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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1

누가복음 파노라마

작성자유도순|작성시간26.06.10|조회수23 목록 댓글 0

누구복음 한 번에 설교하기

 

누가복음은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1:1),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루어진 사실”이 무엇인가? 누가가 이제부터 증언하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ㆍ수난ㆍ부활ㆍ승천” 등이 임기응변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구약성경을 통해서 미리 “언약ㆍ예언ㆍ예표ㆍ모형” 등으로 계신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사실”이라는 점을 증언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여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1:4) 합니다.

이렇게 시작한 누가복음은 마지막 장에 이르러 부활하신 주님께서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律法)과 선지자(先知者)의 글과 시편(詩篇)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24:44)하신 “이루어짐”으로 마치는 구조(構造)로 되어 있는 것이 누구복음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루어진 사실이라 하는가? “㉮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 그리하여 ㉰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24:46-47)된 대로 이루어졌다 합니다.

“모세의 율법, 선지자의 글, 시편”이란 구약성경 전체(全體)를 가리키는 표현인데 주님은 성경을 구속사라는 맥락으로 설명을 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였을 때에 제자들의 눈이 밝아지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 하더냐”(24:31,32) 했습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24:48) 하심은 주님이 하신 방법대로 너희도 증언하라는 의미라 할 것입니다.

 

공관복음서는 공통적으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 15, 막 8:29, 눅 9:20)고 물으신 주님의 질문을 중간쯤에 배치(配置)하고 있습니다. 이를 분기점으로 하여 전반부는 ㉮ “예수가 누구신가”를 증언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후반부는, ㉯ 그 분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행해주셨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서의 두 주제요, 복음서는 이 두 주제를 증언하기 위해서 기록이 된 것입니다.

 

① 누가복음은 1장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1:31)고 전합니다. 다음에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라”(1:32-33)고, 그분이 바로 다윗에게 언약하신(삼하 7:12-16) 영원한 왕이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 마리아도 찬가에서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1:55) 하고 아브라함에게 세워주신 언약의 성취임을 찬양하고,

㉡ 사가랴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1:67-73) 하고,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언약하신 메시아이심을 거듭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서 전반부의 주제입니다.

 

② 그리고 복음서 후반부의 주제(主題)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지를 증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주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에,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9:22), 즉 왜 오셔야만 했는지 그 사명을 비로소 밝히셨는데 이 속량(贖良)을 통해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 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서 후반부의 주제입니다.

 

③ 누가복음에는 “인자”라는 말이 스물여섯 번이나 등장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인자(人子)로 오셨습니다.

㉠ 그래서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는 인류의 시조 아담까지 소급해 올라가고 있음을 봅니다. 또한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은 물론 다른 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년기와 소년기의 기사까지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인자로 오셨음을 철두철미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 어찌하여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자(人子), 즉 사람의 아들로 부각시켜 주고 있는가? 한 마디로 우리의 대표자가 되기 위해 오셨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자녀들은 혈과 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과 육(인자)을 함께 지니심은”(히 2:14) 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인자로 오신 것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기” 위해서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그리스도는 “인자” 곧 사람의 아들로 오신 것입니다.

 

④ 그러므로 누가복음을 통해 계시된 그리스도는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같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압당한 자의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내셨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는 거지 나사로의 위로받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비난을 무릅쓰고 소외당한 삭개오의 집에 유하러 들어가셨습니다.

㉡ 또 십자가에서는 불법 자와 동류가 되어 함께 못 박히시어 회개한 강도의 친구가 되어주셨고, 실의에 잠겨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의 길동무가 되어주시기도 했습니다.

 

⑤ 그래서 누가복음에는 이방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줌이 합당치 않다”하신 말씀이나,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책망하신 기록 등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12:19)한 부자(富者)를 어리석은 자라 하시고,

㉡ 호화로이 연락하던 부자가 음부에 던져졌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신 예수님은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 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7:34)하는 비난을 받으셨고 결국에는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22:37)는 예언이 응하여졌다합니다.

