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18).
그렇다면 특수한 뜻은 어떻게 분별할 수가 있는가? 그 비결이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18)는 말씀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는 4장에서 권면하는 중간에 돌발적으로,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4:30)고 말씀했는데, 5장에서도 권면하는 중간에 돌발적이다 싶게,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지”(4:1) 않으면 성령은 근심하게 되고, 우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기”(5:2) 위해서 성령의 충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의미부터 생각해보아야만 하겠습니다.
문제는 “성령충만”에 대해 논란과 이설이 많이 있다는 점입입니다. 첫 번째 견해는 본문의 성령충만을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의 충만과 같은 체험적인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로 불로” 하면서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외칩니다.
두 번째 견해는,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다”(고전12:13)는 거듭남과 같은 뜻으로 보고 오순절은 반복되지 않는다고 체험적인 주장을 경계하는 해석입니다.
세 번째 견해는 본문의 성령충만이 충전(充電)의 개념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이 성령에 의해 지배를 받아 성령의 소욕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저는 세 번째 견해에 입각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령 충만 말씀 충만
첫째 이유로는 에베소서와 동시에 기록하여 두기고를 통해서 전달된 골로새서에 등장하는 병행귀절을 볼 때 그러합니다. 골로새서 3:16-17절과, 에베소서 5:18-19절을 대조해서 사도의 의도를 파악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17)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18-20 )
에베소서의 “성령 충만”이, 골로새서에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와 병행하고 있음을 대하게 됩니다. 성령충만은 말씀 충만과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새 언약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히 8:10) 한 “마음”에 기록을 하십니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마음에 기록이 된 “말씀”을 생각나게 하심으로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것입니다.
둘째로, 문맥적으로 보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4:14,15) 했습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4:22, 23) 합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5:1, 10)고 권면합니다. 이는 마음과 생각이 성령에 의해 지배를 받아 성령의 소욕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근접문맥으로 볼 때 더욱 분명한데,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라,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라(15),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16),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17),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18상), 이런 문맥에서 “성
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18하)고 권면하고 있다면 이는 어느 한 순간에 주어지는 체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이 현재 수동태인데 이는,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6) 한, 계속적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결단하고 힘써 추구해야 할 것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충만 곧 말씀으로 충만하여졌다면 특수한 뜻을 몰라 방황하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도움을 주는 말씀이 있는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에게 특수한 문제에 관해 질문해 왔으나 사도는,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하고 의견(意見)을 말합니다. 그런 후에,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전 7:25, 40), 즉 자신의 뜻이 주의 뜻과 같으리라 합니다.
마음과 생각에 기록된 새언약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마 13:19), 이것이 문제입니다. 설교가 소쿠리에 물붓기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계속적으로 힘써야 할 일은 성도들의 마음과 생각에 새 언약 곧 복음이 기록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사도 요한은,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4)고 말씀하고 사도 바울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6:17)고 권면합니다.
사도는 지금 에베소 성도들이 “20세 이상으로 싸움을 나갈만한” 영적으로 청년들이 되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기를 열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뜻인 것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을 근심시켜 드리기는커녕, 주님을 기쁘시게 할것이 무엇인가 사모하는 사람,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 분별력을 행사하며 생활하는 사람은 그 속에 주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여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힘쓰지는 아니하고 한탕을 꿈꾸는 투기꾼들처럼 어떤 갑작스런 체험만을 바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특별하신 은혜가 분명히 있습니다만, 본문의 뜻은 계속되는, “아내들이여, 남편들아, 자녀들아, 또 아비들아”고 권함과 같이 각계 각층의 그리스도인들이 성숙하고 균형 잡힌 삶, 성령께서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시는 삶, 그리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라는 권면이라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분명하고 확실한 일반적인 뜻을 먼저 추구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개인적인 특수한 뜻을 몰라 방황하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일반적인 뜻은 따르지 않고 특수한 뜻만을 알려고만 한다면 지금보다는 심판 날에 더욱 당황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술취하지 말라
이런 맥락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18) 한 말씀도 문자적으로 술에 취하지 말라는 의미로만 여겨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뜻도 배제할 이유는 없지만 술을 입에 대지도 않은 그리스도인들도 술에 취한 듯이 방탕하게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 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딤전 5:13), 이렇게 규모 없이 사는 사람들이 술에 취한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데살로니가교회에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살후 3:10), 바로 이런 사람들이 술취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탕자는,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눅 15:13)했다 하십니다. 불의 한 청지기는,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눅 16:1) 하십니다. 제자인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주님의 소유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며, 허랑 방탕하게 낭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시간(時間)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16)고 경계한 것입니다. 술취한 사람처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뻥튀기 인생처럼 살아가지 말고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채우라, 이것이 성령충만의 삶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