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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1

에베소서 2:21절, 연결하여 지어져 감

작성자바람이어라|작성시간15.11.23|조회수1,812 목록 댓글 0

 

 

연결하여 지어져 감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1).
교회의 “터”가 마련이 되고, “모퉁잇돌”이 놓여지자 드디어 벽돌을 쌓듯이, “서로 연결하여 성전이 되어 간다”고 말씀합니다. 벽돌이나 화강암으로 지은 석조건물을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이 “서로 연결하여 지어져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간다”는 것은, 작은 성전인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연결하여 큰 성전, 즉 교회(敎會)라는 공동체가 세워져나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인 것입니다. 이점을 사도 베드로는,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4-5)고 말씀합니다. 구원은 개별적인 역사이나 구원 얻은 자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몸된 교회의 지체요, 연결하여 지어져가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하실 집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
2장 마지막 절은, “너희도” 하고 시작이 되는데 이 “너희”가 누구들인가? 이점에서 사도가 논증하고 있는 점진성의 영광스러움을 주목해보아아야만 합니다.  19절에서,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한 것도 놀라운데,  20절에서는,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말씀하고,  21절에서는, “연결하여 성전이 되어 간다”고 말씀하더니,  22절에서는 드디어,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2장의 결론인데 이 놀라운 전진을 보십시오.
18절에서는,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결론에 이르러서는, “너희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계신 것도 아니요, 심지어 하늘에 계신 것도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라는 것입니다. 이는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듯이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임재하신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우리(교회)는 아버지께 나아가는 은총뿐만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는 특권까지 부여받은 자라는 영광스러움을 명심해야만 합
니다.
실감하기가 어려우리라 생각이 됩니다. 야곱도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놀라워하면서,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창 28:16-17)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 예표가 교회로 성취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지어져 가느니라”고 미래시제로 되어 있으니 온전한 성취는,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계 21:3) 한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완성이 될 것입니다.

 

 

 

교회를 점검하라
2장을 마치기 전에 말씀에 비추어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를 점검해 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주님은 7교회를 향하여 공통적으로,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아노라”(계 2:2, 3) 하십니다. 그러면 “아노라” 하신 주님께서 현대교회를 보실 때, 특히 한국교회를 향해서 무엇이라 말씀하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크게 3가지 면만을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교회가 세워지되,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졌느냐” 하는 점입니다. 어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터라고 하지 않고 사도들의 터라고 하였을까요? 이는 실재적인 말씀으로 교회를 세우되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느냐고 묻고 있는 셈입니다. 만일 “터”가 잘못되었다면 그 위에 건물을 웅장하게 세운다 해도 헛수고가 되고 말것입니다.
둘째로, 모퉁잇돌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잘 연결이 되어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21-22절을 주목해보십시오. “그의 안에서, 주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라고 이점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가!! 만일 모퉁잇돌과 밀착되어 있지 않다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갈 5:4)가 되는 것입니다. 그 예가,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한 라오디게아교회인데, 그들은 주님을 문밖으로 추방을 하고도 알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는, 본문이 말씀하는 대로 성도 상호간의 교제가, “서로 연결이” 되어 나눌 수가 없도록 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한 대로 분열하고,  담을 쌓고 있지는 아니한가 하는 점입니다.
이렇게 진단하노라면 현실의 교회가 주님께서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신 주님의 몸된 교회를 너무나 닮지 않았음을 통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를 향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 2:5, 3:1, 16) 하셨다면 현대교회를 향해서는 무엇이라 말씀할 것인가?
이점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롬 9:27) 하신 “남은 자의 교리”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고 말씀합니다. 명심해야 할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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