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이 되게 하심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2) 합니다.
12절은 7절로부터 시작 된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결론인데,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하심이라” 합니다. 성부의 사역을 말씀하는 문단(3-6)의 결론도,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6)고 “찬송”으로 끝을 맺은 사도는 성자의 사역을 말씀하는 결론에서도,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2)고 찬양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의해보면 6절에서는, “찬양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성도들에게 촉구하는 반면 12절에서는,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표현에 변화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 다르게 말씀하고 있으며 그 의도가 무엇일까요? 6절은 “은혜의 영광”과 결부가 되어 있어서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자” 했으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한 11절은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으니 찬송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이란 2:10절의 표현대로 하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2:10) 한 하나님의 작품(作品)이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작품”인 우리는 만드신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를 빛내드리는 “찬송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제품이 불양하다면 그 회사 명예에 손상을 입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주님은 상상수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말씀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목회서신에서,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딛 2:10) 합니다.
사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하나님의 기업이며, 영광이요, 찬송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은,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표현보다 더욱 적극적인 의미로 우리로 도전하게 하는 표현인 것입니다.
메시야 예언이 두드러진 이사야서에는,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사49:18)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해 드리기 위한 장식품이라 말씀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하심”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업이 된 성도들에게 주어진 고귀한 영예와 기대하시는바 막중한 책임을 각성해야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