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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

로마서 6:19절, 예화 사용에 대해서

작성자바람이어라|작성시간15.12.02|조회수596 목록 댓글 0

 

예화를 사용하여 말함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6:19).

 


 


 

가장 좋은 교수법은 “반복”이라고 말합니다. 본문 19절의 내용은, 12-13절을 반복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는, “지체”라는 말이 2번 등장하면서, “전(前)과 이제, 불법과 의”가 대조가 되어있는 구조입니다. 그러니까 “너희 지체(肢體)를 죄에게 드리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라” 한 12-13절과 같은 내용인 것입니다.

 

사도는 “원리”를 말씀한 다음에 이를 적용을 시키는데 12-13절의 권면은, 11절의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 지어다” 한 원리(原理)에 입각한 권면이고, 19절 이하의 권면은, 18절에서 말씀한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한 원리에 입각한 권면입니다. 그런데 유념하고자 하는 점은,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19상) 하고, 예화(例話)를 사용하는 이유를 진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화 사용에 대한 유익한 점과, 주의할 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①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19상) 합니다.

 

㉠ 무슨 예화를 들고 있는가? 16-20절 안에는 “종”이라는 말이 8번이나 등장합니다. 사도는 “종의 예화”(例話)를 들어서 성결의 교리를 설명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사도가 예화를 사용하면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하고, 주의(注意)를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 갈라디아서 3:15절에서도,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합니다. 어떤 의도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사도는 마치 예화 사용에 대한 양해라도 구하듯이 말씀하고 있는데, 이점이 궁금한 것입니다.

 

㉡ 사도의 의중을 알기 위해서는 고린도전서 2장으로 가보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는 자신은 복음을 전할 때에,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않았다”는 점을 1절, 4절, 13절에서 거듭 거듭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사도가 본문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서 부득불 “사람의 예대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사람의 예대로” 말씀한다고 하는가?

 


 

②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19상) 라고 말씀합니다.

 

㉠ 이는 신체(身體)가 약하기 때문이라는 뜻도 아니요, 그렇다고 무식(無識)하기 때문이라는 말은 더욱 아닙니다. 사도가 고린도교회에 한 말,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전 3:2), 즉 영적으로 연약하기 때문에 예화를 들어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 히브리서 5:11절에서는,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이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의 뜻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심령이 거듭날 때에는 누구를 막론하고 영적 어린아이 상태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하는 것입니다.

 


 

③ 사도는 분명히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즉 건강하다면 안 했을 것인데 예화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 이는 지식적인 이해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분별력이 연약하다는 의미입니다. 지식적으로 뛰어난 사람도 영적으로 어두울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로마서를 처음 받았던 로마 성도들에 비해서 현대교회 성도들의 영성이 어떠하리라고 여겨지십니까? 말할 것도 없이 교육수준이나 문화 환경은 비교도 안될 만큼 향상되었는데 말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으며, 이에 대한 해답이 무엇이겠습니까?

 

㉡ 인간의 타락은 영적 이해력을 상실하게 하였습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그들이 거듭난다 해도 영적 어린아이로 태어난다는 사실입니다. 목회자는 그들을 젖으로 시작하여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는 단계로 양육하고 훈련하고 무장시켜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④ 주님께서 교회에 목사와 교사를 선물로 주고 가신 것은,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 말씀합니다.

 

㉠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뜻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엡 4:13) 하는 성숙(成熟)을 의미합니다. 이는 힘들고 고된 일임에 분명합니다. 사도가 로마서를 기록하여 보내는 목적이 무엇인가?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1:11), 즉 연약한 저들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 그래서 사도는,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完全)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8-29) 하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포기한 양 “사람의 예대로” 말하기를 계속(繼續)한다면 이는 직무유기인 셈입니다.

 


 

⑤ 이런 맥락에서 “사람의 예대로 말한다”는 사도의 부가적(附加的)인 설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하는 설교자들에게 예화사용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켜준다 하겠습니다.

 

㉠ 물론 예화에는 유익한 점이 있습니다. 예화는 귀로 듣는 말을 눈앞에 그려 보게 해줍니다.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바꾸어 줍니다. 그래서 스펄젼은 “비유는 빛을 비춰주는 창문이다” 하고 말하면서, 창문 없는 건물은 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감옥이며, 비유 없는 설교도 역시 단조롭고 지루하며 무미건조하다”(현대교회와 설교) 하고 말했던 것입니다

 


 

⑥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화 사용에는 주의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많은 위험성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 예화란 주제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서인데,

 

  ㉮ 진리(眞理)는 묻히고 예화가 주인노릇을 하는 경우입니다.

 

  ㉯ 예화가 화려하여 복음의 광채를 희미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 성도들이 예화는 기억하고 진리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할 시간을 예화가 잠식(蠶食)해 들어가는 일입니다.

 

㉡ 다뷘치는 3년이나 걸려서 “최후의 만찬”을 그린 후에 친구에게 먼저 보였다고 합니다. “너무 훌륭해 저 잔이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그 잔에서 내 눈을 떼어 놓을 수가 없네” 하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붓을 들어 그 잔을 그어 버리면서,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⑦ 무엇보다 치명적인 해독은 예화나 간증담을 근거(根據)로 해서 원리를 세우려는 위험성입니다.

 

㉠ 제가 들은 얘기 중에 아이를 생산치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이혼당한 자매가 위자료로 받은 돈을 몽땅 헌금했답니다. 이 미담이 전해져서 그 자매는 상처한 젊은 사장의 부인이 되어 호강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부흥강사는 이 예화를 통해서 어떤 원리를 세우려고 하는 것일까요?

 

㉡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그러나 위자료를 몽땅 바치면 누구나 사장 부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本)은 아닌 것입니다. 예화란 어디까지나 “절뚝발이”입니다. 한 면이 유사하다고 해서 다른 면도 부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화를 근거로 하여 논증을 전개해 나간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또한 흥미에 치우쳐 예화가 필요 이상 길어진다면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 된 것입니다.

 


 

⑧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화란 회중의 영적수준이 낮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며, 계속 그 단계에 머물러 있게 해서는 아니 되고, 설교자는 회중들의 영적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전심전력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 간증담이나 예화를 말할 때에는 생기가 나 있다가도, 복음을 증거하고 진리를 말할 때에는 분위기가 가라앉고, 심지어 졸고 있는 것을 대하게 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가장 기초적인 진리를 증거 하였음에도, “목사님 오늘 말씀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하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설교자는 회중들에게 영합하게 되고 말씀이 혼잡 되기 쉬운 것입니다.

 


 

⑨ 사도는 “사람의 예대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당시는 노예를 사고파는 제도가 보편화되었던 시대입니다. 어떤 분이 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사게 되면 “주인”(主人)이 바뀌게 됩니다. 이 “종의 예화”를 들어서, “전에…이른 것 같이, 이제는 …이르라”(19) 하고 권면합니다.

 

㉠ 현대교회 성도들은 실감이 나지 않는 예화지만, 로마 성도 중에는 노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화는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主題)를 부각시키는 적절한 예화였던 것입니다. 노예가 전 주인에게 충성하다가 주인이 바뀌면 새 주인에게 충성하듯이,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하고 말씀합니다.

 

㉡ 사도는 이 권면을,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18) 한 원리에 입각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의 네 신분(身分)이요, 네 위치(位置)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화 사용에 대한 주의 할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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