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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1

로마서 13:11-14절 지금은 자다가 깰 때입니다

작성자유도순|작성시간20.12.05|조회수1,158 목록 댓글 0

지금은 자다가 깰 때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1-14).

 

본 문단은 13장의 마지막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13장 전체를 조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1-7절에서, 국가에 대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야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 8-10절에서는,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하고 말씀합니다.

㉢ 그런 연후에 본문에서는,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11) 합니다.

어떤 의미문맥인가? 국가와 개인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라는 말씀이 현실(現實) 생활에 관한 것이라면,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는 경계는 내세(來世)를 대비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신앙의 균형(均衡)을 잡아 주기 위해서입니다. 새는 두 날개가 온전해야만 제대로 날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에 충실하면서, 내세를 대비”하는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교회의 중요성과 가정의 귀중성에 대한 균형, 그리스도를 존귀(尊貴)히 여김과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균형, 교리적인 믿음과 실천적인 행함, 칭의와 성화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사도는 현실생활에도 충실해야 되고, 내세에 대한 준비도 철저해야 된다는 균형과 조화를 잡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① 11절은 “또한”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 모범적인 시민노릇 만으로 족한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 3:20), 천국 시민답게 살아야함도 잊어서는 아니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②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합니다.

㉠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시간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는 연대기적으로 흐르는 긴 시간을 의미하는 반면, 카이로스는 특정한 짧은 시기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긴 세월인 크로노스 중에서, 극히 일부인 카이로스를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1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 시기”는 카이로스입니다.

 

③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11하) 합니다.

㉠ 문맥적으로 보면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는 말씀이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만, 종말이란 역사적인 종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個人的)인 종말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개인적인 종말은 곧 역사적인 종말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두 번의 기회(機會)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죽고 나면 세상이 끝장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시간은 언제나 “오늘”입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내일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으며, 그것도 당도해 보면 오늘 일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팍케 됨을 면하라”(히 3:13) 하고 권면합니다.

 

④ 우리에게 주어진 “카이로스”는 오늘의 연속이요, “오늘”이 모아진 것입니다.

㉠ 오늘이 모여 일 주일(週日)이 되고, 한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우리의 여생(餘生)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는 깨달음으로 매일매일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이 말세요,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 형제는 대나무의 한 토막 같은 카이로스를 살아가면서, “세월이 참으로 빠르구나, 시간이 촉박 하구나” 하는 긴박감을 느껴 보지는 않으셨습니까? 사도는 그러한 조급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⑤ 그래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하고, “너희”라고 말한 바울은, “이제 우리 구원이”하고, 자신까지를 포함시켜 “우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잠자듯이 허송세월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다가 깰 때”라는 말은, 따르릉 하고 자명종(自鳴鐘) 시계가 울리는 시점을 의미합니다. 역사의 자명종이 울릴 시각이 벌써 되었다는 것입니다.

 

⑥ 사도는 “자는 것과 깨는 것, 밤과 낮, 어둠과 빛, 벗어야할 것과 입어야 할 것” 등을 대조(對照)해서 말씀합니다.

㉠ 이는 영적인 두 부류(部類)의 상태를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어두움에 속한 것들은,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호색과 쟁투와 시기”(13) 등으로 이런 것 들은 벗어버리라고 말씀합니다.

㉡ 반면 낮에 속한 것들은, “낮에와 같이 단정이 행하고(13상), 빚의 갑옷을 입자”(12하) 합니다.

 

⑦ “이 시기를 알거니와”(11) 한 이 “시기”는,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온”(12상) 여명(黎明)의 시기라는 것입니다.

㉠ 이 시기는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시간, 어둠이 물러가기 전에 마지막 발악을 하는 시간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점을 사도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합니다.

 

⑧ “빛의 갑옷을 입자”(12하) 합니다.

㉠ 그냥 “빛의 옷”이라 하지 않고, “빛의 갑옷”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주목하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이란 흑암의 권세 자들과 싸워야만 하는 “빛의 갑옷”을 입은 무사(武士)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절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14) 합니다.

 

㉮ “빛의 갑옷”과,

㉯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 빛의 갑옷이 전투(戰鬪)복이라고 한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의 옷은,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한 예복(禮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 19장에는, “세마포”를 입은 어린양의 신부(8)와,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는” 하늘 군대(14)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린양의 신부(新婦)이지만, 지금은 “빛의 갑옷”을 입고 영적 전투를 수행해야하는 십자가 군병(軍兵)들인 것입니다.

 

⑨ 본문 말씀은 어거스틴을 회개케 한 성구로 더욱 감명 깊은 말씀이 되었습니다.

㉠ 방탕한 생활과 종교적인 방황으로 인해 깊은 고뇌에 잠겨 있을 때에, “톨레레게, 톨레레게(들고 읽어라)라는 신적인 음성을 듣고 펴서 읽은 곳이 이 구절이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

㉡ 이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어거스틴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히 4:12)하였던 것입니다. “방탕하던 어거스틴”을 벗어 버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 “성 어거스틴”으로 탄생하는데 전환점이 되게 한 말씀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은 자다가 깰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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