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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1

에베소서 4:22-24절 옛 사람의 신학적 의미와 교훈적 의미

작성자유도순|작성시간16.01.30|조회수809 목록 댓글 0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


사도의 논리성에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는데, “옛 사람”이란 아담 안에, 즉 원죄하에 있던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동안 매어 종노릇하던 것이 “옛 사람”입니다. 사도는 “옛 사람을 죽이라” 하지 않고 “벗어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에베소 성도들은 이미,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1:13) 한대로, 옛 사람은 벌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며 함께 장사 지낸바 된 자들(롬6:6)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옛 사람을 죽이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본질상 진노의 자녀”(2:3)였던 옛 사람은 벌써 오래전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옛 사람을 죽이라” 한다면 자신이 증언한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죽이라” 하지 않고, “벗어 버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는 의미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들이란 옛 사람은 이미 죽었고 새 사람이 된 자들이나 아직도 “구습(舊習)을 따르는 옛 사람”의 습관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를 벗어버리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벗어 버리라”는 옷은 행실(창35:2)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에 비해 고대 사회에서는 신분에 따라 입는 옷이 엄격하게 구별되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사탄의 노예였던 옛 사람 때 입었던 누더기 같은 옷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자녀요, 왕같은 제사장의 신분에 어울리는 새 사람의 옷을 입으라는 권면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신분은 바뀌었는데도 행실은 옛 사람의 습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 한,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벗어버리라고 촉구합니다.


그렇다면 “벗어 버리는 일과, 입어야 하는 일”은 누가 행해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행해주시기를 기다려야 하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바로 내가 결단해야 하는 일임을 잊지 마십시오. 바울 자신도,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란 말씀 다음에 나옵니다. 이는 권투용어인데, 바울이 싸워야 할 대상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며 자신을 KO시키기까지 쳐서 쓰러뜨린다는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곡해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기도요, 금식이요, 철야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을 하면서 결단을 미루고 머뭇거리는 도피처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한 다음에, 금식한 다음에 무엇이 따라야 합니까? 벗어버리는 실천입니다. 끊어 버리는 결단입니다. 그리고 신분에 어울리는 새 옷을 입는 일입니다. 벗어 버리십시오. 그리고 새 사람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23-24)고 촉구하는데 이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 한 22절과 반대되는 대조입니다. 사도는 두 부류의 사람, 즉 “옛 사람과, 새 사
람”을 대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2:12), 이것이 “옛 사람”이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2:19),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3:6), 이것이 “새 사람”의 신분이요, 지위입니다. 그렇다면 구습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신분과 지위에 상응하는 거룩한 옷을 입는 것이 마땅 하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는 벗어 버리라고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신분이 바뀌면 옷도 바꿔 입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군인은 군복을 입어야 하나, 그가 예편이 되면 민간 복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수는 죄수복을 입지만 그가 사면 되면 제일 먼저 옷을 바꿔 입게 됩니다.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란, 중생으로만이 가능하여지는 것인데 “심령의 새로움”이라 함은 밖으로 나타나는 행동보다 내면적인 변화가 우선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점을 로마서에서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12:2)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따라”, 이를 5:1절에서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는데, 핵심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라는 진술에 있습니다.


여기 두 방면의 요점이 나타나는데,  첫째는 우리를 “새 사람”으로 지으신 방식인데, “의, 진리”로 행하여주셨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곧 이 때에(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3:26), 즉 우리의 구원은 자기 아들의 대속을 통해서 행해주신 정정당당한 방식으로 행해주셨다는 것이 “의와 진리”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점을 시편에서는,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며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무궁토록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시111:7-8)고 말씀합니다.
둘째는 우리를 지으신 목적인데,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 즉 “거룩”을 위해서 지으셨다 합니다. 이점을 1장에서는,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1:4-5) 라고 말씀합니다. 이점을 명심하는 자만이 “새 사람을 입으라” 한 성화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성화까지도 오직 복음의 능력으로만이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내면적으로만 “거듭난” 새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외적으로도 “ 새 사람을 입은”, 즉 변하여 새 사람이 된 몰라보게 달라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옛 누더기를 벗어 버리고 신분에 어울리는 제일 좋은 옷을 입으십시오. 멋이 있어 보일 것입니다.


묵상해 봅시다
1. “오직 너희는” 한 오직의 의미에 대해서,
2. “진리가 예수 안에 있다” 한 구속사적인 의도에 대해서,
3. 옛 사람의 “죽음과, 벗어 버림”의 차이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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