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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1

에베소서 4:12절, 선물을 주신 3가지 목적

작성자유도순|작성시간15.12.28|조회수1,382 목록 댓글 0

선물로 주신 세가지 목적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12).
“목사와 교사” 직분을 교회에 주신 목적으로 3가지를 꼽고 있는데 이점이 중요합니다.  첫째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라 합니다. 우선적으로 유념할 점은 “성도”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도란 1:13절에서 말씀한,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한 중생한 자들이라는 점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성도”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났다는 점을 나타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고, “거듭남”의 중요성을 언급합니다. 태어나야만 젖도 먹이고 양육할 것이 아닙니까? 교회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는 산부인과 의원이며 이들을 양육하며 훈련시키는 사관학교 인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를 온전하게 한다”는 뜻이 무엇인가? 모든 사람은 연령이나 지위에 상관이 없이 거듭날 때에 어린 아이로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온전하게 한다는 뜻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완전무결한 자라는 뜻은 아닙니다.
“온전”의 원뜻은 “위골된 뼈를 맞춘다”고 할 때 사용된 말이라 합니다. 어릴적에 팔굽이 빠져본 경험이 있으신지요. 그 상태로는 봉사의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온전하게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나 성숙하지 못한 성도가 교회를 세우는 일을 담당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를 온전케 하며”의 의미입니다.


봉사의 일을 하게 함
다음으로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합니다. “봉사”하면 교회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것쯤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런 뜻이 전연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봉사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광의적인 섬김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전 3:6)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각기 받은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즉 봉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 태어난 성도를 양육하고 훈련하는 일, 그리하여 몸을 세우는 일, 이것이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봉사의 일”인 것입니다. 이런 봉사는 온전케 된 자, 즉 성숙된 그리스도인들만이 담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온전케 되지 못한 자가 교사가 되고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봉사의 일을 하기는 커녕 일만 만드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주님께서 3년동안 친히 본을 보이시고 명하신 방법이 이 방법입니다. 이 방법 말고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면 주님은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더디고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는 먼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담당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합니다. 피로 사신 교회에 선물로 주신 직분들은 하나님의 권속으로 태어난 갓난 아이와 같은 성도들을 양육하고 훈련을 시키고, 6장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 십자가 군병으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승천하시면서 교회에 가르치는 직분자들을 선물로 주고 가신 목적과, 목회서신에서 언급하는 성경을 주신 목적,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7) 한 말씀을 대조해 보십시오. 목적이 일치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는 무엇을 말씀해주는가?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은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이 가능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목회서신에서,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딤전5:17)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은사를 말씀하는 순서를 보면,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 등의 순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를 뒤집어 나타나는 은사를 더욱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능력과 병고침과 방언 등이 매력적이라 해도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은 가르치는 사역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직분은 존경을 받아 마땅합니다. 반면 가르치는 직분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는 경각심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사활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불과 12명을 데리시고 3년동안이나 동거 동행하시면서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승천하신 개선장군이신 그리스도께서 형제에게도 은혜의 선물을 주셨음을 믿으십니까? 이렇게 하신 것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섬기며 수종들며 헌신하라고 주신 달란트임을 확신하십니까? 형제는 금년 한 해도 분명히 성장했습니까? 악한 사탄의 궤계와 대항하여 싸울만큼 훈련되었습니까? 배우든지 가르치든지 하십시오. 이것이 “하나 속의 다양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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