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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1

에베소서 6:14-16, 의의 호심경,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작성자유도순|작성시간16.08.20|조회수1,998 목록 댓글 0

의의 호심경
둘째로,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14하) 합니다. 호심경은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심장을 보호하는 흉배를 가리킵니다. 그러면 16절에는 대적이 쏘아대는 “불 화살”이 있는데 심장을 겨누고 쏘아대는 불화살을 막아낼 수 있는 “의의 호심경”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대적의 불 화살을 막아 낼 호심경도 우리의 의가 아니라,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롬 8:33) 한 칭의 외에 달리는 생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점에서도 호심경을 “의로운 삶”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칭의와 의로운 삶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가능하다고 타협적으로 말하기도합니다. 이런 입장이 무난한 듯이 여겨지지만 복음 전도자라면 이를 마땅히 거절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의로운 삶”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신 칭의(稱義)가 어떻게 해서 가능해졌는가 하는 점과,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는 자력구원의 불가능성 때문입니다.
“의의 호심경”을 의로운 삶으로 보는 견해는 물론이거니와, 둘이 다 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드린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한 구속교리의 절대성을 희석(稀釋)시키고,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갈 2:16) 한,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자력구원의 불가능성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만,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11) 한 전신갑주는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대속을 통하여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의”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심장이 뛰고 있는 가슴부분은 사람의 양심과 감정이 자리잡고 있는 좌소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통하여 우리를 정죄한 사탄은 또한 양심(良心)을 통해서 고발하고 정죄합니다. 신실한 주의 종들이 이를 견뎌내지 못해서 좌절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를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롬 8:33-34) 하는 칭의뿐인 것입니다.
루터가 “그 교회가 서 있는 교회냐 넘어지는 교회냐의 여부는 칭의 교리에 서 있는 여부에 달렸다” 함과 같이, 서 있는 병사와 넘어지는 병사의 여부는 칭의의 호심경을 붙였느냐에 달였다고 말하는 것은 진리인 것입니다. 제가 사탄의 대적을 받을 때마다 붙들고 벌떡 일어날 수 있었던 말씀은,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한 오직 은혜였던 것입니다. 


복음의 신
사도는 세째로,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15) 합니다. 로마 군인이 강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그 군화에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병사에게 있어서 신발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미끄러지지 않는 스파이크를 신은 선수와 고무신을 신은 사람이 경주하는 광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는 군인이 신어야 할 “신”, 즉 군화를 복음으로 적용을 시킵니다.
그렇다면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점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항상 갖추고 있으라”는 뜻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만, 이런 해석은 유익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문제는,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11)고 촉구하는 사도의 명령이 이런 뜻인가 하는 점입니다.
사도는 지금 “복음을 전하라”는 “전도”를 말씀하는 문맥이 아니라, 어떤 무장을 해야 “마귀의 간계를 대적”할 수 있는가를 말씀하는 중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가 설치해 놓은 장애물, 즉 철조망, 지뢰 같은 것, 다시 말하면 환난과 시련을 만났을 때에 어떤 신을 신어야 안전한가를 말씀하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복음의 신이란 무엇일까요?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하는,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이보다 더 튼튼하고 안전한 신이란 달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평안의 복음”이라 하는가? “평안”은 염려와 대조되는 것으로 복음은,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후 4:8) 한 평안을 주기 때문입니다. 군사는 두려워하고 낙심할 경우를 많이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 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3-25),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평안의 복음”으로 무장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영적으로 하면 지뢰밭과 같아서 맨발 상태는 물론, “축복, 교훈, 자기계발” 같은 신은 안전하지가 못합니다. 사도는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너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여 주신 튼튼한 복음의 신으로 무장을 하라 그래야만 마귀가 설치해 놓은 뾰족뾰족한 장애물에 상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만이 안전을 보장해줍니다.


믿음의 방패
넷째로,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라”(16)고 말씀합니다. 이 믿음은 구원을 받는 믿음이 아니라 대적의 불화살을 막아내는 믿음, 즉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5:8-9) 한 믿음입니다.
누가복음 8:22절 이하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에 모신 채 항해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주님은 곤하여 잠이 드셨고 마침 광풍이 휘몰아쳐 침몰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고 주님을 깨웠습니다. 이때 주님은,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셨습니다.
“믿음이란 이런 때를 대비하여 있는 것이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얼른 믿음을 꺼내어 그 믿음으로 막으라”고 말씀하신 셈입니다. 악한 자는 보이지 않는데 숨어서 쉬지 않고 불화살을 쏘아댑니다. 잠언7:23절에,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방
패가 없으면 이와 같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쏘아대는 모든 불화살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기도할 때 화살이 날아옵니다. 기도에 집중하려 해도 마음이 혼란하고 꽉막힌 것같은 것을 경험해 보신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연속 방송극을 볼 때는 눈이 초롱초롱하다가도 설교를 들을 때는 혼미하여 좁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욕의 화살을 쏘아대기도 합니다. 의심의 화살, 두려움의 화살, 그것은 글자 그대로 “모든 불화살”입니다. 이를 막아낼 수 있는 것은 믿음뿐입니다.
믿음이 어떻게 이 일을 해내는가? 믿음 자체가 이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믿느냐? 무엇을 믿느냐 하는 대상과 내용과 결부가 되는데, 믿음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반응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롬 4:18-21) 합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무엇을 믿었는가?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방패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독자를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 어떻게 순종할 수가 있었는가? “믿음”으로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믿었는가? 바울은 무엇을 믿고 순교할 수가 있었는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히 11:19) 한 믿음입니다.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할 수 있는 비결은 불변의 언약을 믿는 “믿음의 방패”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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