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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

로마서 8:18절, 고난 후에 주어지는 영광

작성자바람이어라|작성시간15.12.02|조회수590 목록 댓글 0

 

고난 후에 주어지는 영광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8:18).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하고, “영광과, 고난”을 말씀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榮光)에 참여하게 될 것은 장차 나타날 미래(未來)에 되어 질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받아야할 “고난”(苦難)은, 현재(現在), 이 땅에서 감당해야할 일인 것입니다. 사도는 영광스러운 “변화산상”에서 고난의 현장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①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18상) 하고, 현실로 돌아온 것입니다.

 

㉠ 왜 이렇게 말씀합니까? 사도는 어떤 학설이나 주장하는 학자가 아니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고후 11:29) 한대로 그는 목회자였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고난(苦難)에 대하여 위로와 격려를 주어야하고 그에 대한 답변(答辯)을 해야 할 필요를 느꼈던 것입니다.

 

㉡ 저는 이 대목을 이렇게 표현해 보겠습니다.

 

  형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이면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이십니다.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 말씀 더 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입니다.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고난을 받으셔야만 합니다.

 

고난이라니요, 싫습니다. 고난 같은 것은 원치 않습니다. 다만 영광만 주십시오.

 


 

② 영광은 그렇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그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만 합니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둘을 다 받으시렵니까? 아니면 둘 다 포기하시겠습니까?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하고 말씀합니다.

 


 

③ 그렇다면 왜 고난이 있는 것입니까?

 

㉠ 이에 대한 첫 답변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5:12) 하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된 배후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려는 대적하는 세력(勢力)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선고는,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리니”(창 3:15), 즉 영적인 싸움이 있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있게 된 것입니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환난과, 고난”에 참여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하십니다.

 

㉢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누구든지 고난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하고까지 말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하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 이런 의미에서 서신서들에서 말씀하는 “고난, 시련, 환난” 등은 오늘 우리들이 말하는 고난(苦難)과는 차원(次元)이 다른 것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35),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벧전 4:12-13) 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고난들이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④ 둘째로 어찌하여 고난을 당하게 되었는가?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한 말씀에서 구할 수가 있습니다.

 

㉠ 이는 원죄(原罪) 하에 있는 자들이 일반적으로 받게 된 고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은 “다시 저주가 없으며(계 22:3),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할 때까지는 불가피한 고난인 것입니다.

 


 

⑤ 셋째로,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26) 하는데, 고난은 우리가 연약에 쌓여 있기 때문에 받게 됩니다. 우리의 현재 상태는 영은 구원되었으나 몸은 구속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하는 날까지는 의식주와 생노(生老) 병사(病死)의 고난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⑥ 이런 맥락에서 현재의 고난은 우리가 성도라는 또 다른 증거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난은 소망을 더욱 견고케 하고, 연단시켜주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고난은 안 받으면 좋은 것인데, 불가피하게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 하고 진술합니다. 고난 자체는 즐거운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이것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28)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신다(고전 10:13) 하고 말씀합니다.

 

㉡ 사도는 고난의 의미를,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8-9) 합니다. 어찌하여 사랑하는 바울에게 이런 고난을 허용하셨는가? 그에게 더 큰 믿음, 더 큰 능력, 더 큰 그릇이 되게 하여 더욱 귀하게 사용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의 귀중한 의미입니다.

 


 

⑦ 넷째로 징계(懲戒)에 의한 고난이 있다는 점입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히 12:8, 5) 하십니다.

 

㉠ 고난이 닥치게 되면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멀리 떠나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더욱 더 붙잡고 매달립니다. 더욱 의지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연단을 받게 되고 그의 신앙은 성숙해 갑니다. 더 큰 일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장차 후사가 될 사랑하는 자녀들을 고난의 학교에 보내어 훈련시키시는 목적인 것입니다.

 


 

⑧ 형제여, 사도는 현재의 고난이 곧 물러갈 것이다, 곧 해결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저도 목회자의 심정으로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지상에서의 축복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것을 약속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24-25절을 보십시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 지니라” 하고 말씀합니다.

 

㉡ 빌립보서 4:6-7절을 보십시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십니다. 아뢰면 그 모든 염려가 해결된다고 약속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십니다.

 


 

⑨ 고난 중에 왜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지를 못합니까? 어찌하여 고난이 닥치면 낙심하고 주저앉고 맙니까?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5:3) 한 바울처럼 범사에 감사하지를 못하는 것입니까? 답변은 오직 하나입니다.

 

㉠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7-18) 한, 장차 받게 될 영광의 중한 것을 모르거나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고난이 닥치거든 “생각이라는 저울” 한쪽에는 고난을, 다른 한쪽에는 장차 누릴 영광을 올려놓아 보십시오. 그리고 형제여,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하고 선언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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