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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1

에베소서 3:14-15절, 무릎을 꿇고 비노니

작성자바람이어라|작성시간15.11.23|조회수891 목록 댓글 0

 

 

교회를 위한 사도의 기도

 

 

 

3장 둘째 문단(14-21)은, “교회를 위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사도의 기도를 에베소서의 주제인 “교회론”이라는 맥락으로 보면 이는 마치, “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왕상8:22) 드린 성전 봉헌기도를 연상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1장에서 교회 건설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2장 마지막 절(2:22)에서,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건설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절정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교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한 충만(充滿)입니다. 문단의 주제와 각 단원의 중심점을 결부시켜 대의를 파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속사람이 강건”(첫쩨 단원)하기를 구하고,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하기”(둘째 단원)를 구하고, “하나님
의 영광이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셋째 단원)는 송영을 돌리는 것으로 마치는 것이 대의입니다. 이를 세 단원으로 나누어 상고하겠습니다.

 

 

 

첫째 단원(14-17) 속사람이 강건하기를 구함
둘째 단원(18-19)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구함
셋째 단원(20-21)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 무궁하기를 원함

 


 

 

첫째 단원(14-17) 속 사람이 강건하기를 구함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14-15).
14절은 “이러므로” 하고 시작이 되는데 이를 문맥적으로 보면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한 삽입(2-13)으로 중단이 되었던 1절과 결부되는 접속사입니다. 중심점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한, 기도인데  첫째로,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14)이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도가 이제까지 증언한 의미문맥으로 본다면 이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1:10)한 것과 병행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14절 안에는, “족속과, 아버지”가 함께 등장하는데 “족속”이라는 원어는 아버지라는 말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한 “아버지의 가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족”(2:19), 즉 권속은 지금 하늘과 땅에 있는데 사도는 이를 염두에 두고,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라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에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서서”(계7:9) 찬양하는 장면이 있는데 사도는 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둘째로, “이름을 주신 아버지”(15상)라 하는데 무슨 뜻인가? 형제는, “이름을 주신 아버지”라 하면, 누가 생각이 납니까? 하나님께서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창32:28) 하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피조물”이요, 새로운 이름을 주셨는데 이사야 선지자는,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사 62:2-3)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형제에게 주어진 “새 이름”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사도는 이방인들로 구성된 갈라디아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형제의 이름은 “새 이스라엘” 곧 그리스도인(행 12:26)인 것입니다.

 

무릎을 꿇게 한 동기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15하) 하는데, “아버지와, 무릎을 꿇고”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말같이 들리는데 이런 점에 바울의 경건성이 나타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롬 11:22) 하는데,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갈 때에 최대한의 경외와 경건함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의 통상적인 기도 자세는 “서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옥중 사도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하고, 사도로 하여금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게 한 동기는 무엇이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바울이 “이러므로 내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14) 한 “이러므로”에는 어떤 의미가 함의되어 있는 것일까요?

 

사도는 1장에서 하나님의 택하심, 그리스도의 속량, 성령님의 인치심을 증언하고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행사를 찬미했습니다. 2장에서는,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2:45) 증언하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2)고 역시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곧 삼위 하나님의 행사를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3장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 즉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고 진술하고는, “이러므로” 하고 기도를 드리는 문맥인 것입니다.

 

이제까지 진술한 모든 것은 전적으로 성삼위 하나님께서 행해주신, “은혜의 영광, 은혜의 풍성”인 것입니다. 이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가 사도로 하여금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게 하였을 것입니다.
사도는 이제까지 증언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도를 통해서 적용(適用)을 시키고 있는데 절정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9) 한 “충만”입니다. 성도들이, 그리고 교회가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하여 지기만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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