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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

롬3:2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작성자바람이어라|작성시간15.12.02|조회수944 목록 댓글 0

 구속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3-24).

본문은 크게 둘로 나누어집니다.
㉠ 23절은 하나님의 의가 왜 필요하게 되었는가를 말씀하고 있고,
㉡ 24절은 하나님께서 의롭지도 못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신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여졌는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나타난 의는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온 인류에게 왜 하나님의 의가 필요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의롭지도 못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신다는 이 엄청난 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가? 본문은 이점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의가 인류에게 왜 필요하게 되었는가를 상고해 보겠습니다.

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榮光)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래서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모든 사람이 죄(罪)를 범하였으매” 하고, 과거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죄는 다윗이,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한 “원죄”(原罪) 하에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아담 하와는 범죄 하자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그 후손들은 태어날 때부터 분리된 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부릅니다.

㉡ 5:12절에서도,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罪)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하고 말씀합니다. 아담의 범죄는 개인 자격으로가 아니라, 온 인류의 대표자로서의 범죄였던 것입니다. 아담 이후로 온 인류는 “죄 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3:9). 물론 자기 자신의 행위로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자는 없습니다.

② “하나님의 영광(榮光)에 이르지 못하더니” 합니다.
㉠ 첫째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영광스러운 지위를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 둘째로 하나님이 계신 영광에도 이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광에 이르지 못하면 흑암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인류에게 “하나님의 의”는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의 뜻입니다.

③ 다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인간들에게 주신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可能)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라고 말씀합니다.
㉠ “구속”(救贖)이란, 원래 노예의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하게 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 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23) 한 대로, 아담의 후예들은 다 죄 값으로 팔린 노예와 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고”
(히 2:15) 있는 처지입니다. 인간 편에서는 절망적입니다.
㉡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 값으로 대신 내어 주신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 2:6절에서는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속전(贖錢)으로 주셨으니”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내가 너희에게 의의 옷을 줄 터이니 받아 입으라”
하신 것이 아닙니다.
㉢ 첫 창조 때에는 말씀만으로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재창조시에는 말씀만으로는 불가능 합니다. 이미 저질러놓은 죄 값을 누군가가 청산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속”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④ 그러면 “구속”, 즉 죄 값을 누구에게 지불하였단 말인가? 태초에 하나님은 인류의 시조에게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하셨습니다. 이것이 법이요, 호세아서에서는 “언약”(호 6:7)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 “법, 언약”을 철회하실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다니엘서에 있습니다. 다리오 왕은 충신 다니엘을 사랑했습니다. 그리하여 사자의 밥이 되게 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이 세운 금령과 법도는 변개”(단 6:15) 할 수가 없어서 법대로 집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금령(禁令)을 변개(變改)하실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를 주시기 원하셔도 하나님의 공의(公義)가 용납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 또한 호세아서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얼마나 은혜로우신가 하는 것을 예표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선지자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 음부가 되어 팔려간 것을,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값을 지불하고(호 3:1-2) 다시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명하십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의 뜻입니다.

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 예표로 보여주신 유월절의 밤을 상기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출 12:22) 하십니다. 피가 뿌려진 대문 안에만 구원이 있었습니다.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주어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⑥ “하나님의 은혜”(恩惠)라고 말씀합니다. “은혜”란 무가치한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 그러므로 성도들이 은혜 받기를 원하십니까?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통해서 행해주실 일들이 “언약, 예언, 예표, 모형” 등으로 계시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언약하신 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먼저, 그리고 더 많이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듣고 믿으면 은혜, 곧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행해야 할 일은 윤리요, 교훈이지 은혜가 아닙니다.

⑦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4하), 즉 “하나님의 의”는 값없이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값을 다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값을 지불해야만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의”라면,
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지구가 몽땅 내 것이라 해도 그 값을 지불하기에는 부족할 것입니다. “값없이”란 말이 무엇과 짝을 이루고 있는가? “구속”입니다. 우리는 값없이 받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독생자를 대속제물로 내어 주신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값 없이 받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 이점을 에베소서 1:7절에서도,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은혜의 영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곧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 내어 주시고야 가능했다는 말씀입니다. 이곳에서도 “거저주심과,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가 결부가 되어 있습니다.
㉢ 이에 대한 예언적인 말씀이 시편에는 있습니다. “자기의 재물(財物)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시 49:6-8)
하십니다.

⑧ 끝으로 중요한 요점을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23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榮光)에 이르지 못하더니” 했으면,
㉠ 다음절에서는 이렇게 해서 “영광(榮光)에 이르게 되었다” 하고 말씀해야만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까? 우리도 그것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24절에는 “영광에 이르게 되었다”는 말씀 대신에,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느니라” 하고 말씀합니다. 왜 그러한지 형제는 아시겠습니까?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즉 “하나님의 의”의 옷을 입은 자만이 하나님의 영광(榮光)에 나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 오 주님! 그 의의 옷을 입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앞에 담대함과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의의 옷을 우리에게 입혀주심을 찬양하나이다. 감사하나이다.

⑨ 다시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입니다. 모든 복음은, 이 “말미암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를 놓치게 되면,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갈 5:4)가 된다는 점을 명심하십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3-2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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