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에게 말한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 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11:13-24).
본문은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니”(13상) 하고 시작이 됩니다. 그러므로 본 문단은 유대인의 구원문제를
다루다가,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이 구원 얻은 이방인들에게 하는 경계의 말씀입니다. 유대인은 버림을 당하고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었으나, 그 구원의
뿌리가 어디로 말미암았는가를 설명함으로,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 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20-21) 하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①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13상) 하고 시작합니다.
㉠ 사도는 10:1절에서 “형제들아” 하고 부르고, 25절에서도 “형제들아” 합니다. 그런데 “이방인인 너희”라는 표현은 애정(愛情)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냉정해지고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임에 틀림없습니다.
㉡ “우리가 주 안에서는 형제이나, 혈통을 말한다면 나는 유대인이고 너희는 이방인이 아니냐”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 이방인들이 받은 구원의 근원을 캐 보면 그 뿌리가 선민 이스라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말씀하려는 것입니다.
②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13) 합니다.
㉠ “이방인의 사도”라는 직분 때문에 바울은 참으로 형용할 수 없는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광스럽게 여긴다” 하고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가능한 말입니다.
㉮ 첫째로 자신은 동족 유대인의 구원문제에 대해 포기하거나 단념한 것이 아니요, 이방인을 전도하므로,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는”(14) 욕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둘째로 하나님의 뜻은 유대인의 벽을 넘어, “저(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엡 2:18)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셋째로 그리하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한, 우주적인 교회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③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14) 합니다.
㉠ 사도 바울의 동족에 대한 애정과 애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음을 엿보게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의 동족에 대한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시지 않는다는 믿음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점이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라는 말에 나타납니다. 그리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14하) 하고, 말씀합니다. 몇 명이라도 구원하려는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④ 그러면서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15) 합니다.
㉠ 이 말은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가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12하)에 대한 다른 표현입니다. 유념할 점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 된 자를 가리켜,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겔 37:3) 하신 말씀을 연상하게 합니다. 당시도 유대인들이 메시아언약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다가 “마른 뼈”와 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 하니라”(16)
합니다.
㉠ 민수기 15:17-20절에 보면,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하나님께 거제로 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처음 익은 것”을 거제로 드리게 되면 드려지는 제물은 물론이요, 나머지도 다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 “처음 익은 곡식 가루나, 뿌리”는,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 하신 이스라엘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선민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은 족장(族長)들 곧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택함을 받아 “처음 익은 곡식”처럼 하나님께 드려졌기 때문에, 그 후손들인 이스라엘도 거룩하다는 원리를 펴고 있는 것입니다.
⑥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17) 합니다.
㉠ 이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려는 바는 첫째로,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18) 하는, 정체(正體)성에 대한 경계입니다.
㉡ “자긍”이란 우월감에 사로잡혀 우쭐대거나 무슨 공로라도 있는 양 자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니(13상),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18)임을 잊지 말라고 경계합니다.
㉢ 사도는 이스라엘을 “참감람나무”로, 이방인들을 “돌감람나무”라는 대조적인 비유를 들어 설명을 합니다. 1:18절 이하에서 진술한 이방인들의 죄 가운데서 종교적인 죄는 우상숭배요, 도덕적인 죄 중에 두드러진 죄는 음란임을 보았습니다. 이방인들의 신앙적인 뿌리는 우상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신앙적인 뿌리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이 뿌리가 너희를 보전하고 있느니만큼 자긍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⑦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19-20상) 하고, 일단 인정을 하면서,
㉠ 그러나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 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20하-21) 하고 경계합니다.
⑧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22상) 합니다.
㉠ 두 번째 경계는, “하나님의 인자(仁慈)와 엄위(嚴威)에 대한” 경계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두 가지 속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자는, 사랑”의 속성을, “엄위는, 공의”의 속성을 나타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인자”입니다.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엡 3:6)가 되었다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인자”(仁慈) 때문입니다.
㉡ 그런데 거짓된 인간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인자와 오래 참으심에 대해 멸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속담에 “오냐오냐 하니까 상투 끝까지 오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도는 2:4절에서,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합니다. 시편 50:21절에서는,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하고 말씀합니다.
㉢ 다음은 “하나님의 엄위”인데,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악한 인간은 “하나님의 엄위”(嚴威)에 대해서는 더욱 멸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엄위”에 대한 설교를 들을 수 있단 말인가? 사도는 고린도후서 5:11절에서,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져”(히 10:31) 합니다. 이를 알았기에 사도는,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20) 하는 것입니다.
⑨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22하-23) 하고 경고합니다.
㉠ “저희(유대인)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23-24) 합니다.
㉡ 사도는 끝까지 “원 가지”라 한 이스라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23)을 바울은 믿었습니다. 돌감람나무의 가지인 이방인들이 참감람나무에 접붙임 받았다면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24) 합니다.
⑩ “본성을 거스려 좋은 나무에 접붙임을 얻었다”(24중)는 말씀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 이방인의 “본성”(本性)은 우상숭배와, 음란이었습니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벧전 4:3) 합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요 15:1) 하신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얻은 우리가 어떤 열매를 맺어야 마땅하겠습니까?
㉡ 본 문단에서도 사도는, “너희와, 너”를 구분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체를 말할 때에는,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22) 하고 “너희”라고 말씀하다가도, 결정적으로 적용을 시키는 마단에서는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21하),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22하)하고, 가슴이 뜨끔하도록 “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형제여, 돌감람나무 가지였던 우리가 참감람나무 가지에 접붙임 받게 됨을 감사하십시다.
㉮ 결코 자긍하지 맙시다(18).
㉯ 높은 마음을 품지 맙시다(20).
㉰ 하나님의 인자와 함께 엄위하심도 잊지 마십시다.
㉣ 형제의 가정에 믿음의 뿌리는 누구입니까? 우리의 가정도 믿음의 뿌리가 있는 가문이 되어야겠다는 깨달음이 더욱 절실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