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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1

요한복음 파노라마

작성자유도순|작성시간26.06.22|조회수22 목록 댓글 0

요한복음 한 번에 설교하기

 

본문 : 20:30-31절

20: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주제 : 너희로 믿고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강론

모든 책은 기록목적, 즉 말씀하려는 중심주제가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더욱 그러합니다. 주님은 성경의 중심주제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중에 요한복음은 기록목적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는 복음서입니다. 20:31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고 말씀합니다.

두 마디로 되어 있는데 ㉠ 첫째 기록모적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즉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증언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했다고 말씀합니다. ㉡ 둘째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즉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기록했노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행해주셨는가?” 이 두 주제는 요한복음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이 두 주제(主題)가 복음서의 공통적인 기록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서를 설교할 때에 이 두 주제에 입각해서 증언해야만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대로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됩니다.

 

① 먼저 “예수님이 누구신가?”하는 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점을 요한은 1:1절, 14절, 18절, 세절을 통해서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 1: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합니다.

㉡ 1:14절,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합니다.

㉢ 1:18절,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 내셨느니라”(1:18)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합니다. 한마디로 요약을 하면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임기응변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선지서를 통해서 증거를 얻은 것입니다. 이사야 9:6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이러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라고 말하자 주님은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14:8-9)하시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10:30),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8:58)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르는 것은 빌립만이 아닙니다. 신학박사라 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② 이런 맥락에서 요한복음에 계시된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것도 아니요, 인류의 시조 아담으로부터 나신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족보가 있는 것도 아니요, 태어나신 출생지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요한복음이 얼마나 깨닫기를 원하고 있는가를 보십시오.

㉠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1:19)고 묻습니다. 그들은 혹시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신가 해서 물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그 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온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라고 증언합니다.

㉡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4:10)고 말씀하십니다.

㉢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어있던 38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고 걸어갈 때에,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5:12)고 묻습니다.

㉣ 나면서 소경 되었던 자에게,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9:17)고 묻습니다.

㉤ 주님께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하시자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12:34)고 묻습니다.

이처럼 요한복음의 첫 번째 기록목적은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예수가 누구신가”를 증언하기 위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을 읽는 자와 듣는 자는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는 주님의 질문에 우선적으로 확고한 대답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③ 다음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두 번째 목적인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는 말씀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핵심은 “생명을 얻게 하려 함”에 있습니다. 그러면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31절 안에는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하고 “믿음”이 2번이나 강조되어 있습니다.

㉠ 첫째는 “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는 “믿음”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3:36),

㉯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5:24),

㉰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6:47)하십니다.

 

㉡ 그러면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무엇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점을 세례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1:29)이라고 증언합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성경 어디에 근거해서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언했을까요?

레위기 16:21절입니다.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합니다.

그리하여 염소는 백성의 “모든 죄와 불의”를 지고 멀리멀리 가다가다 죽게 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에 근거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증언했던 것입니다. 이점을 시편 103:12절에서는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고 진술합니다. 이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믿을만한 근거와 증거가 확실한 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19:30)고 선언하심으로 모세 때부터 1500년 동안이나 죄로 말미암아 막혀 있던 휘장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10:9절입니다. “열어주셨기” 때문에 “내가 문이다”하시면서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열어주신 것만이 아닙니다. 14:6절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하십니다. 이점을 히브리서 10:20절에서는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라”(히 10:20)합니다. 주님께서 이루어놓으신 십자가복음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7절에서는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합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대신 죽어줄 친구가 있습니까? 죽음은 고사하고 간경화로 죽게 되었을 때에 간을 떼어줄 자가 있습니까? 바울은 “우리가 생각하건대”(고후 5:14)하고 우리의 생각에 호소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의 죄를 위하여 나대신 죽어주셨다는 복음을 듣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④ 12:27절을 보겠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요한복음은 모든 초점(焦點)을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 맞추고 있음을 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때”에 죄로 말미암아 막혔던 휘장이 열려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 가나 혼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마리아의 말에,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2:4)하십니다.

㉡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자신을 나타내라는 말에,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7:6)하십니다.

㉢ 연보 궤 앞에서 말씀하셨으나 잡는 자가 없음은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8:20)합니다.

㉣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12:27)하십니다.

㉤ 13:1절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합니다.

㉥ 드디어 17:1절에서는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하시고,

㉦ 19:30절에서는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심으로 오신 목적인 구속사역을 완수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이루어놓으신 구속(救贖)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영생을 얻었고, 영생을 가졌다”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를 위해서 이때에 오셨던 것입니다.

