를 회복하시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⑧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말을 전해 들으신 주님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위함이라”(요 11:4)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사도는 고린도전서 10:9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위하여 하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순경(順境)에서보다는 역경(逆境)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좋은 것으로 영광을 나타내고, 영광을 돌리기는 쉬습니다.
㉡ 그러나 밤이 어둘 수록 별빛이 영롱하듯이, “고난, 시련, 역경, 가난, 병듦” 등, 누구도 갖기를 원치 아니하는 것들을 통해서 “영광을 나타내고, 영광을 보게 하고, 영광을 돌리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 보게 하고, 돌리게” 하는데 쓰임을 받지 못할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⑨ 그런대 현대교회의 실정은 어떠한가?
㉠ 신분(身分)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후사들이요, 지위(地位)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고, 위치(位置)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리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身分)과 영광스러운 지위(地位)에도 불구하고 조그만 시련과 고난만 닥쳐도 얼마나 쉽게 낙심하고 좌절하며 실의에 빠지곤 합니까? 이렇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통해서 이루어주신 영광스러운 복음진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달리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축복 받으라” 한 기복신앙은 도리어 성도들에게서 “축복”을 빼앗은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 또한 고난에 대비한 훈련과 무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도는 복음을 받아드린 자들을 향해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 하고 미리 대비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도,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딤후 3:1), 즉 네 시대에는 복음을 증거하기가 더욱 어렵게 될 것을 각오하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오늘의 설교는 일곱 색깔 영롱한 무지개 같은 환상만을 주려고 합니다. 그런 설교를 받아먹고 자란 성도들은 고난과 시련에 허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진도 8도 쯤 되는 지진이 일어난다면 즐비한 고층 아파트들이 얼마나 견뎌낼 것인가? 지금 아파트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 한 환난이 닥치게 되면 천만을 헤아린다는 그리스도인들 중 끝까지 견디는 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이렇게 된 원인 중에는 잘못된 전도 방법에도 책임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만사형통하고, 고난 같은 것은 더 이상 겪지 않게 된다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⑩ 형제여, 고난이 닥쳐오거든, “생각건대” 하고, 형제의 마음과 생각에 기록된 약속의 말씀을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 또한 고난이 닥쳐오거든, “비교할 수 없도다”(18하) 한, “고난과, 영광”을 비교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는 “현재와 장래, 고난과 영광”(18)을 비교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17절에서도 “잠시와 영원, 환난과 영광, 경한 것과 중한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18)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