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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1

로마서 9:6-13절 난제에 대한 해답, 약속의 자녀

작성자유도순|작성시간20.04.11|조회수1,564 목록 댓글 0

로마서 9:6-13절 난제에 대한 해답, 약속의 자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9:6-13).

 

 

본문에서 사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이 폐하여 졌단 말이요?” 하는 가상적인 질문을 제기합니다.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다”(4) 하고 말씀했는데, 그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죽였으니 이스라엘에게 세워주셨던 하나님의 약속이 폐하여졌단 말인가?

사도는 주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하신 신학적인 난제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해답은 한마디로,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라”(6)는데 있습니다.

 

① 이에 대해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6상) 하고 답변합니다.

㉠ 자신이 “골육 친척”을 위하여 큰 근심과 고통을 겪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약속이 폐하여졌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방면의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첫째는 메시아 약속이 폐하여지지 않고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뜻과, 둘째는 하나님이 한번하신 선택(選擇)은 폐하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약속과, 선택”의 뜻”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이점이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6하) 하는 말씀에 나타납니다. 이점을 2장에서는,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다 유대인이 아니요,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2:28, 29)이라고 말씀했고, 요한복음에서는 “혈통(血統)으로나 육정(肉情)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요 1:13)이라고 말씀합니다.

 

㉢ 그러니까 “이스라엘이라고 다 참 이스라엘”(요 1:47)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자들이 다 그리스도인은 아니라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전개되고 있는 논리들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적실성이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② 사도는 계속해서,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7상) 하고, 아브라함의 경우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 이스마엘이나 이삭은 같은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7하, 창 21:12)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삭과, 이스마엘”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8), 즉 이삭은 “약속(約束)의 자녀”였고, 이스마엘은 “육신(肉身)의 자녀”라는 점이 다른 것입니다. 이점을 갈라디아서에서는, “계집종에게서는 육체(肉體)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約束)으로 말미암았느니라”(갈 4:23) 하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삭의 후예는 이스라엘이 되었고, 이스마엘의 후예는 지금의 아랍민족이 되어 이제도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③ 그렇다고 이삭의 자손들이 다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하고, 앞의 예보다 더욱 분명한 예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10), 쌍동(雙童)이였습니다.

 

㉠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11) 합니다. 즉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한 사람은 선택(選擇)이 되고 한 사람은 유기(遺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이스마엘과, 이삭”의 경우는 어머니가 다른 “첩의 자식과, 본처의 아들”이라는 신분상 구별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야곱과, 에서”의 경우는 같은 아버지 같은 어머니 소생이요, 더욱이 쌍동이었고, 거기다 에서는 형이고 야곱은 아우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후손은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고, 에서의 후손은 에돔 족속이 되어, 구속사의 줄기에서 떨어져나가 대대로 하나님을 대적하였던 것입니다.

 

④ 그러면 “이삭과 이스마엘, 야곱과 에서”의 대조(對照)를 들어서 말씀하려는 바가 무엇인가?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라”(6)는 말씀을 하려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주목해야 할 말씀이 8절과, 11절입니다.

 

㉮ 8절은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約束)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하고, “약속”이 강조되어 있는데 이 약속(約束)은 “이삭”과 결부되어 있고,

㉯ 11절에서는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하고, “택(擇)하심”이 강조되어 있는데 이는 “야곱”과 결부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삭과, 이스마엘”을 들어서는 “약속의 자녀”만이 참 이스라엘이요, “야곱과, 에서”를 들어서는 “택함 받은 자”만이 참 이스라엘이라는 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⑤ 먼저 8절인데 한 절속에, “육신의 자녀(子女), 하나님의 자녀(子女), 약속의 자녀”(子女) 하고, 세 부류의 자녀(子女)가 등장합니다.

㉠ 이스마엘은 “육신의 자녀”였고, 이삭은 “약속(約束)의 자녀”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느냐 하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약속의 자녀만이 씨로 여기심을 받는 것이며, 그가 곧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 유대인들이 오해했던 점은, “육신의 자녀”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요, “씨”로 여기심을 받는 줄로 착각한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8-9) 하고 책망했던 것입니다.

 

⑥ 다음으로 주목해야할 말씀은 11절입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行爲)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합니다.

 

㉠ 8절에서는 “약속의 자녀”만이 하나님의 자녀라 말씀하고, 11절에서는 “택하신” 자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합니다. 11절 안에는,

㉮ “하나님의 뜻,

㉯ 택하심,

㉰부르심”이 있습니다.

 

㉡ 이는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主權)과 결부되는 것들입니다. 구원계획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구속사라는 맥락으로 보면, “약속의 자녀”란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갈 3:16)를 가리키는 것이고, 나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얻게 될 영적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하고 말씀하는 것이 이를 가리킵니다.

 

⑦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창 13:16),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하신 약속은,

㉠ 1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으로 성취가 되었으나, 궁극적으로는 “영적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하건만 유대인들은 혈통적(血統的)인 이스라엘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줄로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곡해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⑧ 사도는 본 문단을,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13) 하는 말씀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 이는 말라기 1:2절의 인용인데, “야곱과, 에서”는 태어나기도 전인 모태에서부터 갈라졌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 “하나님의 택하심과, 뜻대로”라는 대답 외에는 달리 없는 것입니다.

 

⑨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란 개입할 여지가 전연 없는 것인가? 그렇지가 않습니다.

㉠ 여기 절묘한 짝과 조화(調和)가 있는데,

㉮ 8절에서 강조한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믿음”과 짝을 이루고,

㉯ 11절에서 강조한 “하나님의 택하심은 받아들여야 하는 은혜”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 사도가 1-8장에서 강조한 “믿음”이란,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確信)하였다”는,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화합(히 4:2)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 또한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8:33) 한 “택하심, 의롭다하심”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4) 한 “은혜”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데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과,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 언약의 사자를 믿지 않았고,

㉯ 값없이 주시는 은혜(하나님의 의)를 배척했던 것입니다.

㉣ 요한복음 1:12-13절을 보시겠습니다. 12절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고, “믿음”이 강조되어 있고, 13절에서는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하고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⑩ 사도는 9장 마지막 부분에서,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32) 하고 말씀합니다.

㉠ 그렇다면 본문은 우리들에게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약속의 자녀가 되는 것도 아니요,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경고적인 교훈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 형제여,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다는 것이 최고의 사랑(말 1:2)임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입은 것이 남다른 무슨 선이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록된바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13)의 뜻입니다.

 

㉢ “미워하였다”는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누구를 특별히 미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미워하심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요, 원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무리 가운데서 “사랑하심”을 인하여 형제가 택함을 받은 것이며, 택하심을 받지 못하면 미움 가운데 그대로 유기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택하심을 따라 되는 약속의 자녀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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