㉢ 실로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兄弟)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 하셨다”(히 2:11)한 대로 미천한 우리들의 “형제”가 되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명심할 점은, 예수님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다”(히 4:15)는 점입니다.

 

⑥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모든 조건을 갖추신 우리의 형제로 오신 것입니다.

㉠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4:18). 주님은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십니다. 이는 영적 희년( jubilee)이 도래하였음을 선포하는 기쁜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⑦ 이런 맥락에서 누가복음의 요절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한 19:10절이라 할 것입니다. 이점이 잃은 양의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 탕자의 비유(15장) 등을 통해서 강조되어 있습니다.

㉠ 그러면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첫 창조는 말씀만으로 가능하였으나 재창조는 이미 저질러 놓은 죄를 청산해야만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우리의 죄에 대한 대속제물로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는 벌써 9:51절에서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올라가시는(9:51,53, 13:22,33-34, 17:11, 18:31, 19:11,28,41) 발걸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⑧ 왜 “굳게 결심”하셨다 하는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러 올라가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는 주님의 발걸음을 결코 놓치지 않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누가복음을 상고할 때에 이 말씀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하신 말씀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증언해만 주님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고 적실성이 있게 됩니다.

㉠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12:35-36)하신 말씀은, 우리의 대속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죽으시기 위해서 올라가시면서,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12:40)고 벌써 재림(再臨)하실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12:42-43), 이는 특히 목회자들에게 하신 분부인데 이 말씀을 대할 때도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하신 말씀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받을 때에 더욱 적실성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그래서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9:11-13)한 “므나 비유”를 말씀하시게 된 것입니다.

 

⑨ 이점을 19장에 등장하는 삭개오의 기사를 통해서 좀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간 것입니까? 아니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준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신 “나” 곧 예수님인 것입니다.

㉠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도 상종하지 않는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유하러 들어가셨다는 이 사실보다 더 놀라운 일은 달리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시내 산에 강림하셨을 때 사방에는 경계를 정하라 하셨습니다. 지성소에 이르는 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이는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고후 6:14)한 함께 하실 수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⑩ 그런데 성자 하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유하러 들어가시는 것이 어떻게 가능해진 것인가? ㉮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려 “인자”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 우리들의 죄 값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중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을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그런데 형제여, 이는 삭개오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님이 나의 마음에, 내 가정에 오심이 어떻게 가능하여졌는가?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 그러므로 문맥을 보면 삭개오 사건 앞에는 ㉮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 그들은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18:31-34)한 말씀이 있고, ㉯ 뒤에는“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19:28)한 말씀이 놓여 있는 것입니다.

 

⑪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주님은 무엇을 하셨는가? “내가 고난(苦難)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踰越)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하셨습니다. ㉮ 첫 번 유월절은 출애굽의 밤이었고, 최후만찬의 밤은 ㉯ 1500년 동안 예표로 지킨 마지막 유월절이요, 그림자가 실체로 개혁(改革)이 되는 첫 성찬(聖餐)의 밤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言約)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22:15, 19-20) 하고, 자신을 주셨던 것입니다.

㉠ 형제여,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히1:3)이신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자(人子)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까지 오셨다는 것보다 더 경이로운 사건은 달리는 없습니다.

㉡ 그 이름이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사 9:6)이신 분이 우리의 죄 값을 담당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대신 죽으셨다는 십자가 사건보다 더 놀라운 일은 창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는 것입니다.

 

⑫ 이를 믿고 고백하는 자라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까? 3가지로 요약하겠습니다.

㉮ 첫째는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다 한 변화된 삶입니다.

㉯ 둘째는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24:48)한 바른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 셋째는 누가복음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2:15)한 그리스도의 초림을 기다리다가 만난 사람들로 시작하고 있는데 약속하신 주님의 재림(再臨)을 기다리면서 주님께서 이루어놓으신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 구원받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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