 

⑤ 요한복음에는 7가지 표적(表迹)과, 7번의 자기 선언(宣言)이 있습니다. 요한은 주님께서 행하신 많은 기사이적 중에서 7가지만을 선별적으로 기록하면서 이를 7번의 자기 선언과 조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사이적이라 하지 않고 “표적”(表迹)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 주님은 “내가 생명의 떡이다”(6:35)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선언은 5병 2어로 5천명을 먹이신 후에 하신 선언입니다. 그리고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6:27)하십니다.

㉡ “내가 세상의 빛이라”(9:5,8:12)고 선언하십니다. 이 선언은 나면서부터 소경 된 자를 보게 하신 표적 후에 주어짐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11:25)고 선언하십니다. 이 선언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표적과 함께 주어졌습니다. 주님은 죽으신 것이 끝이 아닙니다. 부활하심으로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딤후 1:10) “부활”을 드러내셨던 것입니다.

㉣ “나는 선한 목자라”(10:11)고 선언하십니다. 이 선언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겔 34:23)하신 예언의 성취자로 오셨음을 의미합니다.

㉤ “나는 양의 문이라”(10:7)고 선언하십니다. 이 선언은 1500년 동안 막혔던 휘장을 열어주심으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14:6)고 선언하십니다. 주님은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히 10:20)을 개통시켜주셨습니다. 이 “길”은 “진리”로 이루어주신 것이요, “생명”으로 인도해주는 길입니다.

㉦ “내가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15:5)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를 믿는 자는 주님과 떼어놓을 수도 없고, 떨어질 수도 없음을 나타냅니다.

 

⑥ 또한 요한복음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주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하신 말씀이 무려 25번이나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왜 이렇게 강조하셨을까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더디 믿기 때문입니다. 몇 곳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3:3절,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하십니다.

㉡ 5:24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하십니다. 어찌하여 심판에 이르지 않게 되는가? 주님께서 우리 대신 심판을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 6:53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하십니다. 이 말씀을 구속사라는 맥락으로 보게 되면 참으로 감사와 감격을 금할 수 없는 말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서는 양이나 소의 “피를 먹지 말라”고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 피를 마시라 그래야 생명이 있느니라”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피를 먹지 말라”고 금하시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레위기 17: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속죄하게 하였나니”하십니다. 구약시대는 짐승의 피로 주어졌으나 이는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자기 아들의 피를 우리에게 주셔서 죄를 속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십니까? 그러면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방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십자가복음을 받아먹는 것을 가리킵니다.

㉣ 16:20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하십니다. “애통”하다가 어찌하여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하시는가?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죽으시고 다시 사심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이 성취되었기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⑦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에는 없는 중요한 대목이 있는데 14장-16장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유언과 같은 말씀이기 때문에 “다락방 강화”라 합니다. 다락방 강화에 기둥과 같은 두 주제가 있는데 승천하시는 주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주고 가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 첫째는 14:16절입니다.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하십니다. 성령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14:16절, 15:26절, 16:7절, 세 장에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4:17절에서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하십니다.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주고 가셨습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여러분의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하루에 몇 번이나 묵상하십니까?

㉡ 또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무엇을 주고 가셨는가? 14:13절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하고 “이름”을 주고 가셨습니다. 이점이 14:13절, 15:16절, 16:24절, 세 장에 다 같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하루에 주님의 이름으로 몇 번이나 기도하십니까? 그리고 주고 가신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욕을 돌리고 있습니까?

 

이제 마지막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은 앞부분에서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통해서 이루어주신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지막 장인 21:15절을 보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네가 나를 믿느냐”하시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를 3번이나 물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천하보다 귀한 구원을 오직 믿음으로 받은 자라면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必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록된 말씀이 선포될 때는 지금 여기 있는 우리 각자에게 물으시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신 주님의 물으심에 여러분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이점을 8장에 등장하는 간음현장에서 끌려온 여인과 결부시켜 생각해보는 것이 실감이 날 것입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돌에 맞아죽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멸망을 당할 자들입니다.

주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8:11)하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죽이라 한 현행범을 어떻게 정죄하지 않으신단 말입니까? 주님이 대신 정죄를 받으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이 여인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무엇이라 대답할 것 같습니까? 누가복음 7장에는 죄를 지은 한 여자가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붓는”(눅 7:38) 장면이 있습니다. 이 여인이 바로 그 여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은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7)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처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15:13)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어주셨습니다. 그런 후에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합당한 응답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주님은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21:15), 이것이 “너희로 믿고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한 요한복음입니다.

 

우리의 귀한 것 모두 주님께 바치어도 그 귀한 생명을 주신 주 은혜 못 갚겠네

하늘의 영광을 버려 우리를 구했으니 너희는 마음을 다해 주님을 섬기어라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 구원의 갑주를 입고 끝까지 싸워라 (57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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