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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1

에베소서 1:7-12절, 피로 말미암은 속량 (수정)

작성자바람이어라|작성시간15.11.23|조회수842 목록 댓글 0

 

 

 

 

셋째 단원(7-12) 성자 하나님의 행사를 찬송함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7).

 

셋째 단원(7-12)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진술하며 찬양하는 내용인데, 핵심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7)을 받았다 는데 있습니다. 단원의 주제와 각 절의 중심점을 연결시켜 대의를 파락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행사의 핵심은 속량”(7)에 있는데, “그리스도의 속량”은 하나님의 “비밀”(9)에 속한 것이며, “그리스도의 속량”의 목적은 “통일되게 하심”(10)에 있고, “그리스도의 속량”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다”(11)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셋째 단원의 대의입니다.

 

첫 말씀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7),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바울 신학을 한마디로 요약을 한다면 “엔 크리스토, 즉 그리스도 안에서”라 할 수가 있습니다. 에베소서에만 30회 정도 등장합니다. “엔 크리스토”, 이는 실로 엄청난 무게와 의미를 함축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4)고 말씀합니다. 이를 풀어서 말씀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

 

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셨는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시면서 이들의 죄 값을 대신 청산(구속)하라고 명하신 셈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피로 말미암아”라 한 “피”는,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키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라 하지 않고, “그의 피로 말미암아” 한 의도가 무엇인가? 2:13절에도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고 말씀하고, 로마서 3:25절에서도,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화목제물로 세우셨다”고 사도는 일관되게 “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리심, 즉 죽으심은 구약의 제물들이 피를 흘린, 즉 희생 제사의 온전한 성취라는 통일성을 드러내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점이 출애굽과 대 속죄일의 규례를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출 12:7)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출 12:13) 하십니다.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피”는, 이 집에는 죽음이 있었다는 표징(標徵)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집에서도 죽음은 있었습니다. 다만 유월절 어린 양이 대신 죽었을 뿐입니다.

 

대 속죄일에도 대제사장은,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레16:15) 하십니다. 어찌하여 “속죄소 위와 앞에” 뿌리라 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에 속죄소 “위와, 앞에” 뿌려진 “피”를 통해서 보신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3장에는 4가지 “아래”가 있는데, “율법 아래, 죄 아래, 심판 아래”(롬 3:19, 9, 19)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율법을 통해서 보신다면 모든 사람은 “죄 아래, 심판 아래” 있게 되는데, 그러나 “피”를 통해서 보시게 되면,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롬 6:14), 즉 “피 아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는 구약에서 보여주신 예표에 대한 성취(成就)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7)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죄 값에 팔려 사탄의 노예로 전락한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방도는 죄값을 대신 담당하는 “속량”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이를 알았기에 사도 베드로도 그리스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벧전 1:2)이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의 문설주와 인방에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진 자들인 것입니다. 이 피가 표적이 되기 때문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요 5:24) 하시는 것입니다. 이점을 7절에서는 “은혜의 풍성”이라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7), 즉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가능하여졌다는 점을 잊어서도 놓쳐서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복음서는, “예수가 누구신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행해주셨는가”, 하는 두 주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고백을 들으신 후에 제자들에게,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마 16:16, 20)고 경고(警告)하셨다 합니다. 그러면 “예수”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언약하신 “그리스도시라”는 점도 말하지 말라 하시면 증인 된 우리는 무엇을 증언하라는 말씀인가? 주님의 의도를,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셨다”(마 16:21)는 데서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두 주제를 함께 증언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두 주제를 분리하면 복음도 구원도 성립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감히 말씀드립니다만 “그리스도”에게만은 구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기”(요 12:24) 때문입니다. “십자가”에도 구원이 없습니다. 십자가는 살인 강도를 처형한 사형형틀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았기에 바울 사도는,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했다”(고전 1:22-23)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사이적(이는 예수가 누구신가에 대한 표적)을 전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여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 라고 단언합니다.

 

사도는 로마서에서도,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롬 5:6, 8, 10) 하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7) 속에 함의된 뜻입니다.  이상의 말씀은 오늘의 설교를 검증하게 합니다.

 

 이점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즉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다”(7)는 말씀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1:5, 4:16), 즉 사랑의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하심과 동시에 죄는 심판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이 두 속성을 동시에 충족시켜 드린것이 십자가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첫 창조는 말씀만으로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재 창조에 있어서는 첫째로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하신 법령(法令)을 변경할 수가 없었고, 그러므로 둘째는 죄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가 대신 감당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점을 사도는,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5-26)고 말씀합니다. 주목해 보셨습니까? “하나님도 의로우시고 우리도 의롭다 하시는” 길은 자기 아들을 대속제물로 세우시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을 받았다”는 뜻이요, “은혜의 풍성함”(7)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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